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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경아 Sep 30. 2015

[노래소설] 리쌍의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나는 웃어야 하는 걸까? 울어야 하는 걸까?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샬롯의 처녀"


 몇 달 만에 남편과  만나 이혼을 하러 가는 길이었다. 


 남편은 불안한 듯 자꾸만 전화기를 만지작거렸다. 그런 남편을 보자, 어렵게 가라앉힌 화가 솟구쳤다. 지난 몇 달 동안 내게 막무가내로 이혼을 요구했던 사람이었다. 내가 완강히 버티자, 남편은 나를 집착이 강한 정신병자 취급까지 했었다. 결국, 나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그의 요구를 들어 주기로 했다. 이혼을 결심했다고 말하자, 남편은 연신 고맙다며 인사를 했다. 그런 남편이 너무 얄밉고 야속해 나는 하마터면 이혼을 엎어 버릴 뻔도 했었다. 


 그런데, 오늘 남편을 만나 법원으로 오는 내내 남편은 왠지 모르게 불안해 보였다. 누군가의 전화를 기다리는 것처럼 계속 전화기만 연신 확인하기도 했다. 왜 그러는 건지 묻고 싶었지만, 묻지 못했다. 이제 우리는 그런 것을 물을만한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느새 저기 앞에 법원의 높은 계단이 보인다. 이제 정말 우리 두 사람은 진짜 이혼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남편과 처음 만난 것은 선배의 소개 때문이었다. 남편과 두 번째 만나게 된 것은 남편의 첫 인상이 나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게 만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계속 만나다 보니 어느새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남편도 나와 똑같았던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헤어질 이유가 없어서 만나다가 부부가 된 것이다. 도대체 누가 결혼을 사랑의 결실이라고 했단 말인가? 


 서로 죽지 못해 사랑해서 결혼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나름 큰 트러블 없이 잘 지냈다고 믿었다. 남들처럼 아이도 낳았고, 그 아이가 커가는 것을 남편과 함께 지켜보는 것이 행복이라 생각될 만큼 잘 살고 있다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내게 뜬금없는 고백을 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마치, 자신의 엄마나 누나에게 사랑에 빠진 자신을 고백하는 수줍은 소년처럼 그렇게 남편은 내게 모든 것을 털어놨다. 


 처음엔 화도 나지 않았다. 도대체 남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남편의 빈자리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나는 내가 아침드라마 여주인공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대본을 받은 배우처럼 남편에게 표독스런 아내 역할을 해냈다. 결국, 남편은 여행 가방을 싸서 집을 나갔다. 남편은 더 이상 나와 얼굴조차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래도 남편은 전화로 계속해서 이혼을 요구했다. 처음엔 미안한 목소리였지만, 날이 갈수록 남편은 빚 독촉을 하는 사채업자처럼 내게 이혼을 요구했다. 나는 그제야 화가 났다. 머리털 나고 처음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했을 때만 해도, 그가 우리 두 사람의 결혼을 깨트릴 거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남편은 우리의 결혼을, 내 신성한 가정을 깨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남편의 욕심이 너무 뻔뻔하고 역겨웠다. 그래서 나는 그런 남편의 요구를 끝까지 모른척 하기로 했다. 


 분노가 하늘 끝까지 치달았지만, 남편에게 절대 화를 내지 않았다. 대신, 그의 충격적인 고백을 집안 식구들과 친구들에게 알렸다. 다행히 그들은 모두 내 편이 되어 주었다. 모두들 남편을 비난하고 나를 옹호해 주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남편은 남편이 사랑한다는 그 여자에게 더 다가갔다. 결국 나는 집안 식구들과 친구들에겐 온갖 동정을 받는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었고, 남편에겐 비열하고 소름 끼치는 악녀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나는 처참히 무너졌다. 처음부터 나는 아침드라마의 여주인공 감량이 안 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법원 계단에 거의 다 올라왔을 때, 남편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남편은 나보다 더 놀란 듯 한동안 전화를 받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전화벨이 끊어지려고 하는 순간, 남편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네, 제가 현진우입니다. 네? 뭐라고요?”


남편의 얼굴이 하얗게 변하더니, 하얀 조각상처럼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는 그가 못마땅했던 나는 신경질적으로 왜 그러냐고 물었다. 남편은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영혼이 빠져나간 얼굴로 내게 대답했다.


“세미가 죽었어. 세미가…….”


남편이 그토록 사랑했던 그녀의 이름이었다. 내 심장도 멎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남편은 그런 내 얼굴을 보고 귀신을 보기라도 한 듯 뒷걸음치더니 어딘가로 달려갔다. 나는 그런 남편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한참을 그 법원 앞에 서 있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을 보냈을까? 나는 법원 앞에서 시누이의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전해 들었다. 내 남편이 그토록 사랑했던 그녀가 자살을 했다고 했다. 그녀가 자살한 이유는 확실치 않았지만, 내 남편이 큰 역할을 한 것은 분명했다. 그녀는 최근까지 내 남편이 결혼을 한 사람이었는지 몰랐다고 했다. 그래서 남편이 이혼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누구보다 놀랐다고 했다. 왜냐면, 그녀는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간 아버지를 평생 미워했던 여자였기 때문이다. 20년을 넘게 피해자 가족이었던 그녀가 자신도 모르게 가해자가 되어 버린 자괴감을 견디지 못했으리라. 아니, 어쩌면 이혼해 주지 않고 버티고 버텼던 나 때문이었을까?


 집으로 돌아와 나는 멍하니 거울 앞에 앉았다. 그리고 거울 속에 비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웃어야 하는 걸까? 울어야 하는 걸까? 거울을 보고 있는 내 표정이 너무 어색했다. 여기서 내가 웃는 다면 나쁜 여자가 되는 걸까? 그렇다고 우는 건 또 너무 가식적인 것일까? 분명한 것은, 이제 더 이상 나는 남편을 다른 여자에게 빼앗긴 비련의 여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밤새 거울 앞에 앉아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라 웃다가 울었고, 울다가 웃었다.


                                                                           끝.


>>리쌍의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노래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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