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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경아 Oct 20. 2015

[노래소설] 루시드 폴의 "불"

가슴속에 사랑 대신 불덩이를 안고 사는 어여쁜 예비 신부...


 나는 보름 후 결혼하는 예비신부다. 하지만, 지금 나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불덩이를 가슴에 품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니 폭발하기 직전의 활화산이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친구들은 결혼을 앞둔 신부들이 거의 다 겪는 불안과 초조일 것이라고 말했지만, 분명 그런 사소한 불안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 분명히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지금의 불덩이 같은 내 마음을 꺼트릴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더 뜨겁게 달아 오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 앞에서 우적우적 무언가를 열심히 씹고 있는 남자가 있다. 그렇다. 그가 바로 나와 결혼할 예비 신랑이다. 사람들은 내 신랑 같은 사람을 1등 신랑감이라고 부른다. 결혼 정보회사에서는 귀족등급에 해당한다고도 한다. 보통 키에, 보통 성격에, 보통 얼굴을 가진 저 남자를 1등 신랑감으로 완성시켜 주는 것은 아무래도 명문대 출신의 치과의사 전문의라는 타이틀 때문일 것이다. 초 여름에 부모님 지인의 소개로 만난 우리 두 사람은 나쁘지 않은 조건, 나쁘지 않은 매너, 나쁘지 않은 외모로 서로를  만족시켰다. 물론, 그 사람의 치과의사라는 직업은 나를 포함한 내 가족들까지  만족시켰다. 그렇게 간단한 이유로 우리는 이렇게 결혼이란 걸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멋진 결혼을 2주 앞 두고 나는 서서히 미쳐가고 있었다. 물론, 나는 사랑 이 세상의 전부라 믿는 순진한 20대 초반의 여자도 아니며, 잊지 못할  첫사랑을 가진 비련의 여주인공도 아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누구나 만족하는 1등 신랑감을 앞에 두고 왜 이렇게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일까?


 그와 만 한 달 만에 우리의 결혼은 우리 두 사람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진행되었다. 원래 결혼이라는 것은 마음먹은 순간 순식간에 진행되는 법이다. 하지만, 좋은 조건을 가진 우리 두 사람의 결혼은 그 보다 훨씬 더 빨리 진행되었다. 어차피 내 손을 떠난 결혼이었다. 또한, 이젠 누군가와 연애를 한다는 것 자체도 지치고 힘들었다. 빨리 안정적이고 좋은 사람을 만나 편하게 살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결격 사유가 전혀 없는 그 사람을 내 평생의 배우자로 맞이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문제의 발단은 사소한 것에서 발생했다. 상견례를 하기 전 그가 처음 우리 부모님을 만나게 된 자리가 바로 그 불꽃의 시작이었다. 그 날은 물론 오지랖이 넓은 우리 엄마의 성화로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우리 부모님을 만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물론, 나또한 그 사람의 부모님을 만나는 것이 내키지 않았으므로 그런 그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드라마에서처럼 잘난 사위를 반갑게 맞이 하는 장모님 역할을 꼭 해 보고 싶었던 것 같았다. 그렇게 엄마의 힘겨운 모노드라마가 끝나갈 무렵, 그 사람의 얼굴에서는 피곤함을 넘어선 짜증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어떻게든 엄마의 모노드라마를 끝내고 그 사람을 자리에서 일으키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철없는 동생이 짜증이 가득한 그에게 무모한 질문 하나를 던졌다.


 “근데, 왜 우리 언니랑 결혼하려는 거예요?”

 “글쎄……언니와 똑 같은 이유가 아닐까?”


 물론, 아주 센스 있는 답변이었다. 철없는 동생도 매우 만족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 내  가슴속에선 작은 불씨 하나가 생겼다. 아마도 우리의 결혼이 완벽한 비즈니스라는 것을 그제야 실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상했다. 나도 원하던 결혼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점점 더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남녀 관계라는 것이 살을 맞대고 살다 보면 누구나 다 똑같아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결혼생활은 사랑이 아닌 정으로 유지한다는 거 또한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지금 이토록 화가 나는 것일까? 적어도 나는 그를 사랑으로 선택하지 않았지만, 그 사람은 나를 사랑으로 선택하기를 바랬던 것일까?  물론, 나는 원래 그렇게 어이없고 이기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아주 영악스러울 정도로 현실에 잘 적응하고 감내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대답을 듣는 순간 나는 내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게 화인지 부끄러움인지조차 분명치가 않았다. 결국,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 만큼 이성적이지도 쿨하지도 않은 여자였던 걸까? 하지만, 돌이키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좋은 거래를 깨 버릴만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럴만한 용기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멋진 결혼식은 이제 2주를 남겨 놓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나는 갑자기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모두가 만족하는 이 멋진 거래를 내가  어이없이 엎어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엎어버리지 못할 것 같아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지금 나는 모든 것이 두려웠다. 이러다 이 두려움이, 이 밑도 끝도 없는 화가, 내 곁에 있는 모든 것들을 태워버릴 까 봐 더 두려웠다. 그렇게 지금 나는 식당에  멍하니 앉아, 내 맘 속 불을 다스리느라 한 입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내 앞에 앉아 연신 머리 가마를 보이며 먹고만 있던 그 남자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나를 본 그의 미간은 약간 찌푸려져 있었다. 혹시나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나를 걱정하고 있는 걸까? 물론, 아니었다.


“왜? 맛이 없어? 난 맛있는데. 못 먹겠으면 이리 줘. 내가 다 먹을게.”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남자는 내 접시에 있는 음식의 반 이상을 덜어 가 버렸다. 그가 내 접시를 다 비우고 있는 동안에도 나는 여전히 두려웠다. 내가 오른 손에 꼭 쥐고 있던 포크로 그를 찍어 내릴 까 봐……아니, 혹시 그러지 못할 까 봐.


나는 보름 후에  결혼하는 예비 신부다. 그리고 가슴속에 사랑 대신 불덩이를 안고 사는 어여쁜 예비 신부다.


                                                                                   끝.


>>루시드 폴의 "불" 노래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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