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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경아 Sep 23. 2024

16화. 그녀의 현관문이 힘겹게 열리던 날

연재소설 <아파트에게>

 민정이가 결혼을 한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저만치 신혼여행을 다녀온 민정이가 신랑과 함께 자동차를 타고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는 게 보입니다. 다행히 신혼여행을 다녀온 민정이의 얼굴에는 화장보다 더 화사한 미소가 번져 있습니다. 민정이 어머니는 민정이가 오기 한참 전부터 아파트 현관에 나와 있었습니다. 민정이가 탄 차가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자 민정이 어머니는 아파트 주차장까지 달려 나와 민정이를 맞이했습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민정이 신랑은 멋쩍게 웃었습니다. 105동 아파트에는 209호 민정이네 덕분에 아침부터 맛있는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영혼 없이 웃고 있는 민정이 신랑을 위한 음식이라고 생각하자, 왠지 심통이 나기도 했습니다. 209호 아주머니가 도대체 무슨 음식을 했는지 들여다보려는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언제나 닫혀 있던 109호 커튼이 살짝 움직이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내게 만약 엉덩이가 있었다면, 놀라서 엉덩방아를 찧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109호 커튼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무겁게 내려앉았습니다. 혹시 제가 잘못 본 것일까요?


 며칠 뒤 정말 놀라 자빠질 일이 벌어졌습니다. 외출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던 109호 여자가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아파트 현관에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109호 여자 몇 발자국 앞에 못생긴 강아지 한 마리가 폴짝폴짝 뛰어다니고 있었다는 겁니다. 109호 여자는 자신이 밖에 나왔다는 사실이 여전히 믿기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몇 걸음 걷지 못하고 자주 멈춰 서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그때마다 목줄에 메인 강아지가 앞으로 자꾸만 튀어나와 109호 여자는 어쩔 수 없이 앞으로 조금씩 나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발걸음을 떼던 109호 여자는 어느새 놀이터 앞까지 왔습니다. 이런 상황이 생각보다 힘들었는지 여자는 연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결국 109호 여자는 강아지 목줄을 풀어 주고 자신은 놀이터 벤치에 주저앉았습니다. 목줄을 풀어주자 못생긴 강아지는 폴짝거리더니 어디론가 달려갔다가, 달려오기를 반복했습니다. 109호 여자는 힘들어 보였지만, 신난 강아지를 놓치지 않고 지켜봤습니다. 마스크와 모자 때문에 얼굴이 보이진 않았지만, 여자의 뒷모습은 분명 그런 강아지를 보면서 환하게 웃고 있었을 겁니다.

 “택배야! 그만 들어가자!”

저만치 달아났던 강아지를 향해 109호 여자가 말했습니다. 덕분에 나는 109호 여자의 목소리를 처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기특한 강아지는 109호 여자의 목소리를 알아들었는지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와 109호 여자의 종아리를 여기저기 핥기 시작했습니다. 109호 여자는 그런 강아지를 쓰다듬더니, 다시 목줄을 채웠습니다. 그리고는 처음 나올 때 보다 훨씬 더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행복해 보이는 누군가의 뒷모습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습니다. 덕분에 나도 오후 내내 행복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 [  2008년 6월 109호 현관문이 힘겹게 열리던 날 ] **


고민 끝에 성형수술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수술을 하기 전 친절한 의사는 부작용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그냥 형식적인 거라며 계약서에 서명을 해 달라고도 했다. 나는 선생님 말처럼 형식적으로 서명을 했다. 그 형식적인 서명이 주홍글씨처럼 내 얼굴에 남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성형수술은 완전히 실패했고, 눈을 제대로 감을 수조차 없는 흉측한 얼굴이 되었기 때문이다. 실패한 내 얼굴을 바라보며 의사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거라고 말했다. 이상했다. 왜, 있을 수 없는 일은 항상 내게만 일어나는 걸까?


의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재수술을 해 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재수술조차 시도할 수 없었다. 수술 후에는 집 밖으로 나설 용기조차 없어졌기 때문이다. 다행히 세상도 그런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스스로 나를 집 안에 가두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 집은 나를 보호해 주는 단단한 갑옷이 되어 주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날카로운 시선과 말들로부터 나 자신을 온전히 지켜주는 단단한 갑옷. 


<택배는 상자에 넣어 주시고, 벨을 한 번만 눌러 주세요!>


우리 집 현관문 바깥에 쓰인 문구였다. 이 문구 덕분에 나는 택배 아저씨들과 눈을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다. 다행히, 택배 아저씨들도 규칙을 잘 따라 주었다. 


##


그날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초인종이 울렸다. 바로 문을 열지 않고 기다렸다. 택배 아저씨가 복도에서 사라지기를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인기척이 사라지고 난 뒤,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었다. 평소대로 팔만 밖으로 내밀어 문 앞에 있는 택배 상자 안을 더듬었다. 택배 상자에서 택배를 꺼내려는 순간, 무언가 물컹한 것이 만져졌다. 깜짝 놀라 뒤로 자빠지면서, 현관문이 활짝 열렸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몰라 멍하니 바닥에 앉아 있는데 상자 속에서 무언가가 계속 부스럭거렸다. 두려운 마음보다 궁금한 마음이 앞서 나도 모르게 상자로 다가갔다. 상자 안을 들여다보니, 더러운 바닥 걸레처럼 생긴 강아지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강아지는 택배 상자를 물어뜯고, 그 안에 있던 원두커피봉지를 혀로 핥고 있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러다 문득, 내가 문을 열어 놓고 너무 오래 앉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기했다. 문을 열고 있었는데 내가 아무렇지도 않았다니. 성형수술에 실패한 후, 극심한 공황장애 증세가 나타났었다. 그래서 평소에 현관문을 열기만 해도 심장이 미친년처럼 날뛰고 숨을 쉬기 힘들었다. 아마도 저 녀석이 내 혼을 모두 빼놓은 모양이다. 근데, 이제 저 녀석을 어쩌지? 


그날 이후 나는 강아지를 “택배”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물론, 택배를 집안으로 들여놓고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목욕이었다. 비누질을 두 번쯤하고 나서야 녀석의 털 색깔이 제 색으로 돌아왔다. 녀석의 원래 털 색깔은 아주 옅은 갈색이었다. 그렇게 택배는 털 색깔을 제대로 찾은 후에야 나와 동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처음에 택배는 나와 내 집을 무척 경계했었다. 하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내 집은 어느새 택배의 집이 되어 버렸다. 마치 처음부터 택배의 집에 내가 얹혀살았다는 것처럼. 

 “택배야! 내가 화장실에서 쉬하라고 했어, 안 했어?”

녀석은 오늘도 현관에 볼일을 보았다. 훈련이 되지 않은 터라 신문지를 깔아주어도, 화장실 문을 열어 두어도, 도무지 나아지질 않았다. 그런 녀석 덕분에 나는 말이 많아졌다. 지난 몇 년 동안 한 말보다 요즘 하루 동안 한말이 더 많을 정도였다. 그만큼 택배는 정신을 쏙 빼놓을 정도로 나를 바쁘게 만들었다. 그런 택배에게 요즘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바로 현관문을 자꾸만 핥은 버릇이었다. 생각해 보니 택배는 처음 만난 날부터 줄곧 현관문을 핥았던 것 같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택배한테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너, 밖에 나가고 싶은 거야?”

택배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며 그르렁거렸다. 그랬다. 택배는 밖에 나가고 싶은 것이다. 갑자기 택배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밖에 나갈 수 없는 내가 원망스러울 정도로. 하지만, 나도 나를 어쩔 수가 없었다. 병원에 갈 수 없어 제대로 진단을 받은 적은 없지만, 인터넷으로 내 증상을 찾아보니 나는 여러 가지 정신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문 밖을 나가려고 여러 번 노력도 했었다. 하지만, 언제나 돌아오는 것은 호흡 곤란과 미친년처럼 날뛰는 심장이었다. 나는 살고 싶어서 내 집에 스스로 갇힌 사람이었다. 그러다 문득 택배를 처음 만났던 그날이 떠올랐다. 한 번 더 시도를 해 볼까? 안타깝게도 여전히 나는 자신이 없었다.


날이 갈수록 현관문을 긁고 핥는 택배의 증상은 심해졌다. 그럴수록 나의 고민도 깊어졌다. 문득, 끔찍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택배를 받으러 문을 열었다가 택배가 밖으로 달아나 버리면 어쩌지? 물론, 그것 말고도 택배가 나를 두고 이 집을 떠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많았다. 생각만으로도 나는 호흡이 가빠지고 어지러웠다. 먼 미래에, 아니 가까운 미래에 실제로 그런 일이 반드시 일어날 것만 같았다. 어쩌면 택배가 없는 삶이 바깥세상에 나서는 것만큼 힘들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이 두려웠다. 나를 보호했다고 믿었던 갑옷이 이제는 내게 벗어날 수 없는 감옥이 되어 버린 것이다.


결국, 나는 외출을 시도해 보기로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하는 걱정에 비상연락 목걸이도 준비해 두었다. 이제 모든 준비를 끝냈다. 저 두려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크게 숨 호흡을 하자, 택배는 신이 난 듯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철컥!”

현관문 자물쇠가 묵직하게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문고리를 돌리고 밀어내면 그만이다. 택배는 기운을 내라는 듯 새로 산 내 운동화를 계속 핥았다. 녀석이 내 운동화를 침으로 다 닦아내기 전에 문을 열어야겠다. 눈을 감고 힘차게 문고리를 돌렸다. 그리고 현관문을 앞으로 밀어냈다. 상쾌한 바깥바람이 콧잔등을 훑고 지나갔다. 덕분에 한결 마음이 놓였다. 이제 눈을 뜨고 앞으로 걸어 나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 하지만, 다시 현관문을 닫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용감하게 내 발을 한 발자국 앞에 옮겨 놓았다. 문득, 무거웠던 내 갑옷이 새털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30년 전에 비해 요즘 세상은 훨씬 더 빠르고 편리하게 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배가 불룩한 컬러 TV 하나만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는데, 요즘은 배가 불룩한 TV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 컬러 TV가 들어서던 속도만큼 빠르게 날씬하고 평평한 TV가 집집마다 들어서고 있습니다. 컴퓨터도 마찬가지입니다. 배가 불룩하고 몸체가 따로 있는 컴퓨터는 점점 사라지고 날렵하게 반으로 접히는 노트북이 105동 주민들 책상 위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요즘 사람들이 가장 빠르게 바꾸고 있는 제품은 휴대폰일 겁니다. 처음에는 사실 사람들이 전화기를 들고 다닌다는 사실만으로도 신기했습니다. 그런 휴대폰이 점점 작아지더니 이제는 반으로 접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휴대폰이 TV 화면처럼 납작해져서 휴대폰으로 TV와 컴퓨터에서 하던 일들을 모두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제 휴대폰을 스마트 폰이라고 부릅니다. 도대체 얼마나 영리한 녀석이기에 그런 이름을 가지게 된 걸까요? 어쨌든 부럽습니다. 요즘은 나도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하지만 휴대폰 화면이 내게는 너무 작아서 내용을 파악하기 힘들었습니다. 어쨌든 휴대폰이 스마트해진 덕분에 사람들은 예전보다 더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볼 일이 없어졌습니다. 모두들 각자의 스마트 폰을 보느라 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나 같은 나무들은 예전보다 더 외로워졌습니다. 그렇게 스마트한 사람들의 세상은 하루하루 작아지고, 스마트하지 못한 것들은 사람들 세상에서 하루하루 멀어져 갑니다.


17화에서 계속.......




#공황장애 #나의집은갑옷인가감옥인가 #그래도집이제일좋다 #택배 #누군가에게는하찮은것도구원이될수있다 #아파트 #연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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