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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경아 Dec 02. 2018

그놈 목소리

현실에선 광기도 부릴 줄 모르는 한심한 쭈글이


[#] 노래를 듣고 떠오른 이야기들로 만들어진 미니 연재소설입니다. 참고로 지금 외롭고 웃긴 가게에서는 '델리스파이스의 챠우챠우(아무리...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는 노래가 흐르고 있습니다.

델리스파이스의 챠우챠우(아무리... 너의 목소리가 들려) 노래듣기♪



결국 영선은 아르바이트를 뽑기로 결정했다. 손님이 가장 많은 점심 시간대는 카운터만 봐준다고 해도 훨씬 일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영선은 인터넷 구인 광고란에 아르바이트를 뽑는다는 공고를 올렸다. 여러 가지 조건 중에 영선이 가장 중요하게 내건 조건 중 하나는 하루 4시간 이상 근무는 할 수 없다는 것. 영선은 그 이상 인건비를 주고는 가게 운영이 안 된다고 판단했다. 이런 조건으로 누가 올까 반신반의 하긴 했지만, 영선에게 그 조건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아무도 연락을 하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에 영선은 카페 창에도 사람을 구한다는 구인 광고를 붙여놨다.     


<파트타임(4시간 이하)으로 일하실 분 구합니다!>   

  

몇 번의 전화가 있었고, 면접을 보러 오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영선의 조건을 보고 마음을 바꾼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영선은 새삼 깨달았다. 사람을 얻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나른한 일요일 오후 카페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면서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 한 명이 들어왔다. 영선이 주문을 받으려는데, 남학생이 쭈뼛쭈뼛 거리며 물었다.     


“저기, 사람 구하신다고.......”     


예상대로 남학생은 잠시 휴학을 하고 있는 대학생이었고, 저녁시간에는 학원을 다녀야 하기 때문에 낯 시간만 알바 자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영선은 적당히 발랄하고 적당히 싹싹해 보이는 남학생이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일을 원하는 시간대가 영선과 잘 맞아떨어졌다. 영선이 화끈하게 내일부터 일을 할 수 있겠냐고 물으니, 남학생은 카페 알바가 처음이라며 지금 당장 커피 내리는 일을 배워보고 싶다고 했다. 영선은 웃으며 영선 가게에 있는 도구와 기계에 대해 하나씩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남학생은 영선이 도구와 기계 이름을 말해줄 때마다 사진을 찍었다. 또한, 커피 머신을 다루는 방법을 설명하려고 하자 동영상을 찍어도 되냐고 물었다. 영선은 요즘 애들은 정말 다르구나 생각했다. 그때, 커플로 보이는 남자와 여자가 가게로 들어왔다.      


“아메리카노 하나랑 카푸치노 한잔 주세요!”     


영선이 커플의 주문을 받고 있을 때 어딘가 눈빛이 불안해 보이는 여자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남녀 커플이 자리에 앉아 음료를 기다리는데, 여자가 자꾸만 그 커플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영선은 잠시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혹시나 저번처럼 난투극이 발생하는 것은 아닐까? 영선이 걱정하는 와중에도 여자는 계속 눈치를 보면서 커피를 주문했다. 그리고는 그 커플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영선은 불안한 마음을 달래며 바로 음료 준비를 시작했다. 그 사이 남학생은 실습 기회를 잡았다는 듯 휴대폰 동영상 녹화 버튼을 눌렀다. 그라인더를 돌리고 막 커피를 받으려는데, 불안해 보이던 여자가 갑자기 큰소리로 전화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어머, 안녕하세요, 고객님!   ***고객센터입니다.”     


고객센터 전화를 여기서 받는다고? 영선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커피 머신 너머로 여자를 쳐다봤다. 카페 안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여자에게 몰렸지만, 여자는 통화를 멈추지 않았다. 이상한 것은 여자의 통화가 길어질수록 커플로 보이는 남자 손님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는 것이다. 급기야 남자는 헛기침을 하며 여자 친구에게 얼른 가게를 나가자고 재촉했다. 영선은 깜짝 놀라 괜히 서둘렀다. 에스프레소를 겨우 받고 우유 거품을 만드는 사이 결국 커플은 영선의 가게를 나가버렸다.     


“아메리카노 한잔 나왔습니다.”     


어쩔 수 없이 영선은 전화통화가 끝낸 여자에게만 커피를 건넸다. 커피를 받은 여자는 아까와 달리 아주 흡족하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커피를 마신다. 영선은 덩그러니 남은 아메리카노 한 잔과 카푸치노 한 잔을 바라보다가 남학생을 쳐다본다. 남학생의 휴대폰 카메라가 카푸치노에 머물러있었다.      


“근데, 학생 이름이 뭐라고 했지?”

“하 성우라고 합니다. 하 정우가 아니라 하 성우.”

“카푸치노 좋아하나 보네. 한번 마셔봐요.”     


성우는 기다렸다는 듯이 휴대폰을 내리고 카푸치노를 받아 마신다. 영선도 오랜만에 자신이 내린 커피를 맛본다. 내가 내린 커피지만 향도 좋고 맛도 좋구나. 남자와 여자가 커피도 마시지 않고 그냥 나가 버린 이유가 내심 궁금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만큼. 그렇게 영선의 일요일 오후는 또 엉거주춤 흘러가고 있었다.        


그랑자트섬의일요일오후_쇠라

   

#노래소설 - 차우차우(너의 목소리가 들려 - 델리스파이스)     


“이건 얼마예요?”     


순간, 나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분명 그놈 목소리였다. 악의적이며 변태적인 말들을 쉴 새 없이 뱀처럼 내뱉던 바로 그 목소리. 잠시 동작을 멈추고 나는 그 목소리 방향으로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깜짝 놀랐다. 고개를 돌린 그곳에 그 목소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멀쩡하게 생긴 남자의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 옆에는 참하고 예쁜 여자 친구가 팔짱을 끼고 있었다. 나는 반신반의하며 다시 한번 그 목소리를 확인하기 위해 그들 옆에 바짝 다가섰다.     


“이게 동네 정육점보다 싼 건가?”    

 

분명 그놈 목소리였다. 너무 기가 막혀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나는 통신회사 고객센터에 근무하는 직원으로 각종 통신서비스 관련 민원을 접수받고 안내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 전화만 받는 일이니 편할 거라 생각하겠지만,  누군지 알 수 없는 대상에게 일방적인 전화를 받아야 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면 정말 상상도 못 할 변태 혹은 진상들의 전화가 많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지금 듣고 있는 이 목소리는 콜센터 직원들 사이에서 가장 악명 높은 놈의 목소리였다. 전화 내용도 내용이었지만, 50명 가까이 되는 직원들 중에 그의 전화를 받아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는 거의 매일 성실하게 전화를 걸어 고객센터 직원들의 멘탈을 탈탈 털어버리는 악질 중에 악질이었다.

 

“자기도 한번 먹어봐! 아~~”   

  

그 악질 고객이 지금 여자 친구에게 잘 익은 불고기를 입에 손수 넣어 주고 있었다. 여자는 조그맣게 입을 벌리더니 수줍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보아하니 여자는 남자 친구의 다정함에 흠뻑 빠져 있는 것 같았다. 속이 메슥거리고 토할 것 같다. 그의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욕설과 변태적인 말들을 참아내며, 나는 그가 분명 성불구자이거나 여자를 제대로 만나 본 적 없는 불쌍한 루저일 거라 생각했었다. 그렇게라도 그놈을 불쌍하게 생각해야 그로 인해 받은 상처를 무시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남자는 사랑스러운 애인이 있는 너무도 반듯한 청년이었다. 더군다나 자신의 남자가 그렇게 고약한 변태라는 사실을 모른 채 방긋방긋 웃고 있는 여자를 보고 있자니 더욱더 그랬다.  


진상 변태 고객들의 전화 문제로 처음에는 고객센터 차원에서 제제를 가하거나 경찰에 신고를 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전화를 한 번도 받아 본 적 없는 윗분들은 고객은 무조건 왕처럼 모셔야 한다며 고객센터에서 먼저 신고하거나 수신거부를 할 수는 없다고 결론을 내려버렸다. 그래서 지금까지 고객센터 직원들은 그놈의 오바이트 같은 말들을 매일매일 받아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나는 정신병자인 줄 알았던 그놈이 이렇게 멀쩡한 척 세상을 활보하고 다니는 것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마트를 나서는 그놈과 여자의 뒤를 조용히 밟았다.   

    


그놈과 여자는 다정하게 어깨동무를 하고 거리를 활보하다가 동네 예쁘장한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잠시 망설이다가 나도 따라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혹시나 내가 누구인지 알아볼까 걱정을 하긴 했지만, 다행히 그놈은 애인과 애정행각을 하느라 주변 사람들 눈치를 전혀 보지 않았다. 커피를 시키고 그들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크게 한 숨을 내쉬고 나는 무모해 보이지만 용감한 나의 응징을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고객센터입니다.”     


갑작스러운 나의 외침에 커피숍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본다. 물론, 그놈과 그 여자도 나를 쳐다본다. 그놈이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도록 나는 일부러 그놈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혹시나 본색을 드러내며 내게 달려들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역시나 그놈은 현실에선 광기도 부릴 줄 모르는 한심한 쭈글이였다. 그렇게 숨 막히는 몇 초가 지나고, 놈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뜨끔했을 것이다. 그놈이 매일 전화를 거는 고객센터였으니까. 그 기막힌 순간을 놓칠세라 나는 더 큰 소리로 외쳤다.

    

“어머, 죄송합니다. 고객님! 제가 앞으로 고객님처럼 무례한 전화는 절대 받지 않기로 해서요, 이만 전화 끊겠습니다. 앞으로 다시 한번 그 딴 식으로 전화를 주시면 바로 경찰에 신고할 테니 이점 양해해 주시고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 친구 분과는 부디 오래오래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마침표를 찍듯 그놈의 얼굴에 다시 한번 레이저를 날렸다. 놈의 얼굴이 완전히 얼어서 백지장보다 더 하얗게 질려 버렸다.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겨우 참았다. 놈의 옆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앉아 있던 여자는 아마도 나를 미친 여자로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막혔던 하수구를 뚫은 것처럼 속이 시원했다. 결국, 내 무모한 도발에 그놈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여자 친구와 함께 커피숍을 도망치듯 나가 버렸다.


그날 이후 그놈의 전화는 더 이상 걸려오지 않았고, 내 무용담은 고객센터의 전설로 남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와 아쉬운 것은 커피 맛이 좋기로 소문난 그 커피집에 다시는 가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음화에 계속....



#겉보기엔멀쩡해보이는변태들의천국

#얼굴보고하지못할말은어디서도하는게아니죠

#감정노동에시달리는사람들을위한소심한복수

#당신주변에도이런인간들꼭숨어있을지도몰라

#진짜갑도아닌것들이갑인척하는꼴불견

#델리스파이스

#챠우챠우

#아무리애를쓰고막아보려해도너의목소리가들려

#너의목소리가들려

#연재소설

#브런치소설

#브런치작가

#조경아

#외롭고웃긴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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