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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경아 Aug 25. 2015

[노래소설] 델리스파이스의 "차우차우"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해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

“이건 얼마예요?”     


순간,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분명 그놈 목소리였다. 잠시 동작을 멈추고 그 목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눈을 돌린 그곳에는 아주 멀쩡한 남자가 서 있었다. 더군다나 그 옆에는 너무도 참하고 예쁜 여자도 함께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그 목소리를 확인하기 위해 바짝 다가섰다.

     

“이게 동네 정육점보다 싼 건가?”     


분명 그놈 목소리였다. 너무 기가 막혀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통신회사 고객센터에 근무하는 콜센터 상담 직원이었다. 그곳에서 각종 통신서비스 관련 민원을 접수받고 안내하고 있다. 그래서 정말 징글징글할 정도로 인격이 의심되는 사람들이 전화를 많이 받는 편이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하루 종일 전화만 받는 일이라 너무 편안한 일 아니냐며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누군지 알 수 없는 대상에게 전화를 받아 내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상상치도 못한 추태를 부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지금 듣고 있는 이 목소리는 우리 직원들 사이에서 가장 악명 높은 목소리였다. 전화 내용도 내용이지만, 30명 가까이 되는 직원들 중에 그의 전화를 받아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거의 매일 전화를 걸어 우리들을 농락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객센터 하루 일과 마무리는 그 전화를 받은 사람을 위로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편이다.    

 

“자기도 한번 먹어봐! 아~~”     


그 변태 같은 놈이 지금 다정하게 애인으로 보이는 여자에게 잘 익은 불고기를 입에 넣어 주고 있다. 여자는 조그맣게 입을 벌리더니 수줍은 듯 웃는다. 보아하니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거나 결혼을 앞둔 예비 신혼부부 같은 느낌이다. 속이 메슥거리고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고객센터 직원들은 그의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욕설과 변태적인 말을 참고 견디면서, 그가 분명 성불구자이거나 여자를 제대로 만나 본 적 없는 변태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그놈을 불쌍하게 생각해 보자고 자신들을 위로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보고 있는 그 사람의 모습은 너무나도 멀쩡하고 선량해 보인다.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더군다나 자신의 남자가 변태라는 사실을 모른 채 방긋방긋 웃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더욱더 속이 썩어 들어갔다.  하지만, 지금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처음에는 고객센터 차원에서 매일 그렇게 전화를 거는 그를 추적해서 주의를 주거나 경찰에 신고를 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전화를 한 번도 받아 본 적 없는 윗분들은 고객을 신처럼 모셔야 하는 입장에서 아무리 무례하고 변태적인 행태를 보인다 해도 그 고객을 신고하거나 수신거부를 할 수는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래서 그놈의 오바이트 같은 말들을 몇십 명의 직원들이 오롯이 견디어 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신병자인 줄 알았던 그놈이 이렇게 멀쩡하게 세상을 활보하고 다니는 것을 내 두 눈으로 보고 나니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놈을 내 방식대로 응징하고 싶었다. 그래서 마트를 나서는 그놈과 여자의 뒤를 몰래 밟았다.    

  

그놈과 여자는 다정하게 투닥거리며 거리를 나서더니, 한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잠시 망설이다가 그들을 따라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혹시나 내가 누구인지 알아볼까 걱정했지만, 그놈은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였다. 커피를 시키고 그들이 잘 보이는 자리에도 앉았다. 크게 한 숨을 쉬고 나는 무모한 작전에 돌입했다.   

    

 “어머, 안녕하세요, 고객님!   ***고객센터입니다.”     


갑작스러운 나의 외침에 커피숍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나를 쳐다본다. 예상대로 그놈과 그 여자도 나를 본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나는 일부로 그놈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본다. 역시나, 그놈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이 보인다. 가슴이 뜨끔했을 것이다. 그놈이 매일 전화를 거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 순간을 놓칠세라 나는 더 큰 소리로 외쳤다.     


“어머, 죄송합니다. 고객님! 앞으로 다시 한번 그 딴 식으로 전화를 주시면 바로 경찰에 신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점 부디 양해해 주시고, 앞으로는 그 딴 전화는 여자 친구분과 나누시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마침표를 찍듯 그놈의 얼굴을 쏘아본다. 그놈 얼굴이 완전히 얼어서 백지장보다 더 하얗게 질려 있다.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걸 꾹 참았다. 남자 옆에 아무것도 모르고 앉아 있는 여자는 나를 미친 여자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놈을 제외한 주변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막혔던 하수구를 뚫은 것처럼 나름 속이 시원했다. 마지막으로 사악한 미소를 날리며 그놈의 면상에 얼음이라도 던져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결국, 그놈은 사색이 되어 여자의 손목을 잡고 커피숍을 도망치듯 나갔다. 다행히 그날 이후로 그놈의 전화가 더 이상 걸려오지 않았다. 그저 안타까운 것은 동네에서 싸고 맛있다고 소문난 그 커피숍에 다시는 가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 끝 -


>>델리스파이스의 챠우챠우 노래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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