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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경아 Oct 31. 2015

[노래소설] 김광석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갑자기 화가 난다. 이상한 건, 화가 나는데 또 눈물도 난다는 것이다.


“아직도……그 사람을 못 잊은 거야?”

“무……무슨 소리야? 갑자기.”

“그냥, 그런 것 같아서……”


 나는 친구의 질문에 차마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니라고, 다 잊었다고……나는 그렇게 웃으며 말하지 못했다. 그리고 잠시 생각해 보았다. 나는 아직 그 사람을 잊지 못한 걸까? 모르겠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본다. 물론, 예전처럼 모든 순간 그 사람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그래, 잠시 다른 누군가에게 끌려 가슴이 설레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게 또 다른 사랑이라 믿고도 싶었다. 하지만, 그 부풀었던 설렘이 가라 앉을 무렵 바닥을 드러내는 갯벌처럼 떠오르는 건 언제나 그 사람이었다. 힘든 세상을 살아내면서 벽에 부딪힐 때마다 괜히 떠오르는 사람……그리고  위로받고 싶은 사람은 언제나 그 사람이었다. 그래, 나는 아직 그 사람을 많이 그리워하는 것 같다. 하지만, 아직도 그 사람을 그리워한다는 것이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왜냐하면, 그립다는 것은 그 사람을 충분히 그리고 완전히 사랑하지 못했다는 말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립다는 감정은 그렇게 낭만적이고 따뜻한 감정이 아니다. 적어도 내게는 말이다.


“쪽 팔려……그런 거 묻지 마! 누가 믿기나 하겠니? 아직도 그렇다면…….”

“역시 그랬구나……그래도 가슴에 누군가 못 잊을 사람 간직하고 사는 것도 나름 멋진 일이야. 난 그런 거 해보려고 해도 잘 안되거든.”


 친구가 위로 같지 않은 위로를 해 준다. 또 한번 눈물이 핑 돈다. 때론 위로가 더 아플 때도 있다는 것을 이 친구는 모르는 것 같다. 애써 눈물처럼 쏟아질 것 같은 감정을 삼키며 한숨을 쉰다. 습관처럼 슬픔을 감추려는 미소가 내 얼굴에 번진다. 아주 잘 학습된 나의 처세술이다. 마음이 서글퍼질 때면 자동반사처럼 내 얼굴에 번지는 미소를 알아 봐 준 것은 그 사람뿐이었다. 그 생각에 또 눈물이 난다. 아니, 술 때문이다. 그래, 모든 게 이놈의 술 때문이다.


“그렇게 멋진 일도 아니야. 서로 충분히 사랑하지 않아서 생긴 미련 같은 거야. 서로 못 주고 못 받아서……아직 서로에게 환상이 깨지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그래도 부러운 걸? 허수아비 같은 사람 손 잡고 사는  것보단, 그게 백배는 나을 거야.”

“아니라니까!”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친구도 나도 놀랐다. 친구는 상관없다는 듯 다시 차분히 술을 마신다. 나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술을 마신다. 그래, 아니다. 나도 누군가 다시 뜨겁게 사랑할 누군가를 만났다면, 그 사람의 존재 따위는 까맣게 잊었을 테니까. 그냥 습관처럼 잘 포장된 기억 속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뿐이다. 멜로드라마에서나 나오는 그런 달콤쌉사름한 감정이 아니다. 초라한 인간들의 자기 위로일 뿐이다. 결국, 아쉬운 게 많은 사람이 잊지 못하고 더 많이 그리운 것이다.


“내 말은……그건 그렇게 낭만적인 감정이 아니란 거야. 그저 고인 물에 썩어가는……”

“알아. 그래도 그렇게까지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 필요는 없어.”

“그래, 그렇지……그러니까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고.”

“그래, 그건 솔직히 오버였다.”


다시 눈물이 핑 돈다. 이런 일로 친구와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싫었다. 나는 언제쯤 친구와 웃으며 술을 마시게 될까? 친구의 얼굴도 나처럼 굳어 있다. 문득, 미안하단 생각이 든다. 화제를 돌려 보려고 하는데, 친구가 먼저 말을 꺼낸다.


“돌려서 말하려다 보니, 괜한 말을 하게 되네. 그래, 언제 알아도 알게 될 일이니까……”


친구를 빤히 쳐다 본다. 무슨 일이 있는 거구나.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그 사람과 관련된 새로운 소식이 있다는 것을……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또 웃는다. 그래, 이런 날이 오리라는 걸 여러 번  상상했었다. 친구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 사람을 잊었다고 말할 걸 그랬다. 그랬으면 좀 더 빨리, 그리고 편하게 내게 말했을 텐데……그렇다면, 내가 먼저 물어 보는 게 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굳어진 입술과 혀를 간신히 움직여 본다.


 “왜, 그 사람……결혼……했어?”


친구가 바로 대답을 하지 않는다. 맞는 거구나. 그렇다면 빨리 웃으면서 괜찮다고 말해야 하는데……나도 친구처럼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웃기라도 해야 하는데 내가 제일 잘하는 처세술이 이상하게 작동하질 않는다. 한편으로는 이제 그 사람을 마음껏 그리워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 생각이 들자 발꿈치까지 저릿저릿 아파온다. 마음이 무너져 내릴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정신을 차린다. 어떻게든 이 순간을 모면해야 한다. 친구에게 애써 웃으며 말한다.


“그런 거구나? 그래서 네가 그렇게 물었던 거고. 신경 쓰지 마! 아들 장가 보내는 기분이 이런 건가? 생각보다 후련하고 또 섭섭하네……휴!”

“아니, 그게 아니고…….”

“그럼, 도대체 뭔데? “

“그 사람……죽었어. 교통 사고로……그리고 오늘이 발인이었어. 나 오늘 거기 갔다 온 거야.”


친구의 옷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러고 보니 친구는 평소와 다르게 까만 색 옷을 입고 있었다. 갑자기 화가 난다. 이상한 건 화가 나는데 또 눈물도 난다는 것이다. 나쁜 자식! 결국,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 사람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 사실이 나는 너무 억울하고 슬펐다.


                                                                              끝.



>>김광석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노래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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