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경아 Dec 09. 2018

눈이 내리면

차곡차곡 쌓인 나이만큼 사라진 설렘들이 다시 돌아올까?


[#] 노래를 듣고 떠오른 이야기들로 만들어진 미니 연재소설입니다. 참고로 지금 외롭고 웃긴 가게에서는 '자이언티의(feat. 이문세)의 눈'이라는 노래가 흐르고 있습니다.    자이언티(feat. 이문세)의 눈 노래 듣기♪



“사장님, 오늘 눈이 올까요?”

“글쎄. 눈이 오기엔 날이 너무 좋아 보이던데?”

“일기예보에 오늘 눈 올 확률이 70% 정도 된다고 했거든요.”

“그래? 그럼 오늘 눈 안 오겠네.”

“왜요?”

“요즘 일기예보 맞는 거 못 봤거든.”

“아....... 맞다. 그러네.”

“근데, 왜?”

“눈 오면 친구들이랑 스키 타러 가기로 했거든요.”

“그럼 오늘 일찍 퇴근해야 하나? 은행 빨리 다녀와야겠다.”

“하하, 아뇨. 상관없어요. 오히려 학원을 째야죠. 야간 스키 탈 거니까.”

“밤에도 스키를 타는구나.”

“그럼요. 조명받으며 스키 타면 얼마나 멋진 데요.”

“근데, 눈이 안 오면?”

“못 가는 거죠.”

“눈 안 와도 그냥 가면 되잖아. 어차피 스키장엔 눈이 있을 텐데.”

“그게, 진짜 눈이 와야 스키 타는 맛이 제대로 나거든요.”

“근데 오늘은 아무래도 힘들겠는데? 하하”

“일기예보야, 오늘은 제발 맞아줘라! 제발!”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성우를 보며, 영선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참 좋을 때라고. 눈이 와서 좋았던 시절이 언제였던가? 영선은 너무도 까마득했다. 그래도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엔 눈이 내리면 제법 쌓여서 눈사람도 만들고 동네 친구들끼리 눈싸움도 할 수 있었다. 조금 더 자라서는 눈이 오면 괜히 마음이 들떠서 친구들과 캐럴이 들리는 시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기도 했다. 요즘 영선은 눈이 내린다고 하면 덜컥 걱정부터 앞섰다. 눈이 오면 교통도 불편해지고, 결국은 가게 손님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요즘은 차가 많아서 그런지 눈이 내리면 바로 녹아내려 흰 눈이 아니라 검은 눈으로 보일 때가 많았다.

     


“아메리카노 한 잔, 카푸치노 한 잔이요.”

“가져가실 건가요?”

“네. 캐리어에 담아주세요!”     


성우가 능숙하게 커피 그라인더를 작동시킨다. 어느새 포타필터에 눈처럼 소복하게 커피가루가 쌓인다. 동글납작한 탬퍼로 소복한 커피가루를 조심스럽게 눌러준다. 단단한 탬핑을 하느라 성우의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덕분에 성우 팔뚝에 제법 근사한 핏줄이 선다. 일을 시작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어느새 성우는 제법 근사한 바리스타가 되어 있었다. 달그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에스프레소 머신에 포타필터를 힘차게 끼워 넣는다. 에스프레소 머신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두 개의 구멍에서 진득한 커피 진액을 눈물처럼 뽑아낸다. 그러는 사이, 성우는 우유 거품을 만들기 위해 스팀밸브를 잡고 있다. 스팀 소리가 제법 정갈하고 일정하게 들린다. 영선은 소리만 듣고도 성우의 우유 거품이 잘 만들어졌는지 알 수 다. 어느새 성우가 만들어낸 카푸치노엔 제법 쫀쫀한 우유 거품이 눈처럼 쌓였다.      


“아메리카노 한 잔, 카푸치노 한 잔 나왔습니다.”     


커피 두 잔을 캐리어에 담은 여자 손님이 가게를 총총 나선다. 성우는 쉴 틈도 없이 우유 잔과 에스프레소 잔을 닦고 있다. 이젠 말하지 않아도 척척 알아서 잘하는 바리스타 성우에게 가게를 맡기고 영선은 오래간만에 외출을 했다.


     


#노래소설 - 자이언티(feat. 이문세)의 눈


혼자 일할 때는 상상도 할 수도 없는 여유로운 외출이었다. 영선은 괜히 기분이 좋았다. 은행에 가는 일이 이리도 즐거운 일이었던가? 어디선가 바람처럼 크리스마스 캐럴까지 들리니 마음 한구석이 간질간질 설레기도 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가게에서도 항상 캐럴을 틀었지만 한 번도 설렌 적이 없던 영선이었다. 아니, 사회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영선은 크리스마스는 그저 차가 많이 막히고 케이크가 많이 팔리는 날에 불과했다. 문득 영선은 크리스마스도 눈도 아무 걱정 없이 좋아라 했던 어린 시절이 그리웠다. 모든 것이 시큰둥해 보이는 영선도 한때는 좋아하고 설레는 것들이 너무 많아 걱정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영선을 설레게 했던 것들은 지금 모두 어디로 사라진 걸까? 차곡차곡 쌓인 나이만큼 사라진 설렘들이 영선은 못내 아쉬웠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차가운 겨울바람 때문인지 영선은 코끝이 찡해졌다. 또르르 눈물 한 방울이라도 떨어질까 두려워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리고 묻는다. 오늘 정말 눈이 올까? 진짜 눈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왼쪽 하늘 어디선가 하얗고 몽실한 것이 나풀나풀 춤을 추며 떨어진다.   

   

 “눈이다!”  

   

영선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러자 지나가던 사람들도 덩달아 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영선과 같은 맘으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처럼 의기양양해져서 하얀 눈송이를 바라보던 영선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본능적으로 느다. 생각보다 눈송이가 크기 때문일까? 영선은 손을 뻗어 눈송이를 잡아보려고 손을 뻗는다.    


 


 “오리털이에요.”   

  

낯선 목소리가 영선 뒤에서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옷가게 아주머니가 오리털 패딩 잠바를 털고 있었다. 어디선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아니, 실제로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영선은 지금 웃음소리가 들렸는지 확인할 여유가 없었다. 그저 세상에서 가장 빠른 걸음으로 목표했던 은행으로 질주할 뿐이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숨이 찼다. 부끄러움 때문인지 빠른 걸음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게 영선은 일기예보 따위를 잠시라도 믿었던 자신을 원망하며 눈에 대한 추억 하나를 또 지워버렸다.           



다음화에서 계속...



#오늘밤눈이올까요?

#나이가들수록좋은것들보다싫은것들이많아지는이유

#지우고싶은기억들이많기때문

#그래도설레고싶은연말

#나이만큼좋은것들이늘어났으면

#연재소설

#노래소설

#브런치작가

#조경아작가

#3인칭관찰자시점

#제장편소설도많이사랑해주세요

이전 15화 그놈 목소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