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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경아 Nov 18. 2015

 [노래소설] 이정선의 "외로운 사람들"

이건 외로움에 대한 넋두리도 하소연도 아니었다.  



“그니까 IT 발전이 그게, 그렇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사람들이 버스 안에서도 다들 스마트 폰에만 고개를 처박고 있잖아! 내 말이 틀려?”

“......!”

“그래서 이젠 사람들이 서로 말도 잘 안 하는 거 같아. 도대체 소통이 전혀 안된다고!”

“......!”

“지금도 봐봐! 내가 계속 떠들어도 지나가는 개가 짓는 거라 생각하고 아무도 대꾸를 하지 않잖아!”

“......!”


 좌석 버스 건너편 자리에 앉은 50대 아저씨가 자기 옆에 앉은 여자에게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생각 같아선 그 옆에 여자가 그 아저씨 입을 좀 막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 여자는 아저씨의 이런 쓸데없는 한탄을 늘 들어왔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무시하고 있었다. 언뜻 느껴지는 아저씨의 체취에선 술기운이 맴돌았다. 조용히 해달라고  이야기해볼까? 아니다. 이런 말을 했다가 술 취한 아저씨와 싸움이 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어폰을 꺼냈다. 음악으로 이 소음을 지워보기 위해서다.




 “이제 그만하세요!  저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 좀 조용히 해주세요!”


 나는 깜짝 놀랐다. 아저씨 옆에 앉은 여자가 짜증이 가득 섞인 목소리로 아저씨에게 일갈을 날렸기 때문이다. 아니 나는 그 여자의 일갈보다 그 여자가 그 아저씨와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 아저씨는 전혀 모르는 여자에게 30분 넘게 혼자 말을 걸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혹시나 아저씨와 여자 사이에 싸움이 벌어질까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더 이상 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아저씨는 쿨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까지 했다.   


 “허, 거참! 듣기 싫었다면 미안해요. 미안해.”


  덕분에 버스 안은 이제 버스 엔진 소리와 침묵만이 남았다. 이상했다. 대개 저 나이 또래 아저씨들은 자신이 잘못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사람들의 무례함만 탓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아저씨는 너무도 쿨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순간, 아저씨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아저씨의 지루한 넋두리가 외로운 도시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언젠가부터 누군가의 넋두리를 들어주지 않고 무시하며 살게 되었다. 각자의 마음에 그 만큼의 여유를 부릴 틈도 없어진 것이다. 타인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분명 저 아저씨도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버지 일 텐데, 얼마나 말할 사람이 없었으면 처음 보는 사람에게 하소연을 하고 있었을까? 문득, 너무 매몰차게 아저씨의 넋두리를 물리친 옆 좌석 여자가 얄미워 보였다. 그때 갑자기 아저씨 옆자리 여자가 벨을 눌렀다. 그리고 찬바람을 쌩 불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저씨는 어떻게든 여자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여자가 내리기 쉽게 자신의 몸을 최대한 웅크렸다.


 그렇게 찬바람 같던 여자가 버스에서 내리자,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아저씨는 아직도 뭔가 민망한지 계속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그런 아저씨를 보고 있는 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나는 최대한 아저씨에게 호의적인 눈빛을 보냈다. 아저씨도 그런 내 눈빛을 알아차렸는지 마음의 문을 열고 내게 말을 건넸다.


 “학생인가? 학생인데 왜 이리 밤늦게 다녀. 그러다 큰일 난다고. 우리나라가 그래도 치안상태가 좋다고 하지만, 강력범죄는 제대로 대처를 못하는 게 현실이야. 그러니 알아서 조심을 해야지. 안 그래? 우리도 중국처럼 강력범죄자들에게는 그냥 다 사형을 시켜야 하는데, 너무 솜방망이라는 거지. 그냥 몇 년 살고 나오면 끝이잖아. 그러니 그 짓을 계속하는 거지. 그러니까 우리가 스스로 조심하고 그래야 해. 아니지. 우리가 낸 세금이 얼마인데 나라에서 제대로 지켜줘야지. 도대체 나랏일 하는 사람들이 제정신이 아니니. 우리가 이모양  이 꼴이지.”


 도대체 아저씨의 말은 끊이질 않았다. 나는 한마디도 대꾸하지 않았는데, 아저씨는 혼자 물어보고 혼자 대답하기를 계속했다. 이건 외로움에 대한 넋두리도 하소연도 아니었다. 그저 입을 가진 인간이 내뱉는 트림 같은 것이다. 아니, 그냥 더러운 오바이트다. 더 이상 들어 줄 수도 듣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아저씨에게 꼼짝 없이 잡혀 그 오바이트 같은 말들을 듣고 또 듣고 있었다. 다만, 잠시나마 품었던 감상적인 내 오지랖에 분노를 느끼며, 먼저 내린 그녀의 현명한 판단에 경의를 표할 뿐이다.

 

                                                                                              끝.


>>이정선의 "외로운 사람들" 노래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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