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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경아 Dec 30. 2018

사랑, 그 수고로움에 대하여

수고로움. 그걸로 정말 내 사랑을 증명할 수 있을까?


[#] 노래를 듣고 떠오른 이야기들로 만들어진 미니 연재소설입니다. 참고로 지금 외롭고 웃긴 가게에서는 '옥상달빛의 수고했어, 오늘도'라는 노래가 흐르고 있습니다.    수고했어, 오늘도(옥상달빛)노래듣기♪



“오늘도 수고했어!”

“사장님, 오늘은 제가 좀 더 일하고 가면 안 될까요?”

“뭐 그럼 좋겠지만, 아시다시피 나는 지금 추가 수당을 줄만한 여유가 없단다. 근데, 오늘 같은 날 왜?”

“크리스마스이브잖아요. 어딜 가도 사람이 많고, 비싸고.”

“세상에, 그래서 이런 날 그냥 일을 하겠다고?”

“전 사실 이런 날 밖에 나가는 거 엄청 싫어하거든요. 여자 친구한테 솔직하게 말하고 약속 취소하면 안 되겠죠?”

“글쎄다. 머리로는 이해할지도 모르지만, 마음으론 용서가 될지 모르겠네?”

“사실, 여자 친구는 오늘 엄청 기대하고 있는 거 같아요. 둘이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라고.”

“거봐. 근데, 혹시 여자 친구가 귀찮아진 건 아니지?”

“아후, 아니에요. 제가 여자 친구 얼마나 좋아하는 데요. 제가 싫고 귀찮은 건 요런 날 밖에 나가는 거죠.”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이 원하는 건 수고롭더라도 해주는 게 맞지 않을까?”

“그렇겠죠, 아무래도.”   


  

입고 있던 앞치마를 벗어서 차곡차곡 접고 있는 성우의 입이 오리처럼 튀어나와 있는 것을 보고 영선은 피식 웃었다. 어쨌거나 성우는 참 좋은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그걸 잘 모르는 성우가 힘 빠진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서는데 유모차를 동반한 가족 한 팀이 가게로 들어왔다. 한 살이 될까 말까 한 갓난아이 손님은 가게로 들어서자마자 어떻게든 유모차에서 나오려고 발버둥 쳤다. 아이 엄마는 아이를 안아 올리려다가 멈추고 남편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들어설 때부터 지금까지 스마트 폰만 보고 있던 아이 아빠는 그제야 눈치가 보였는지 스마트 폰을 테이블에 놓고 아이를 안아 올린다. 아이 엄마는 길고 나지막한 한숨을 쉬고 난 뒤 영선에게 다가왔다.      


 “유자차 두 잔 주세요! 제가 실은 며칠 전 여기 와서 유자차를 마셨는데, 너무 맛나서 다시 온 거예요.”

 “하하, 감사합니다. 제가 직접 담그는 거라 시중에 나온 유자차랑은 맛이 조금 다를 거예요.”

 “어쩐지 너무 달지 않고 유자 향이 제대로 나더라고요. 근데, 혹시 유자청을 따로 팔지는 않으세요?”

 “손님들이 가끔 그렇게 물어보시는데, 그러면 제가 너무 힘들어질 것 같아서요. 아무래도 평소보다 많이 담아야 하니까.”

 “그렇죠. 너무 수고로운 일이긴 하죠.”

 “어쨌든 감사합니다. 오늘도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네요.”    

 

영선은 음료를 준비하면서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자신이 좋아하는 어떤 것을 누군가 알아봐 주었을 때 느껴지는 기쁨이란 그런 것이다. 영선은 대체로 향이 좋은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커피도, 쿠키도 과일청도 모두 그래서 시작한 일이니까. 사실 커피를 하면서 쿠키를 만들고 과일 청까지 만드는 것은 보통 수고로운 일이 아니다. 특히 한 겨울에는 과일을 씻는 일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과일의 특성상 찬물로 여러 번 빡빡 문질러 씻어내고 식초 물에도 담가 둬야 하는 자잘한 수고로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과일청을 담그는 영선의 손은 항상 주부습진이 떠날 날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선이 과일 청을 쉬지 않고 담그는 이유는 더 많이 팔아 돈을 벌겠다는 욕심 때문만은 아니다. 그 수고로운 일을 하고 난 결과물이 오늘처럼 영선을 만족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유자차 나왔습니다.”     


영선은 아이 엄마에게 유자차를 직접 가져다주고 싶어서 음료를 들고 테이블로 다가갔다. 그러는 사이 영선은 아이는 보지 않고 스마트 폰에만 빠져 있는 아빠의 모습에 한숨짓는 아이 엄마의 모습을 본다. 그녀의 얼굴에 어쩔 수 없는 고독이 진하게 보인다. 영선이 유자차를 건네자 아이 업마는 애써 웃으며 찻잔을 받는다. 영선은 달콤한 유자차가 아이 엄마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기를 바랐다. 그렇게 위로 같은 찻잔을 테이블에 남겨두고 카운터로 돌아가는 길, 영선은 어제 한 보따리 사다 놓은 자몽 생각이 났다. 그걸 또 언제 다 씻을까?  이번엔 영선의 얼굴에도 어쩔 수 없는 고독이 슬쩍 내비친다. 


사진출처 : 경주 여행길 게스트하우스 @kim_hyeonjuung

    


#노래소설 수고했어오늘도(옥상달빛)     


나는 아무래도 엄마가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인가 보다. 절망이다. 나라는 사람이 이렇게 인내심 없고 모성애가 부족한 사람인 줄 예전엔 미처 몰랐기 때문이다. 문득, 내 팔에 안겨 새근새근 자고 있는 아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임신 8개월 차가 되었을 때부터 나는 엄마가 된다는 것이 두려웠다. 내가 아닌 누군가의 엄마로 살아갈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믿기지 않는 현실을 부정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여기까지 왔다. 더 괴로운 것은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환청처럼 나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들린다는 것이다. 어쩜, 엄마가 자기 자식을 두고 그런 생각을 해? 여자라면 모성애로 모든 걸 극복해야 하는 거 아냐? 그럴 거면 결혼은 왜 하고 애는 왜 가졌어? 그런 목소리가 오버랩될 때쯤 나는 마음속으로 건조하게 되묻는다. 그러게요. 왜 나는 분수에 맞지도 않는 엄마가 되어 이렇게 멍청하게 살고 있는 걸까요?    


고흐가 그린 시엔

  

 “엄마, 나 너무 힘들어.”

 “그래, 지금 한창 그럴 때지. 엄마도 너희 셋 키울 때 그랬으니까.”

 “진짜 엄마는 어떻게 셋이나 낳고 키웠어?”

 “그땐 그게 밥 먹고 자는 것처럼 당연한 거라 생각했으니까.”

 “미안해, 엄마! 존재 자체로 힘들게 해서.”

 “얘가 왜 그래? 너 혹시 산후 우울증 같은 거 생긴 거 아니니?”

 “그런가? 가끔 아무 이유도 없이 눈물이 나긴 하지만, 우울증까진 아닌 거 같아.”

 “안 되겠다. 내일 엄마가 집에 가서 아이 봐줄 테니까 오랜만에 친구들이랑 만나서 카페도 가고 영화도 보고 들어와.”

 “그런다고 뭐가 나아질까?”

 “기분전환은 확실히 될 거야.”

 “그보다 엄마! 나 진짜 겁이 나 죽겠어.”

 “또 뭐가?”

 “내가 우리 유나를 사랑하지 않는 거 같아서.”

 “그게 무슨 소리야. 당연히 지 자식인데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거지.”

 “글쎄, 난 잘 모르겠어. 유나 보살피는 게 너무 힘들고 벅차. 유나 때문에 내가 망가지는 것 같기도 하고. 엄마, 나 진짜 못됐지?”

 “아냐, 그건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일 거야. 다들 입 꼭 다물고 살아서 그러지. 이상한 거 아냐.”

 “그래? 엄마도 그랬어?”

 “그럼, 엄마도 그랬지.”

 “그래? 근데 엄마는 나 말고도 둘을 더 나아서 키웠잖아. 아이가 좋으니까 그런 거 아냐?”

 “뭐 그냥 상황에 맞춰 살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도 있는데, 너희가 예쁘지 않았다면 못했겠지?"

 "거봐. 엄마는 우리를 다 넘치게 사랑했던 거라고."

 "근데,  아이 키우는 걸 너처럼 힘들어한다고 해서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지 않니?”

 “그럴까? 난 왜 안 그런 거 같지?"

 "엄마가 보기에 너는 유나를 넘치게 사랑하고 있어."

 "엄마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넌 지금 유나를 위해 수고롭고 힘든 일들을 다 해내고 있잖아.”


수고로움. 그걸로 정말 내 사랑을 증명할 수 있을까? 빈껍데기처럼 남은 내 죄책감을 씻어낼 수 있을까? 

    

 “근데, 엄마! 그런 수고로움을 왜 엄마들만 감수해야 하는 거지?”

 “에휴, 모르겠다. 나도 내가 왜 그렇게 살았는지. 암튼 내일 오전에 너희 집으로 갈게. 오늘은 이만 전화 끊자!”     

사랑과 수고로움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엄마 역시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혹시 내가 너무 당연하게 그 수고로움을 혼자 감당하려고 했던 건 아닐까? 어쩌면 나는 내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기준에 나를 맞추려고 했기 때문에 힘들었던 거 아닐까?  그제야 나는 수고했어라는 말 한마디보다 함께 수고한 사람들만이 나눌 수 있는 뿌듯한 미소가 필요했단 사실을 깨달았다. 


다음화에서 계속...



#한사람만수고로운사랑은사랑일까요

#수고롭지않은사랑은사랑이아닐까요

#사랑과수고로움의상관관계

#수고했다는말에목숨을거는건아니지만

#그래도가끔은수고했다누군가토닥여줬으면

#올한해누구보다수고했을그대들을위한위로

#수고했어오늘도

#수고했어올한해도

#새해복많이받으세요

#옥상달빛

#연재소설

#노래소설

#브런치작가

#조경아

#3인칭관찰자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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