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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경아 Oct 11. 2015

[노래소설] 어반자파카의 "그냥 조금"

무한 반복되는 사랑의 먹이 사슬...

 

 


 바로 뒤에 앉은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를 듣다가 갑자기 멀미가 날 것 같았다. 아마도 오늘 처음 소개팅으로 만나는 사람들일 것이다. 남자는 시종일관 갖가지 경제용어를 들어가며 잘난 척을 하고 있었고, 여자는 그런 남자가 맘에 드는 건지 또 시종일관 “그래요?” “정말이에요?”를 남발하고 있었다. 제발 저 둘이 빨리 이 곳에서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에 눈을 감았다. 그때, 조용하던 내 휴대폰이 부르르 떨렸다. 메시지였다.


 <잘 지내고 계신가요? 가을이네요. 저는 물론 잘 지내고 있습니다. ㅎㅎ>


 나도 모르게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말이 튀어 나왔다. 얼마 전 나와 소개팅을 했던 남자였다. 별 관심이 없어서 몇 번 문자를 씹었는데, 주말 아침 어김없이 문자를 보내 온 것이다. 답답한 마음에 뿜어져 나오는 한숨을 쉬다가 무료해져 카페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생생한 초록 기운이 사라진 나뭇잎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고 있었다. 꽤 쓸쓸하고 분위기가 있어 잠시 꺼 놨던 음악을 다시 틀었다.  그렇게 나는 센티한 기분에 빠져 있고  싶어 졌다. 그래서 나는 잠시 음악을 들으며 눈을 감았다.




 “어이쿠, 죄송합니다."


 결국 처음부터 맘에 들지 않았던 뒷자리 커플이 사고를 치고 말았다. 둘이 너무 집중했던 탓일까? 커피잔과  물 잔을 들고 일어나던 남자는 뒷자리에 있던 내 어깨에 기어코  물 잔을 쏟아 버린 것이다. 연신 죄송하다고 인사를 하고 나가는 남자와 여자를 보며, 화보다 눈물이 먼저 왈칵  쏟아졌다. 축축하게 젖어 있는 어깨를 보고 있자니, 문득 그 사람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내게 참 나쁜 남자처럼 굴었는데, 내가  당황해하던 순간이면 어김없이 나타나 말보다 행동으로 모든 걸 해결해 주던 사람이었다. 아마도 지금도 내 옆에 있었다면, 내 젖은 어깨를 닦아 주려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을 사람이었다. 그렇게 말없이 나를 위해 묵묵히 움직이던 그 사람의 모습을 참 좋아했었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을 놓을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내게 사랑은 언제나 그렇게 엇갈리고 얄궂었다.

 

 <역시 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시군요? 안타깝네요.>


그 순간, 또 눈치도 없이 소개팅  남으로부터 문자가 날아왔다. 문자를 보며 나는 또 한번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일방적인 그의 마음이 내 마음과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더 마음이 답답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그렇게 서로 똑 같은 마음으로 사랑을 하게 되는 걸까? 내겐 기적 같은 일인데, 어떻게 그들에겐 일상이 될 수 있을까? 미안한 마음과 원망스러운 마음이 뒤섞여 가슴이 먹먹해졌다. 터질 것 같은 마음을 겨우겨우 가라앉히며 오래 머물렀던 카페 자리에서 일어섰다. 차라리 심장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낙엽이 이리저리 뒹구는 거리로 나왔다. 거리에 휘날리는 노란 은행나무 잎을 바라보는 연인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버짐처럼 피어나고 있었다. 그런 연인들의 얼굴을 바라보는 내 마음에는 슬픔이 버짐처럼 피어나고 있을 뿐이다.




“무슨 일 있어?”

“아니.”

“혹시, 어디 아파?”

“아니라니까!”


 집에 들어서자마자 계속 이어지는 엄마의 잔소리를 뒤통수로 온전히 받으며 나는 바로 내 방으로 꽁무니를 빼 버렸다. 조용히 방문을 닫고서, 나는 슬그머니 휴대폰 화면을 밝혔다. 아무런 메시지가 없는 것을 보고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곧 나는 무슨 용기가 났는지 나는 그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적기 시작했다.


<이제 완전 가을이네……잘 지내고 있니?>


그렇게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 나도 모르게 그만 어리숙한 메시지를 보내 버렸다. 순간 너무나도 창피해 혼자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답장이 올까 휴대폰을 연신 확인했다. 너를 보고 싶다고, 너와 한번 만나 보고 싶다고, 너를 많이 좋아한다고, 말한  것보다 더 한 고백을 한 사람처럼 그렇게 혼자 가슴을 애태웠다. 하지만 그는 내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나도 두 시간이 지나도 그 사람에게서는 그 어떤 연락도 답장도 오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반복되고 있는 사랑의 먹이사슬을 원망하며, 발에 밟혀 짓이겨진 은행처럼 그렇게 고약한 밤을 보내고 있을 뿐이다.


                                                                                 끝.



>>어반자파카의 "그냥 조금" 노래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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