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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경아 Oct 07. 2015

[노래소설] 씨스타의 "나 혼자"

다친 다리보다 멀쩡한 가슴이 아프고 또 쓰렸다.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혼자 된지 언 100일이 지났다. 5년간의 연애를 끝낸지 100일……이별의 아픔보다 모든 걸 혼자 해야 하는 현실에 적응하기 바빴던 것 같다. 오래된 연인과의 이별이 아쉬운 이유는 어쩌면 모든 걸 혼자 해내야 한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5년간 열심히 연애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가 알던 친구들은 하나둘씩 정리되고, 대부분 남자친구와 함께 아는 지인들로 채워져 버렸다. 그러다 보니 나는 이별 후 생겨 난 엄청난 시간들을 누구와 채워야 할지 몰라 방황하기도 했다. 그렇게 힘겹게 100일이 지났다. 이제야 혼자만의 생활에 조금 적응이 되는 것 같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 100일 동안 나는 엄청나게 살이 찌고 말았다. 남들은 시련의 아픔으로 살이 빠진다고 하던데, 신기하게도 나는 살이 퐁퐁 찌고 말았다. 혼자 견뎌내야 하는 시간들을 음식과 함께 보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이별은 내게 상처보다 버거운 살들만을 남겼다.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저녁을 간단히 먹고 한강 고수부지로 나왔다. 한강고수부지는 연인들만 가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나만큼 고독하게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주차장이 가까운 쪽 잔디 위에는 이미 텐트 과 돗자리 족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한강 도로변은 자전거 길과 보행길이 나란히 줄지어 있었고, 끊임없이 사람들이 그 위를 지나 다녔다. 간간이 커플들이 눈에 띄긴 했지만, 부럽지 않았다. 혼자 열심히 걷고 있는 내가 꽤 건강하고 멋있어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한강 보행로에서 한 연인이 눈에 들어왔다. 남자와 여자는 주먹 2개 반 정도의 거리를 두고 걷고 있었다. 보나 마나 사귀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연인이다. 보행로를 온통 막고 있어서 비켜주길 바라며 계속 따라갔다. 나풀거리는 치마에 킬힐을 신고 있는 여자의 발등은 구두에 눌려 이미 볼록하게 살이 삐져 나와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남자를 째려 봤다. 저 정도면 여자의 발이 얼마나 아플지 알기 때문이다. 여자 속도 모르고 마냥 걷고 있는 남자가 한심했다. 나도 모르게 그들의 주먹 2개 반 정도의 거리를 비집고 앞질렀다. 가만히 지켜보다간 남자 멱살이라도 잡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을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땀이 송골송골 맺힐 무렵, 나는 보행로와 자전거 도로가 교차하는 지점에 이르렀다. 일단 걸음을 멈추고 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때, 익은 얼굴이 내 눈에 들어왔다. 100일 전 나와 드라마 한편을 찍으며 헤어졌던 남자 친구가 나풀거리는 치마를 입은 여자와 걷고 있었다. 순간,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황에 이런 모습으로 그와 마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나를 알아보기 전에 얼른 이 자리를 떠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 몸이 굳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앞도 캄캄했다. 그러는 사이 나는 뭔가 번쩍하고 번개가 치는 것을 느꼈다.


“쾅!”

“꺄악!”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까만 밤 하늘을 보며 바닥에 누워  있었다. 뭔가에 부딪힌 것 같은데…… 뭐가 뭔지 도통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자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어디선가 아주 친근한 목소리가 들렸다.


“선영아! 너 선영이 맞지? 괜찮아? 정신 좀 차려봐!”


 전 남자 친구의 목소리였다. 상황을 짐작해 보니 내가 지나가던 자전거와 부딪힌 모양이다. 마음 같아선 벌떡 일어나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있는 힘껏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이미 그는 나를 알아보고  온갖 오지랖을 떨고 있었지만, 이런 곳에서 자빠져 있는 내 얼굴만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종합해 보니,  저만치 자전거 운전자도 지금 나처럼 뻗어 있린 것 같았다. 나는 어떻게든 일어나 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왼쪽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추리닝 바지 왼쪽 허벅지는 10cm 정도 찢어져 있었다. 그때, 멀리서 119 구급차 소리가 났다. 


아가씨, 괜찮으세요?”

“……!”


119 구급대 아저씨의 부축을 받으며 나는 들것에  올라탔다. 그 상황 속에서도 나는 남자 친구의 얼굴을 슬쩍 보았다. 나만큼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아, 죽고 싶게 창피했다. 아마도 오늘은 내 인생에 가장 지우고 싶은 하루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 보다 더한 굴욕이 아직 남아 있었다. 119 아저씨들이 내가 올라 탄 들것을 차에 싣고 있을 때였다.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나는 119 아저씨와 전 남자친구의 대화가 아주 분명하게 들렸다.


“혹시 보호자세요? 그럼 같이  올라타세요!”

“네? 아니요. 보호자는 아니에요.”


119 구급 차는 출발했고, 차에 몸을 실은 나는 그제야 내가 완전히 혼자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아팠다. 다친 다리보다 멀쩡한 가슴이 시큰하게 아프고 또 쓰렸다.


                                                                                   끝.


>>씨스타의 "나 혼자" 노래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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