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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경아 Jan 06. 2019

카페 밖은 드라마

실제 이별은 그렇게 조용히 그리고 서서히 사그라진다.


[#] 노래를 듣고 떠오른 이야기들로 만들어진 미니 연재소설입니다. 참고로 지금 외롭고 웃긴 가게에서는 '바비킴의 사랑 그놈'이라는 노래가 흐르고 있습니다.  
   사랑 그놈 (바비킴)노래듣기♪



영선은 카페 창밖을 TV 보듯 쳐다보고 있었다.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카페 창밖에서 남자와 여자가 아까부터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남자와 여자는 열심히도 싸웠다. 여자가 할 말이 많은 것처럼 보였지만, 남자도 만만치 않았다. 흥미로운 건 그렇게 열심히 싸우면서도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는 것이다.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기 때문일까? 영선은 그 두 사람이 서로를 뜨겁게 사랑하고 있음을 느꼈다. 아니, 적어도 오늘의 싸움으로 헤어지진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진짜 그만하자, 그만해!”     


그런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때는 절대 그만둘 수 없는 법이다. 진짜 이별은 열정적으로 싸울 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때 불현듯 찾아오는 것이다. 영선의 이별도 그랬다. 헤어질 때 너무도 덤덤해서 그게 이별인지조차 깨닫지 못했다. 실제 이별은 그렇게 조용히 그리고 서서히 사그라진다. 더 이상 타오를 것 없는 양초처럼.     



지금도 가 사랑했던 그 시절이 그립기도 했다. 그리운 것이 아낌없이 사랑했던 그였는지, 뜨겁게 사랑했던 자기 자신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저 분명한 것은 더 이상 그때처럼 누군가를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미워하고, 아파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그때, 그 순간들이 이토록 그리운 것이리라. 사랑이 이별보다 아파도, 이별이 사랑보다 슬퍼도 그 어느 것도 할 수 없는 영선은 그렇게 메마른 가슴을 부여잡고 카페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우유 배달 왔습니다!”     


우유배달 청년이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영선의 가게로 들어왔다. 영선은 깜짝 놀랐지만, 당황하지 않고 우유배달 청년에게 짧은 목례를 보냈다. 평소처럼 두 사람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침묵을 지켰다. 영선은 일찌감치 대화를 포기하고 창고에 원두 봉지를 가지러 갔다. 영선이 원두 봉지를 집으려는 순간, 냉장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곧 우유배달 청년이 가게 문을 열고 나갈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했던 문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원두 봉지를 들고 서둘러 창고를 나오다가 영선은 깜짝 놀랐다. 우유배달 청년이 카운터 메뉴판 앞에 서서 메뉴들을 꼼꼼히 살피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선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겨우 가라앉히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드시고 싶은 음료가 있으신가 봐요?”     


처음 건네는 말 치고는 매우 상업적인 말이었지만, 영선은 이렇게라도 말을 걸 수 있어서 좋았다. 우유배달 청년은 무척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느리게 대답했다.   

  

 “아, 네. 근데 잘 몰라서........”

 “혹시, 달달한 거 좋아하세요?”

 “네, 무지 좋아합니다.”

 “그럼 캐러멜 마끼아또 어떠세요?”

 “아, 캐러멜! 좋네요. 그걸로 주세요!”     


영선의 예상이 맞았다. 우유배달 청년은 캐러멜 마끼아또를 좋아하는 달콤한 사람이었다. 영선이 혼자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음료를 준비하려는데, 우유배달 청년이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는 것이 보였다. 영선은 재빨리 그라인더 버튼을 누르고 카운터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  

    

 “계산 안 하셔도 돼요. 제가 서비스로 드리는 거예요!”

 “아, 아닙니다. 이런 걸로 신세를 질 순 없죠.”

 “아니에요. 안 그래도 언제 한번 꼭 음료 한잔은 대접하고 싶었던 거라서.”

 “그게, 실은 제가 한잔이 더 시키고 싶어서.......”    

 

몇 번의 실랑이 끝에 결국 영선은 돈을 받지 않고 두 잔의 캐러멜 마끼아또를 우유배달 청년에게 안겼다. 우유배달 청년은 어쩔 줄 몰라했지만, 기분은 좋았는지 얼굴이 상기되어 연신 웃었다. 말을 함부로 걸기 어려울 정도로 내성적인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웃음이었지만, 영선은 그런 웃음이 좋았다. 그 웃음이 캐러멜 마끼아또 두 잔 보다 훨씬 값어치 있다고 생각할 만큼. 그러다 영선은 그가 왜 갑자기 음료를 주문하고 생전 보여주지 않던 미소를 지으며 자신 앞에 서있는지 궁금해졌다. 자신 때문은 아닐 거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보지만, 영선의 입 꼬리는 자꾸만 날갯짓을 며 설레 치고 있었다. 만약 누군가 우유배달 청년의 행동에 대해 토론을 하고자 하면 영선은 밤샘 토론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맛있게 드세요!”

 “감사합니다. 다음엔 제가 꼭 주문해서 먹겠습니다.”


우유배달 청년은 영선이 캐리어에 담아 준 캐러멜 마끼아또 두 잔을 들고 배꼽인사를 했다. 연신 배꼽인사를 하며 가게를 나서는 우유배달 청년을 바라보며 영선 역시 연신 웃기만 했다. 우유배달 청년의 다음이란 말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유배달 청년이 카페 창밖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영선은 알아차렸다. 카페 창밖에서 한창 싸우던 커플이 사라졌다는 것을.      



#노래소설 - 사랑...그놈(바비킴)    

 

영선이 카페 창밖에서 사라진 커플의 행방에 대해 궁금해할 무렵, 부동산 임 사장이 가게로 들어왔다. 말이 많고 오지랖이 넓어서 그렇지 그래도 임 사장은 영선네 가게에서 무시할 수 없는 으뜸 단골손님이었다.      


 “아까 커피 몇 잔 주문했었지?”

 “아메리카노 4잔이요.”

 “근데, 혹시 팥빙수 되나? 내가 말이야 며칠전부터 팥빙수가 그렇게 먹고 싶었는데, 겨울이라 그런지 울동네엔 팥빙수 파는 곳이 없네?

 “시간이 좀 걸리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되기만 한다면야. 얼마든지 기다리지!”


영선은 임 사장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냉동고에 얼려 두었던 우유팩 하나를 꺼냈다. 우유팩을 벗기고 믹서기에 우유덩어리를 넣고 곱게 갈면서 연유와 팥 통조림을 준비했다. 그 사이  임 사장은 지갑에서 만 원짜리 두 장과 영선의 가게 쿠폰을 꺼냈다. 그리고는 영선이 잘 볼 수 있도록 카운터 위에 살포시 올려놓는다. 소복하게 쌓여 있는 우유얼음 위에 팥빙수와 아이스크림을 덜어 놓고 있는 영선에게 임 사장은 넌지시 말을 걸었다.


  “참, 그 얘기 아나? 우유대리점 총각 얘기!”


영선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아 잠시 동작을 멈췄다가 다시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하게 찬장에서 미숫가루 통을 꺼냈다.


  “그 말없고 조용하던 총각이 요즘 아주 이상해졌단 말이지.”

  “뭐, 뭐가요?”

  “평소엔 잘 웃지도 않던 사람이 요즘 입이 귀에 걸려서 싱글벙글 거리며 다니더라고. 인사성도 아주 밝아지고 먼저 말도 걸고 해서 뭔 일인가 싶었거든?”

  “찹쌀떡은 사둔 게 오래돼서 못 드리겠어요! 괜찮으시죠?”

  “어, 괜찮아! 글쎄 그 총각이 얼마 전에 소리 소문도 없이 장가를 갔다지 뭐야! 내가 알기론 아직 서른도 안 되었다고 들었는데 뭐가 급해서 그렇게 일찍 갔을까?”


영선은 거의 완성된 팥빙수 위에 미숫가루를 뿌리다가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임 사장은 그런 영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신이 나서 계속 이야기했다.


 “좀 전에 요 앞에서 신부로 보이는 예쁜 아가씨랑 나란히 커피 마시면서 손잡고 걸어가는 걸 내가 봤다는 거 아냐! 완전 깨가 쏟아지더라고. 근데 말이지. 확실히  신혼부부도 어린애들이 예쁜 것 같아. 요즘엔 하도 결혼들을 늦게 해서 말이지.  둘이서 요렇게 손 꼭 잡고 걸어가는데, 진짜 보기 좋더라고. 그러니까 정 사장도 얼른 시집이나 가! 지금 가도 완 늦은 거니까!”


영선은 완성된 팥빙수를 임 사장 머리 위에 쏟아붓고 싶은 충동을 겨우 억누르고, 팥빙수를 내밀었다. 다행히 임 사장은 팥빙수를 받자마자 조용해졌다. 영선은 혼자 착각에 빠졌던 자신이 너무도 부끄럽고 창피했다. 그런 영선에게 팥빙수를 흡입하던 임 사장은 눈치도 없이 흰소리를 냅다 던졌다.


 “근데 오늘은 연유가 너무 많이 들어갔다. 너무 달아. 이러면 나 살찌는데.”


영선이 대답이 없자 임 사장은 그제야 눈치를 보며 다시 말없이 빙수를 퍼 먹었다. 마지막 국물까지 원 샷을 하고 난 후 그릇을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임 사장이 조심성 없이 물었다.     


 “근데, 요즘 장사도 잘 된다며 왜 그렇게 기운이 없어?”

 “잔돈 4천 원 드리면 되죠?”

 “아냐, 그걸로 캐러멜 마끼아또 하나 만들어 줘! 우리 미스 김 하나 갖다 주게.”



캐러멜 마끼아또라는 말에 영선은 다시 맥이 풀렸다. 그에게 건넨 달콤한 캐러멜 마끼아또가 쓰디쓴 에스프레소가 되어 돌아온 기분이었다. 영선은 아무리 잘 팔린다고 해도 캐러멜 마끼아또는 당분간 팔고 싶지 않을 정도로 기분이 상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선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 평소처럼 그라인더에 커피를 아낌없이 갈았다. 포터필터에 커피가루를 가득 담아내고 탬핑하는 영선의 어깨에 평소보다 힘이 두 배정도 더 들어갔다. 커피가루가 다시 원두커피로 환생할 만큼 단단하게 탬핑을 하고 포터필터를 커피머신에 끼웠다. 뜨거운 수증기와 압력을 가해지며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검은 커피 원액이 눈물처럼 뚝뚝 흘러내렸다.


검게 타들어간 영선의 마음같은 에스프레소 위에 달콤한 캐러멜 시럽을 소독약처럼 뿌린다. 그 위에 하얀 붕대처럼 폭신한 우유거품과 휘핑크림을 올리고 캐러멜 시럽으로 완벽하게 봉인한다. 그렇게 영선의 쓰디 쓴 슬픔은 달콤한 캐러멜 마까아또로 포장되어 임 사장에게 넘겨졌다. 영선의 잘 포장된 검은 슬픔을 받아 든 임 사장은 콧노래를 부르며 가게를 나섰다. 영선은 다시 우두커니 앉아 카페 창밖을 바라본다. 창밖으로 사람들이 슬로비디오처럼 천천히 움직인다. 영선은 문득 궁금해졌다. 왜 카페 밖에서만 드라마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무심히 떠나버린 캐러멜 마끼아또의 슬픈 추억을 지워내느라 영선은 해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임 사장이 말끔히 비워낸 팥빙수 그릇을 치우지 못하고 있었다.


연극<외롭고웃긴가게>무대한컷


끝.



#그동안외롭고웃긴가게를읽어주신분들에게감사드립니다.

#새해복많이받으세요

#현실같은드라마는있어도드라마같은현실은없다

#외롭지만웃긴우리들의현실

#내인생에드라마는드라마같지않다

#연재소설

#바비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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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소설

#사랑은누구에게나쉬운일은아니다

#3인칭관찰자시점

#조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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