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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경아 Dec 16. 2018

로맨스라는 판타지

흔하고 뻔해 보일지 모르지만 내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 일


[#] 노래를 듣고 떠오른 이야기들로 만들어진 미니 연재소설입니다. 참고로 지금 외롭고 웃긴 가게에서는 '로이킴의 상상해 봤니?'라는 노래가 흐르고 있습니다.    로이킴의 상상해 봤니? 노래 듣기♪



“우유 왔습니다.”     


오늘도 우유배달 청년은 영선의 가게 냉장고에 새하얀 우유를 차곡차곡 채워주고 갔다. 하지만 오늘도 영선은 우유배달 청년에게 수고했단 말 한마디도 건네지 못했다. 평소 말이 별로 없는 영선이었지만, 그래도 가게를 한 후로는 곧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영선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우유배달 청년에게만은 인사말도 제대로 건네질 못했다. 우유배달 청년 역시 말이 거의 없는 사람이라 앞으로도 두 사람은 대화를 주고받을 일이 거의 없을지도 모른다. 뭐 그렇다고 해도 영선은 괜찮았다. 가끔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니까.     


  


한가한 저녁 시간 영선은 카페 구석자리에서 한 여자 손님이 친구에게 어제 했던 드라마 얘기하는 것을 계속 듣고 있었다. 드라마에 관심이 있다기보다 그 여자 손님의 이야기와 표정이 재밌었다. 영선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드라마였지만 대충 그 드라마 내용을 알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어쩌면 여자 손님이 드라마 남자 주인공을 묘사할 때 표정이 너무 행복해 보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생각하기만 해도, 얘기만 해도 좋은 사람을 가지고 있다는 건 그래서 좋은 일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도 행복하게 만드니까.  

   

사실 영선은 이제 누군가와 드라마 같은 연애를 하고 로맨틱한 결혼을 꿈꿀 만큼 순진하지 못했다. 그 무엇을 상상하든 현실에선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저 생각만으로도 설레는 무언가는 늘 가지고 싶었다. 그것이 사람이든 일이든 물건이, 그 설레는 마음 하나로 자신이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얼마나 반짝거렸는지 영선은 분명히 기억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만나 처음으로 설레는 감정을 품었을 때 영선은 그 사람과 함께 할 미래를 꿈꾸며 누구보다 반짝거렸다. 자신만의 가게를 꿈꾸며 열심히 준비하던 그 순간에도 영선은 별처럼 행복했고 빛이 났다. 회사를 다니기 전에는 회사에 들어가기만 하면 자신의 삶이 봄날의 햇살처럼 눈부실거라 믿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고 보면  영선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꿈꿀 때 가장 반짝거리는 사람이니도 모르겠다.

  

 “캐러멜 마끼아또 한 잔이요!”     


영선은 손님의 주문을 듣자마자 뜬금없이 우유배달 청년이 캐러멜 마끼아또를 좋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왜일까? 영선도 그 이유를 몰랐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캐러멜 마끼아또와 우유배달 청년의 터무니없는 연관성이 영선의 무거운 입꼬리를 가볍게 위로 올렸다는 것이다. 어쩌면 영선은 지금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또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노래소설 - 로이킴의 상상해봤니?     


내 좋은 친구는 오늘도 요즘 푹 빠져 있는 로맨틱 드라마 이야기뿐이다. 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드라마였지만, 이미 열 번은 더 본 것 같은 기분이다.     


“순간, 서로 눈이 딱 마주친 거야! 정말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니까!”

“응, 그랬구나.......”

“뭐야? 영혼 일도 없이.”

“그 얘기만 벌써 30분째 하고 있는데 어떻게 영혼이 첨가되겠냐?     


결국 친구의 뽀로통한 표정을 보고 말았지만, 덕분에 나는 더 이상 드라마 얘기를 듣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들 수 있었다. 살짝 삐친 친구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나는 아주 어리고 풋풋한 연인들의 모습을 드라마 보듯 보고 있었다. 그들의 설레는 눈빛을 바라보며, 나는 친구의 드라마 이야기보다 더 재밌는 상상을 해본다. 그들의 설레는 로맨스의 끝은 과연 아름다울까?     


내 친구와 달리 나는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현실성 없는 너무 황당무계한 이야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실과 전혀 다른 판타지 이야기라면 친구처럼 대리만족감이라도 느껴볼 수 있겠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결국 환상적인 해피엔딩을 이루고 마는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는 너무 뻔하고 뻔뻔스러웠다. 더군다나 로맨틱 드라마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늘 한결같은 모습이다. 사업이 망해도, 다신 일어서지 못할 것 같은 절망 속에서도, 건강을 잃어버려도, 세상 무너질 것 같은 배신을 당해도, 곧 죽을병에 걸려도, 어떻게든 사랑에 빠지고 또 그 사랑을 지켜내는 천하무적들이다. 더 불편한 것은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주인공들은 항상 멋지고 예쁜 모습으로 가장 현명한 선택들을 해낸다는 것이다.      


어쩌면 항상 사랑에 실패했던 사람의 자격지심일지도 모르겠다. 내게 사랑은 마냥 설레고 행복한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같은 사랑이 아니었다. 언제나 엇갈렸고, 아팠고, 외로웠고, 안타까웠다. 억울할지도 모르지만, 그런 사랑만 하게 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누군가와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사랑에 빠져 적당한 관계를 적당한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나 같은 사람들에겐 꿈에도 바랄수 없는 기적과도 같은 일인 것이다.    

 

물론, 나 같은 사람도 사랑에 대한 판타지는 다. 별처럼 빛나는 누군가를 만나 그 사람을 아낌없이 사랑하고 사랑받는 꿈같은 일은 누구나 꿈꾸는 판타지니까. 실제로 나는 꿈꾸던 누군가를 발견하기도 했고, 그 존재에 취해 혼자 설레고 행복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설레발은 늘 항상 어김없이 웃지못할 비극으로 끝났다. 그렇게 당신들에겐 물을 마시는 일처럼 쉬운 사랑이 나에게는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보다 사랑하면 안 될 이유가 더 많아져 버린 지금도, 나는 가끔 상상한다. 지금이라도 운명 같은 누군가가 내 앞에 나타난다면, 과연  드라마에 나오는 그들처럼 나는 사랑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없다. 내게 사랑은 정답이 없어 풀수 없는 고난위도 철학문제같은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버스에 내려 집으로 가는 길, 닿을 수 없는 하늘 구석 어딘가에서 홀로 빛나고 있는 초승달을 뒤로하고  나는 편의점에 들어갔다. 내일 마실 생수를 몇 병을 사려다가 시원해 보이는 맥주 한 캔을 집어 들었을때, 부르르르 문자가 왔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내 좋은 친구의 문자였다.   

  

/내가 오늘 너무 드라마 얘기만 했지? 미안해. 요즘 내가 다른 낙이 없어서 그래. 그래서 하는 말인데, 너도 그 드라마 나랑 같이 좀 봐주면 안 될까?/     


친구의 부탁이 너무 귀여워서 소리 나게 웃어 버렸다. 내 좋은 친구는 그냥 그 드라마를 내게 영업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사랑이 어쩌고, 로맨틱 드라마가 저쩌고 쓸데없는 생각만 늘어놓고 있었다. 귀여운 드라마 빠순이 내 친구를 위해서 취향에 맞 않는 로맨틱 드라마를 한 번은 봐줘야겠다. 또 누가 알겠는가? 친구 덕에 나도 로맨스라는 판타지에 빠져 또 다른  사랑을 기대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음화에서 계속...



#로맨스라는판타지에빠진그대에게

#부러움과존경을보내며

#좀처럼취하지않는술처럼

#사랑에빠지기어려운분들을위하여

#당신의눈동자에건배

#로이킴

#상상해봤니?

#연재소설

#3인칭관찰자시점

#조경아작가

#브런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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