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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경아 Nov 25. 2018

나쁜 사람

내게 그리움은 그리 낭만적인 감정이 아니다.


[#] 노래를 듣고 떠오른 이미지로 만들어진 미니 연재소설입니다. 참고로 지금 외롭고 웃긴 가게에서는 '김광석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라는 노래가 흐르고 있습니다.

☞ 김광석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노래 듣기♪



영선은 새로 생긴 빌딩에 커피숍이 들어오면 분명 가게 매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거라 예상했다. 더군다나 빌딩 1층에 오픈한 카페는 빌딩 주인 아들(진상 손님)이 운영하는 카페였다. 크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사실 영선은 그에 대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지금도 아르바이트도 고용하지 못하고 쉬는 날도 없이 매일 일을 하기 때문에 겨우 운영되고 있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영선의 그런 비관적인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새로운 카페가 오픈하고 며칠 동안은 손님이 급격하게 줄기는 했지만, 일주일 정도 지나자 다시 예전 매출로 회복했기 때문이다.  요 며칠은 빌딩에 새로 들어온 회사가 꾸준히 늘어나면서 아침 시간과 점심시간에 손님들이 오히려 늘기도 했다. 덕분에 점심 피크 타임에는 영선의 손이 열 개라도 모자를 지경이 되었다. 덕분에 오랜만에 가게에 놀러 온 친구 지선은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설거지를 도와주는 신세가 되었다.  

    


“장사 안 된다고 앓는 소리 하더니 손님이 왜 이리 많아?”

“아니야, 딱 점심시간만 그래. 지난주엔 점심시간에도 손님이 없어서 이러다 문 닫는 거 아닌가 했다니까.”

“사거리에 새로운 카페도 생겼다며 무슨 일 이래?”

“손님들 말이 그 카페 음료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하더라고.”

“아하, 빌딩 주인 아들이라더니 완전 고급지게 장사하시려고 했나 보네. 근데, 맛이 별로였나? 요즘은 비싸도 맛있으면 몰리던데.”

“그것도 그런데 이쪽 상권이랑 분위기가 잘 안 맞는 것도 있는 거 같아. 여긴 좀 실용적인 거 좋아하는 분위기라. 암튼 네 덕분에 오늘 하루 잘 버텼네.”

“너 이런 추세면 알바를 뽑아야 하는 거 아냐? 피크 타임만이라도.”

“응, 며칠 더 지켜보고.”

“너 돈 너무 아끼다가 골병든다. 얼른 알아봐. 아님, 내가 계속 도와줄까?”

“아냐. 너 힘들어서 못해. 그리고 네 신랑이 참 좋아라 하겠다.”

“그게 아니라 내가 못 미더운 거겠지. 하하.”

“뭐 좀 마실래? 지금 유자차 맛있는데 그거 줄까?”

“아냐, 난 됐으니까. 너나 이리 와서 좀 쉬어.”   

  

영선이 막 앉아서 쉬려는데, 종이 울리며 잘 차려입은 아주머니 손님들이 들어왔다. 두 사람 모두 미용실에서 예쁘게 단장한 웨이브 머리, 번쩍이는 액세서리, 옅은 갈색 선글라스, 같은 색 립스틱과 비슷한 모양의 눈썹 문신을 하고 있어 얼핏 보면 쌍둥이 같았다.

      

“저기, 우리 카페라테 주세요!”

“카페라테로 두 잔이요?”

“아니, 한 잔만 뽑아 줘요. 대신 줄 때 컵 두 개에 나눠서.”

“네?”

“아니, 우리가 커피 한 잔을 다 못 마셔서. 버리면 아깝잖아요!”

“아, 네.......”     


영선은 작은 한숨을 쉬고, 바로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지선은 기가 막힌 표정으로 혼자 혀를 끌끌 찼다. 쌍둥이처럼 비슷한 두 아주머니는 햇살이 제일 잘 들어오는 창가 앞에 앉아 교양 있게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사진출처 - http://lifeinmd.tistory.com/110

 

“카페라테 두 잔, 아니 한 잔 나왔습니다.”     


아주머니들은 영선의 말을 못 들었는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영선은 커피 두 잔을 아주머니들에게 가져다주었다. 커피를 건네주고 돌아오는데, 지선이 영선 대신 황당한 표정을 지어주었다. 영선은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다. 영선의 가게는 어느새 즐겁게 수다를 떠는 두 아주머니, 그리고 차마 목소리도 낼 수 없어 제대로 얘기도 못하는 가게 주인 영선과 지선으로 대립되는 상황이었다. 그런 긴장감 속에서도 손님들은 오고 갔고 시간도 무심히 흘러갔다. 오후 해가 길게 눕고 나서야 쌍둥이 같았던 두 아주머니들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영선과 지선은 그제야 한숨을 내뱉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뭐 저런 아주머니들이 다 있냐? 너도 그래. 앉아서 드실 거면 인당 주문을 하라고 했어야지.”

“그런 거 다 따지면 장사 못해. 그래도 저분들은 귀여운 편이라니까. 저번에 어떤 사람은 다른 가게 커피 잔을 들고 들어와서 나한테 리필을 해달라고 하더라. 그 가게까지 다시 가기 귀찮다고.”

“진짜? 그래서 뭐라고 했어?”

“뭘 뭐라고 해. 그냥 한 잔 뽑아 줬지. 대신 샷 추가는 500원입니다. 이랬지.”

“야, 500원 가지고 되냐? 커피 값 제대로 내라고 해야지.”

“됐어. 그런 사람들은 빨리 내보내는 게 속 편해. 괜히 싸우면 장사도 못하고 나만 힘드니까.”

“근데, 너 원래 정도에 벗어나는 거 그냥 못 보던 사람 아니었냐?"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지. 그냥 아무리 경우 없이 굴어도 나한텐 아무 의미 없다 생각하기로 했어. 어차피 내 인생에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니까 상처 받고 미워할 필요도 없는 거지.”

“하긴, 진짜 상처는 내 편이라고 믿었던 사람한테 받는 거니까.”

“그래. 내 편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던진 무심한 한마디가 몇 배 더 화가 나고 배신감 들잖아. 근데, 너 집도 먼데 이제 가봐야 하지 않아?”

“나? 괜찮아. 난 오늘 너랑 술 한 잔 하고 갈까 생각하고 왔는데?”

“진짜? 신랑이 싫어할 텐데. 어디 출장이라도 간 거야?”

“응, 어딜 가긴 갔지.”

“그래도 일찍 들어가야지. 너 신랑이 계속 전화하고 그러잖아.”

“괜찮아. 그런 전화 이젠 안 올 거야.”

“왜, 또 싸웠냐?”

“아니, 우리 이혼했어.”     


영선은 너무 놀라 지선의 얼굴을 쳐다봤다. 지선은 우는 듯 웃으며 아까부터 문지르고 있던 탁자를 계속 뽀득뽀득 문지르고 있을 뿐이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창밖 헤드라이트 불빛이 하나둘씩 가게 안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던 영선이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카페 문이 열렸고, 두 사람의 손님이 어둠을 몰고 들어왔다. 그중 한 명은 검은 정장을 입고 있어 저승사자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덕분에 영선은 지선에게 위로의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묵묵히 검은 커피를 내려야만 했다.   


       

#노래 소설 -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김광석)   

  

“너 혹시 그 사람....... 아직 못 잊은 거니?”

“무……무슨 소리야? 갑자기.”

“그냥 요즘은 어떤가 해서……”     


친구의 뜬금없는 질문에 나는 무어라 똑 부러지게 답을 하지 못했다. 아니라고, 다 잊었다고. 선선하게 웃으며 말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나는 정말 그 사람을 잊지 못한 걸까? 모르겠다.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본다.  요즘은 사실 예전처럼 그 사람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아프지 않았다. 때론 다른 누군가에게 끌려 다시 사랑이라는 걸 하고 싶다 생각해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부풀었던 설렘이 거품처럼 가라앉을 무렵이면 언제나 그 사람 생각이 났다. 무엇을 하든 어떤 감정을 가지든 어느 순간이 되면 습관처럼 떠오르는 사람은 언제나 그였다. 어쩌면 나는 아직도 그 사람을 잊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친구에게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한 것은 이런 내가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 그리움이란 감정은 그렇게 낭만적인 감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했던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충분히 그리고 완전히 사랑하지 못했다는 말과도 같으니까.     


“그런 말 하지도 마. 누가 믿기나 하겠니? 아직도 그렇다면…….”

“그래, 그렇지. 근데 가슴에 누군가 못 잊을 사람 간직하고 사는 것도 나름 멋진 일이야. 난 그런 거 해보려고 해도 잘 안되거든.”    

 

친구의 위로 같지 않은 위로에 괜히 눈물이 핑 돈다. 때론 그런 위로가 더 아플 때도 있다는 것을 친구는 잘 모르는 것 같다. 눈물처럼 쏟아질 것 같은 감정을 애써 삼키며 한숨을 내쉰다.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다. 본능적으로 감정을 숨기기 위해 만들어진 이상한 습관이었다. 마음이 아플 때마다 자동반사처럼 얼굴에 번지던 내 거짓 미소를 한눈에 알아 봐 준 것은 그 사람뿐이었다. 그 생각이 들자 또 울컥 설움이 올라온다.   

  

“그게 그렇게 멋진 일 아니야. 서로 충분히 사랑하지 않아서 남은 미련 같은 거니까.”

“그래도 난 부러워. 허수아비 같은 사람 옆에 두고 사는  것보단 그게 백배 나을 것 같거든.”

“아니라니까!”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친구도 나도 놀랐다. 친구는 금세 담담한 얼굴로 다시 차를 마신다. 나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따라 마신다. 그래, 정말 아니다. 나도 누군가 다시 뜨겁게 사랑할 누군가를 만났다면, 그 사람의 존재 따위는 까맣게 잊었을 테니까. 그냥 습관처럼 잘 포장된 기억 속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뿐이다. 멜로드라마에서나 나오는 그런 달콤 쌉싸름한 감정이 아니다. 초라한 인간들의 자기 위로일 뿐, 결국 아쉬운 게 많은 사람이 제대로 잊지 못하고 질척거리며 그리워만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 말은. 그게 그렇게 낭만적인 감정이 아니란 거야. 그저 고인 물처럼 썩어가는 감정 같은 거라고.”

“알아. 그래도 그렇게까지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 필요는 없어.”

“그래, 그렇지……그러니까 부러워할 필요도 없다고.”

“그래, 그건 솔직히 오버였다.” 

    

다시 눈물이 핑 돈다. 이런 일로 친구와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싫었다. 친구의 얼굴도 나처럼 굳어있다. 문득 미안하단 생각이 든다. 화제를 돌려 보려고 하는데, 친구가 먼저 다시 이야기를 꺼냈다.   

  

“돌려서 말하려다 보니, 자꾸 괜한 말을 하게 되네. 그래, 언제 알아도 알게 될 일이니까.     


그런 친구를 빤히 쳐다본다. 무슨 일이 있는 거구나. 그 사람과 관련된 새로운 소식이 있다는 것을 나는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서 또  바보처럼 웃는다. 그래, 이런 날이 오리라는 걸 여러 번 상상하곤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사람을 잊었다고 말할 걸. 그랬으면 좀 더 빨리, 그리고 편하게 내게 말했을 텐데. 이렇게 된 이상 내가 먼저 물어보는 게 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왜, 그 사람 혹시....... 결혼했어?”     


친구가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한다. 맞는구나. 문득, 이제 그 사람을 마음껏 그리워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자 발꿈치가 저릿저릿 아파온다. 마음이 무너져 내릴 때 나타나는 또 다른 현상이다. 정신을 차려야지. 어떻게든 이 순간을 모면해야지. 친구에게 애써 가식적인 미소를 보이며 다시 묻는다. 

     

“그런 거구나? 그래서 네가 그렇게 물었던 거고. 괜찮으니까 편하게 이야기해. 아들 장가보내는 기분이 이런 건가? 괜히 후련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고 그러네.”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럼, 뭔데? 왜 이리 뜸을 들여?”

“그 사람……죽었어. 교통사고로……. 사실 나 지금 거기 갔다 온 거야.”     


친구의 옷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러고 보니 친구는 평소와 취향과 다르게 새까만 옷을 입고 있다. 갑자기 화가 난다. 이상한 건 화가 나는데 또 눈물도 난다는 것이다.  모르겠다. 내가 지금 슬픈 건지 아픈 건지. 분명한 것은 이제 아무리 노력해도 그 사람을 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나쁜 놈. 끝까지 내게 아픔으로 남아 버린. 세상 누구보다 나쁜 놈.



다음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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