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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경아 Oct 04. 2015

[노래소설] 인순이의 "아버지"

아버지의 얼굴엔 늘 그렇게 미안함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헐레벌떡 전철을 탔다. 다행히 오늘은 그래도 여유롭게 출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큰 한숨을 몰아 쉬다가 문득, 너무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아차! 회사 테스트 폰을 집에 두고 왔다. 하늘이 노래졌다. 오늘 마지막 테스트를 하고, 보고해야 하는데……. 정신을 가다듬고,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본다.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서 다시 되돌아가면 되지만, 다시 집까지 뛰어갔다 오면 분명히 지각을 할 것이다. 그때 집에 있는 아버지가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곧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버지에게 그런 부탁을 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결국 나는 이를 꾹 다물고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에요, 제가 중요한 테스트 폰을 두고 와서……아뇨, 그거 말고 제 침대 위에 있을 거예요. 까만 색. 네. 그거 지하철역까지 가져다 줄 수…… 네. 빨리요.”


전화를 끊고, 다시 내가 탔던 지하철 역으로 되돌아 오면서 나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제야 아버지란 존재가 도움이 되는 것뿐이야. 그러니 괜찮아. 미안해할 필요 없어. 그래, 그럴 필요 없어. 그렇게 되뇌고 또 되뇌었다. 그만큼 나와 아버지와의 관계는 남들 보다 못한 관계였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몇 년전 엄마도 모르는 일에 투자를 했다가 큰 빛을 지고 나서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잠적해버린 사람이었다. 영문도 모르던 엄마와 나는 아버지가 저질러 논 일 때문에 은행에서 빛 독촉 전화를 받아내며, 한번 써 보지도 못한 돈을 갚아내느라 갖은 고생을 다하며 힘겹게 살아왔었다. 그렇게 1년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지방 어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입원 중이니 병원비를 가지고 오라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도망쳤다가 불쑥 나타난 아버지는 원래 우리 집에 있었던 오래된 아주 오래된 가구처럼 그렇게 우리 집에 머물게 되었다. 그랬다. 나는 여전히 그런 아버지를 지켜보는 일이 쉽지 만은 않았다. 그런 아버지에게 오늘 나는 처음으로 부탁이란 것을 하게 된 것이다.


 지하철 역에 도착해서 아버지를 기다렸다. 5분이 지났다. 젠장, 왜 늦는 거야? 차라리 내 가 갔다 오는 게 나을  뻔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짜증이 솟구쳐 올랐다. 잘못은 내가 한 것인데도 말이다. 화가 머리 끝까지 차 오를 무렵, 저만치 아버지가 보였다. 허둥지둥 얼굴이 하얗게 되어 뛰어오는 아버지를 보니,  더욱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제대로 갖고 온 거야? 이리 줘봐!”


나는 고맙다는 말 대신 아버지가 가져온 봉지를  낚아챘다. 아버지는 깊은 숨을 몰아 쉬며, 힘겹게 말했다.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서 그만……휴~”


대답은커녕 고맙다는 말도 하지 않고, 나는 쌩 하니 지하철 계단을  내려와 버렸다. 그러다가 겨우 올라 탄 지하철 문이 닫힌 무렵, 하얗게 질린 아버지 얼굴이 떠 올랐다. 젠장! 그런 아버지의 얼굴에선 귀찮은 기색도 짜증 나는 기색도 하나 없었다. 오히려 빨리 오지 못해 너무 미안한 얼굴이었다. 어쩌면 아버지의 얼굴엔 늘 그런 미안함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나는 그런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를 것만 같아 늦은 출근 길, 소리도 한 번 내지 못하고 그렇게 울음을 삼키고 또 삼켰다.


>>인순이의 "아버지" 노래 듣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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