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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경아 Sep 08. 2015

[노래소설] 케이윌의 "그립고 그립고 그립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오보에 소리...



“자, 아이템 회의 시작합니다. 아이디어 있으면  말씀해보세요!”


 김 PD는 작가들의 얼굴을 한번 쭉 둘러 본다. 보아하니 이번 주도 별 볼일 없는  듯하다. 그때, 한 구석에 앉아 있던 막내 작가가 볼펜을 만지작거리더니 조심스럽게 손을 든다.  선배 작가들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김 PD는 눈 짓으로 어서 말해 보라는 신호를 보낸다.


 “한 달 전 시청자 제보에 올라왔던 사연인데요……”


 한 달 전 막내 작가가  제보받았던 내용이었다. 한 할아버지가 한강고수부지에서 매주 금요일 밤마다 오보에를 분다는 사연이었다. 제작진에서는 너무 평범한 이야기가 아니냐며 무시해 버렸던 내용이다. 그런데, 막내작가가 그 내용을 다시 이야기 하고 있는 거다. 조금은 짜증 난 톤으로 선배 작가들은 그 이야기를 또 왜 하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막내 작가는 혹시 몰라서  지난주 금요일 날 직접 한강고수부지에 나가 보았다는 거다. 그런데, 아저씨의 오보에솜씨가 장난이 아니었다는 거다. 막내 작가 언니가 오보에를 전공했기 때문에 듣는 귀는 있는 편인데, 오보에를 전공하지 않고서는 불기 힘든 프로 수준이었다고 했다. 또한, 이미 그 동네에서는 입 소문이 퍼져 금요일 저녁이면  백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 할아버지를 기다린다고 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멋진 연주를 끝내고, 사람들의 박수소리에 보답은커녕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인사도 없이 도망쳐 버린다는 것이다. 문득, 김 PD는 막내 작가 이야기에 관심이 쏠렸지만, 선배 작가들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고 김 PD는 속내를 감췄다. 아이템 회의가 다 끝난 뒤, 김 PD는 회의 테이블을 치우고 있는 막내작가에게 조용히 다가가 물었다.


 “그 고수부지가 어느 지구라고 했지?”


 금요일 밤, 김 PD는 사람들이 붐비는 한강 고수부지로 향했다. 막내작가가 말한 장소는 성수대교 바로 밑 이였다. 강바람이 시원하게 불었다. 약간 비릿한 물 비린내도 나는 것 같았지만, 기분은 좋았다. 편의점에서 산 맥주 한 캔을 주머니에서 꺼내 마시는 김 PD. 마냥 행복감에 젖어 들 무렵, 어디선가 오보에소리가 바람처럼 들려 왔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모두 숨을 죽이며 그 오보에 소리를 듣고 있었다. 막내작가가 말한 대로 꽤 수준이 높은 연주였다. 문외한인 내가 듣기에도. 실력도 실력이지만, 왠지 모르게 사람의 가슴을 파고드는 슬픔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난 김 PD는 고개를 들어 오보에 소리가 들리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물과 닿을 듯 가까운 강가 끝에 위태롭게 서 있는 한 노인을 발견한다. 아름다운 오보에 선율에 비해 너무 작고 초라한 모습이었다. 김 PD는 문득, 카메라맨과 같이 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하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할아버지가 연주하는 오보에 소리에 귀 기울였다. 그렇게 얼마를 지났을까? 김 PD는 여기 저기서 들리는 박수소리를 듣고 서야, 할아버지의 연주가 끝났음을 깨달았다. 막내작가 말대로 할아버지는 사람들의 박수소리에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오보에를 케이스에 담더니 도망치듯 사라지고 있었다. 김 PD는 조용히 할아버지의 뒤를 밟았다. 작은 체구의 왜소해 보이는 할아버지답지 않게 걸음걸이가 무척 빨랐다. 이러다 놓칠 것 같은 느낌에 김 PD는 서둘러 할아버지를 불렀다.


 “잠시만요,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빠른 걸음을 잠시 멈춘다. 그 사이 김 PD는 할아버지의 걸음을 따라 잡았다. 모자를 눌러 쓴 할아버지는 그제야 고개를 들고 숨을 몰아 쉬는 김 PD를 쳐다 본다. 그사이를 놓치지 않고, 얼른 자신의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는 김 PD는 할아버지에게 자신의 소개를 한다. 조용히 김 PD의 말을 듣고 있던 할아버지는 거부의 뜻으로 깊게 쓰여 있는 모자를  더욱더 깊게 눌러 쓴다. 그리고, 조용히 한마디 한다.


 “죄송합니다."


김 PD가 다른 말을 꺼내기도 전에, 할아버지는 정말 바람처럼 그 자리를 뜬다. 김 PD는 다시 할아버지를 쫓아가려고 했지만, 곧 다음을 기약해 보기로 마음 먹는다. 대개 한 번에 방송 출연을 허락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왠지 저 할아버지는 쉽게 방송을 허락할 것 같지는 않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갑자기 목이 마른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오늘은 맥주가 계속 땅긴다. 다행히 바로 앞에 작은 매점이 보였다. 


 “맥주 하나 주세요!” 


 만 원짜리 지폐를 받아 든 매점 할머니가 힐끗 김 PD를 쳐다 본다. 무슨 할 말이 있는 표정이다. 차가운 맥주와 잔돈을 받아 들고 그냥 돌아 갈까 하다, 김 PD도 할머니를 한번 쳐다 본다. 눈이 마주치자 반가운 듯 물어본다.


 “방송국 사람인가? 아님 신문기자?”


방송국 PD라고 짧게 대답하자, 할머니는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표정을 짓는다. 왜 그렇게 물으시냐고 김 PD가 묻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할머니가 입을 연다. 저 할아버지는 절대 방송국이나 잡지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인터뷰를 할 사람이 아니니 더 이상 할아버지 뒤를 쫓아 다니지 말라는 것이다. 그때, 매점 TV에서는 김 PD가 만든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었다. 김 PD는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아까 꺼냈던 명함을 할머니에게 건넨다. 그러자, 깜짝 놀라며 할머니가 다시 묻는다.


“이 프로그램을 자네가 만드는 거라고?”


 결국, 할머니는 방송에 내보내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오보에 할아버지의 사연을  이야기해주었다. 그 이야기의 시작은 바로 20년 전이었다. 오보에 할아버지의 딸은 20년 전 오보에를 전공한 대학생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졸업 연주회를 앞두고 할아버지 사업이 부도가 나는 바람에 그 당시 꽤 비쌌던 딸의 오보에까지 빨간 딱지를 붙여야 했다. 결국, 할아버지는 빚쟁이 들을 피해 도망 다니게 되었고, 집안의 가장이 된 딸은 학교 졸업을 미루고 여기저기 레슨을 하러 다녀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보에 레슨을 하러 가던 딸이 거짓말처럼 이곳에서 죽었다. 바로, 20년 전 성수대교가 무너지던 그 날 말이다. 한참 뒤에야 딸이 이 곳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할아버지는 통탄의 눈물을 흘렸다. 딸을 따라 죽고도 싶어 했지만, 남은 가족들 때문에 죽지도 못하고 다시 일어서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했다고 한다. 하지만, 죽은 딸을 잊을 수 없던 할아버지는 어느 날부터 악기를 배웠다. 그것도 딸이 연주하던 오보에를. 열심히 연주한 끝에 할아버지는 딸이 죽은 날과 같은 요일인 금요일 밤마다 이곳에 찾아와 연주를 한다는 것이다. 매주 금요일 밤 연주하는 할아버지의 연주는 죽은 딸을 위한 사죄와 그리움의 멜로디였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김 PD는 막내작가의 문자 메시지를 받는다. 장소를 물었던 김 PD가 할아버지를 만났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김 PD는 망설임 없이 막내작가에게 답장을 보낸다. 그 아이템은 생각보다  재미없다고. 그래서 다른 아이템을 더 생각해 보자고. 흔들거리는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는 김 PD. 문득, 저 멀리 새롭게 지어진 성수대교가 불빛에 반짝인다. 문득, 어디선가 딸을 위해서만 연주했던 할아버지의 구슬픈 오보에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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