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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경아 Aug 11. 2015

[노래소설] 빅뱅의 "마지막 인사"

마지막 인사는 서로 접어두길 바라...   

>>빅뱅의 마지막 인사 노래 듣기



 김대리가 짐을 싸고 사무실 저쪽에서부터 인사를 해오고 있다. 결국 그녀는 나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것이다. 어떻게 하지? 뭐라고 해야 하지? 아……정말 이럴 때면 천하의 철면피인 나도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김대리는 지금 임신 6개월이다. 그런 김대리를 조용히 불러 사장님의 권고사항을  이야기해 주었다. 더불어 나의 안타까운 마음도……그 후 휴가를 며칠 내더니  지난주 나에게 사표를 내밀었다. 그렇다. 결국 김대리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이유로 사표를 낸 것이다. 이제 마음이 후련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찜찜했다. 왜냐하면 김 대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무척 아끼던 오른 팔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다른 직원들과 달리 항상 나의 의견에 동조해 주었고, 나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된 것처럼 행동했다. 물론, 내가 시키는 일이면 어떤 일이든 알아서 잘하는 똑순이였다. 또한 얼마 전 간 경화 초기 증세로 담배를 끊어야 했을 때도 김대리는 금연 패치를 사다 주며 마누라보다 더 큰 힘이 되어 주기도 했다. 그렇게 항상 싹싹하고 내입 속에 혀처럼 굴던 김대리가 오늘 사측 권고로, 아니 나의 권고로 회사를 그만두게 된 것이다.


  한 달 전 나는 김 대리가 임신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는데, 곧바로 머리 아픈 일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우리 팀 내년 예산과 인원 감축 때문이었다. 한 사람이 두 사람의 일을 해내야 하는 구조 속에서 앞으로 출산 휴가를 받아야 할 사람이 있다는 건 분명히 아주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몸이 무거워지면서 야근을 시키기도 힘들고, 출산휴가 동안은 그 빈자리 만큼 다른 팀원들이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팀 전체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래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고맙게도 사장님께서 팀장 회의 때 내게 강력한 동기 부여를 해주셨다. 그래서 나는 사장님의 명령을 핑계로 김 대리에게 언지를 주었던 것이다. 눈치 빠른 김 대리는 내 말을 단번에 알아 들었다. 의연한 얼굴로 휴가를 내고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지금 그만 두면 명예 퇴직으로 처리해 두 달 치 월급도 줄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나 보다. 왜냐하면, 김 대리의 얼굴이 그 말에 약간 일그러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급히 말을 돌리고, 그 자리를 떠났다.


 어느새 김 대리가 내 책상 앞에 와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그런데, 김 대리가 웃으면서 내게 선물과 카드를 건넸다.


“아니, 김 대리퇴사 선물은 내가 준비해야 하는 건데……”

“아닙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예쁜 아이 낳으면  연락드릴게요. 건강하세요!”

“그래요, 김대리! 누구보다 내가 제일 서운한 거 알고 있죠? 그럼 무사히 출산하고 잔치하거든 꼭 불러요!”


역시 김대리였다. 끝까지 내게 미소와 존경을 보내는 김대리를 보면서 나는 감동을 받았다. 그래, 김 대리는 나에게 참으로 충실한 부하였다. 그러니 그녀에게 더욱더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아니, 이렇게 그녀를 떠나 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나에게 악감정을 가질 수도 있는데, 이렇게 선물까지 준비하는 속 깊은 김대리에게 멋진 퇴사 선물을 해주기로 마음 먹었다. 서둘러 막내 사원을 불렀다. 법인카드를 건네며, 김대리가 원하는  퇴사 선물을 사오라고 일렀다. 금액 한도는 생각하지 말라고도 말했다. 그래도 나는 자꾸만 미안했다. 특히 그녀가 내게 준비한 선물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더욱더 가슴이 아팠다.


 송별회를 해준다고 했지만, 김대리는 극구 사양했다.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술 마시면서 하는 마지막 인사는 대개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찹찹한 마음에 퇴근시간이 지난 한참 후에도 나는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사무실에 나 혼자  남겨졌을 때쯤, 나는 김대리가 남기고 간 선물을 풀어 보기로 했다. 예쁜 종이와 리본으로 정성스럽게 포장된 선물을 조심스럽게 뜯었다. 그리고 선물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 나는 그 자리에 얼어 붙었다. 김 대리가 내게 준 선물은 6개월 전까지 내가 줄담배를 피우던 “말보로 레드” 한 보루였기 때문이다. 하루에 2갑씩 꼬박꼬박 피우다가 간 경화 초기 판정을 받고 난 후정말 어렵게 끊었던 담배였다. 김 대리가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누구보다 담배 끊는 것을 도왔던 사람이 김 대리였기 때문이다. 덜덜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고, 옆에 붙어 있던 카드를 열어 보았다. 김 대리의 마지막 인사가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부장님, 건강하게 담배 오래오래 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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