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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경아 Oct 24. 2015

[노래소설] 이적의 "고독의 의미"

우리 엄마도 내 뒤통수를 보며 고독하셨을까?



 “엄마도 같이 갈까?”

 “에이, 그럼 안 되지.”

 “왜, 엄마랑 같이 가는 거 싫어?”

 “내가 애야? 그리고 엄마가 같이 가면 나 완전 왕따 될지도 몰라.”

괜히 해 본 말이었지만, 그 괜한 말에 지선은 가슴이 무너졌고 눈물도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이제 고작 12살 난 아들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 없어 싸던 짐을 묵묵히 쌌다. 12살 난 아들 민수는 엄마가 그러든 말든 그저 스마트 폰 게임에만 열중할 뿐이다.


민수가 4살 때, 지선은 갑상선 수술 때문에 며칠 동안 민수와 떨어져 있어야 했다. 태어나 한 번도 엄마와 떨어진 적 없던 민수는 짐을 가지고 현관을 나서는 지선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놓지 않았다. 마치 영영 보지 못할 사람처럼 지선 앞에서 대성통곡을 하기도 했다. 지선은 아들이 잠이 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겨우 병원으로 갈 수 있었다. 수술이 무사히 끝나고 회복실에서 처음 눈을 떴을 때도 지선은 자신보다 민수가 더 걱정될 정도였다. 아니나 다를까 민수는 지선이 없는 하루를 못 참고 밤새우느라 남편과 할머니를 고생시켰다는 말을 들었다. 수술을 하고 이틀 만에 만난 민수의 얼굴을 지선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날, 엄마가 보고 싶었다며 와락 안긴 민수의 빨간 볼을 어루만지며 지선은 다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민수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하지만 이제 민수는 12살이 조금 지났을 뿐인데 지선의 품을 자꾸만 떠나려고 했다. 아니, 어쩌면 민수는 이미 저만치 달아나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자기 전에 엄마한테 꼭 전화해. 알았지?”

 “알았다고.”

민수가 과학 캠프를 떠나는 날 아침, 집을 나서는 민수의 뒤통수에 대고 지선은 잘 다녀오라는 말을 여러 번 했지만, 민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마디만 했다. 

 “어!”

민수가 현관문을 나간 뒤, 지선은 아파트 베란다로 달려갔다. 민수의 뒤통수라도 보기 위해서다. 그리고 민수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지선은 베란다를 떠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민수는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아들,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보여주고 가지.’

가슴팍에서 서늘한 서운함이 번지더니 몸 전체가 아려왔다. 물론, 지선도 알고 있었다. 품 안에 자식이란 것을. 그래서 오래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준비한다 해도 스멀스멀 올라오는 서운함을 어쩔 수는 없었다. 이미 지선은 사춘기로 향하는 민수의 모든 행동에 상처를 받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그런 순간들은 많아질 것이다. 문득, 지선은 어머니 생각이 났다. 우리 엄마도 내 뒤통수를 보며 나처럼 서운했을까? 아마도 그러셨을 것이다. 그제야 지선은 깨달았다. 우리들 대부분은 그렇게 부모의 고독을 먹고 자란다는 것을.


##


민수를 보내고 집에 혼자 앉아 있으니 주마등처럼 민수와 함께 했던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민수가 자신의 가슴팍에 처음 안기던 날부터, 사탕보다 엄마가 더 좋다던 민수의 발그레한 얼굴도, 밤새 열병을 앓으면서도 엄마 손을 놓지 않았던 민수의 작은 손가락도. 지선은 하나도 틀림없이 모두 다 기억해냈다. 지선에겐 남편보다 민수가 더 큰 위로였고, 구원이었다. 지선은 민수만 곁에 있으면 그 어떤 외로움도 고통도 느낄 틈이 없었다. 어린 민수에게 지선은 세상의 전부였고, 지선 역시 민수가 세상의 전부였다. 하지만, 이제 민수에게 지선은 세상의 전부가 아니었다. 지선 없이 민수가 할 수 있는 일들은 점점 늘어갔고, 앞으로도 민수가 지선 없이 해야 할 일들은 차고 넘칠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이 되면, 지선이 민수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어지는 날이 올 것이다. 지선은 그런 생각만으로도 고독했다. 마치 시한부 선고를 받은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때문에 민수가 없는 2박 3일은 지선에게 너무도 막막한 시간이었다. 지선의 좋은 친구는 민수가 없으니 그동안 여행이라도 다녀오라고 말했지만, 지선은 결국 앓아눕고 말았다. 물론, 민수가 돌아오면 씻은 듯이 나을 신기한 병이었다. 밤 9시가 되자 지선은 전화기만 계속 만지작거렸다. 민수에게 전화가 올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0분이 지나도 20분이 지나도 전화가 오지 않았다. 지선은 그렇게 민수의 전화를 기다리다 새벽녘이 돼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누군가 지선을 흔들어 깨웠다. 남편이었다. 지선은 몸이 아프다며 다시 돌아누웠다. 남편은 그런 지선에게 서운함을 내비쳤지만, 지선은 그런 남편이 귀찮을 뿐이다. 


남편은 홀로 출근을 하고 지선은 한 낮이 될 때까지 침대에 누워있었다. 지선은 문득 그런 자신이 한심하게 여겨졌다. 동시에 자신이 얼마나 민수에게 집착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지선은 민수에 대한 집착을 끊어내기 위해 자신만의 시간을 가져보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막막했다. 하고 싶은 일이 얼른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지선은 평소에는 쓰지 않았던 입욕제를 사용해 드라마에서 보던 여유로운 거품 목욕을 해보았다. 은은한 입욕제 향기와 분위기 때문인지 기분이 좋아졌다. 깨끗해진 몸과 마음으로 이번에는 오랜만에 화장대 앞에 앉았다. 화장대 앞에 이렇게 여유롭게 앉아 본 적이 얼마만이던가? 정성스레 기초화장을 하고, 평소에 하지 않았던 눈 화장을 시작했다. 아이섀도와 아이라인을 그리고 마스카라도 했다. 립스틱으로 화장을 마무리를 하며 지선은 겨울을 봤다. 거울 속에 있는 자신의 모습이 낯설었지만, 아까보다 훨씬 더 기분은 좋아졌다. 화장에 어울리는 옷을 찾으며 옷장을 뒤적이다가 지선은 백화점에서 옷 한 벌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서둘러 굽이 높은 구두를 꺼내 신고, 똑딱거리는 구두 소리를 내며 백화점으로 향했다. 


지선이 CF 속에만 나오는 행복한 여자처럼 우아하게 백화점 여성 브랜드 매장을 걸었다. 그때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지선은 깜짝 놀라 휴대폰을 봤다. 민수였다. 

 “엄마, 나!”

 “그래, 민수야! 근데, 너 왜 어젯밤에 전화 안 했어?”

 “아, 어제? 깜박했지. 미안!”

 “근데 캠프는 어때? 재미있어?”

 “뭐, 그냥 그렇지. 빨리 집에 가고 싶어.”

 “아니, 왜? 너 캠프 가는 거 좋아했잖아.”

 “몰라! 그냥 따분해!”

 “이왕 갔으니까 재미있게 놀아. 선생님 말씀도 잘 듣고.”

 “알았어. 근데 엄마! 여기 밥이 너무 맛이 없어. 엄마가 만든 돈가스 먹고 싶다.”

 “그래? 알았어. 엄마가 내일 돈가스 준비해 둘게. 근데, 내일 몇 시에 도착할 거 같아?”

 “글쎄, 오후에 도착하지 않을까?”

 “오케이, 알았어. 우리 아들! 엄마가 내일 마중 나갈게. 돈가스도 준비해 두고.”

 “응, 내일 봐!”

전화를 끊고, 지선은 자신이 어느새 식품매장에 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민수와 전화 통화를 시작하면서 이미 지선의 발걸음은 식품매장으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지선의 몸과 마음은 새털처럼 가뿐해졌다. 온몸에 생기가 돌았고 입가엔 미소까지 번졌다. 몸과 마음이 가벼워서인지 지선은 뾰족한 구두가 민망할 정도로 식품매장을 끝없이 돌아다녔다. 그리고 그런 지선의 모습에선 그 어떤 고독도 찾아볼 수 없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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