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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경아 Sep 03. 2015

[노래소설] 린의 "곰인형"

곰인형을 준다는 것은...



“이모!  나 이거 가지고 놀아도 돼요?”


혼자 구석에서 놀고 있던 조카가 물어 본다. 청소를 하다가 고개를 들어 조카를 보니 어디서 많이 봤던 곰 인형을 안고 있다.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조카가 가슴에 꼭 안고 있는 저 곰 인형은 아주  오래전에 헤어졌던 남자친구가 내게 주었던 것이다. 멍하니 그 곰 인형을 바라보고 있으니, 조카가 다시 묻는다.


“곰 인형 가지고 놀아도 되느냐 구요?”


그러면서 살짝 곰 인형을 흔든다. 아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조카는 신이 나서 곰 인형을 가지고 거실로 나간다.  그동안 어디에 두었는 지도 몰랐는데, 조카가 내방 구석구석을 뒤지더니 저걸 발견한 거다. 그냥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다 큰 어른한테 저런 걸 선물해 준다고, 혼자 볼멘 소리를 했었는데. 그와 헤어진 뒤 그 어떤 물건보다 더 오래 남아 있는 건 역시 저 곰 인형이었다. 그는 알았던 걸까? 인형을 선물하면, 누구한테 줄 수도 버릴 수도 없다는 것을……. 그렇게 아주 오랜만에 그의 얼굴이 떠올려 본다.


"짜잔!"


그가 내밀었던 곰 인형을 보고 나는 한숨부터 쉬었다. 프러포즈 반지를 기대했던 여자에게 곰 인형을 내미는 남자를 보고 여자가 할 수 있는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도 나만큼 실망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계속 우리는 헤어 질 때까지 그 얼굴 표정을 얼굴에서 지우지 못했다. 그 사람의 맘도 내 맘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그가 프러포즈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함께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받아 드렸다. 하지만, 이제와 깨닫는다. 취업 준비를 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에게 그 인형 선물은 사랑을 표현하는 최선의 선물이었음을……. 그와 헤어지고, 방 안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 곰 인형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났었다. 밤새 인형을 꼭 안고 또 울어 봐도,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그 곰 인형은 그의 사랑의 징표가 아닌, 이별의 징표가 되었다. 나이가 꽉 찬 여자에게 곰 인형은 그런 의미 인 것이다. 멍하니, 옛 생각에 잠겨 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 내게 다시 조카가 말을 건다.


“이모, 이모는 인형 놀이 좋아해?”

“아니, 이모는 인형 놀이 별로 좋아하지 않아. 왜? 같이 해줄까?”

“그럼 이 곰 인형은 필요 없겠네?”


다시 한번, 조카는 나의 말문을 막아 버린다. 이제야 이 곰 인형을 없앨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나는 왜 말을 못하고 있는 걸까? 기대 어린 눈 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조카의 얼굴이 눈에 들어 온다. 그제야 한숨을 한번 쉬고 대답한다.


“그래, 이모는 이제 필요 없으니까, 예은이 가져!”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고맙습니다”를 외치며 뛰어 나가는 조카를 바라본다. 이제야 곰 인형은 제대로 된 주인을 만난 걸까? 마음속으로 잘 가라고 작별인사를 해본다. 그동안 미안했다. 못난 주인을 만난 죄로 정말 고생 많았다. 너도 이런 나 때문에 꽤나 외로웠을 것 같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처음부터 제자리가 있는 것이다. 주인을 잘못 만났던 저 곰 인형처럼, 어쩌면 그 사람과 나는 서로 만나지 말았어야 했던 인연인지도 모르겠다. 


잘 가라! 곰 인형…….

잘 가라! 내 사랑…….



                                                                                          -끝-


>>린의 곰인형 노래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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