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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경아 Apr 05. 2016

[노래 소설] 루시드폴의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

영정 사진 속 할머니의 얼굴이 말갛게 웃는 것처럼 보였다.



“요구르트 하나만 줘봐!"


경산 댁 아주머니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노란 카트 안에 있는 아이스박스에서 요구르트를 하나 꺼내 경산 댁에게 건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한씨 할머니네 집 앞에서 있던 구급차가 매미 울음소리를 내며 출발했다.


“한씨 할머니네 집에 무슨 일이에요?”

“한씨 할머니가……돌아가셨어!”


나는 깜짝 놀랐다. 안 그래도 오늘 새벽기도시간에 할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걱정했던 차였다. 놀란 마음에 나도 모르게 불쑥 다시 물었다.


“할아버지가 아니라, 한씨 할머니 가요?”

“응……그랬다네. 에고……불쌍한 양반!"


경산 댁 아주머니는 이리저리 눈치를 보다가 내게 귀를 가까이 대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는 다 들리는 큰 목소리로 오늘 새벽에 할머니가 뒷마당에 있는 감나무에 목을 메 자살을 했다고 말했다. 나는 너무도 놀라 손으로 입을 가리고 낮은 비명을 뱉었다. 도대체 왜? 그렇게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는데…… 나는 좀 더 묻고 싶었지만, 경산 댁 아주머니의 한마디에 다시 입을 다물고 말았다. 


“지금은 말 못 해……이따 말해줄게. 그러니까 쉿! 알았지?”



 한씨 할머니는 정말 천사와도 같은 분이었다. 몇 년 전 이 동네로 이사 오면서, 내 할당 구역도 갑자기 이 동네로 바뀌게 되었다. 처음엔 아무래도 동네 텃세 같은 게 있어서 일이 쉽지 않았는데, 그때 가장 먼저 나를 받아 주던 분이 바로 한씨 할머니였다. 항상 열려 있던 한씨 할머니 집 대문 앞에서 나는 유난히 머리가 하얗던 할머니를 처음 보았다. 할머니는 마침 감을 한 바구니 따서 이웃집에 나누어 주던 참이라고 했다. 한씨 할머니는 요구르트나 우유를 드시지 않겠냐는 나의 말에, 빨갛게 잘 익은 홍시를 먼저 내밀었다. 나는 그 맘이 너무 고마워서 그 자리에서 그 커다란 홍시를 맛있게 먹었다. 허겁지겁 홍시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기분 좋게 웃는 할머니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 후로도 할머니는 나만 보면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손에 쥐어 주곤 했다. 하지만, 언제나 입을 열어 말을 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그렇게 할머니는 내게 언제나 따뜻하고 수줍은 천사 할머니였다. 

 그런 한씨 할머니에게 커다란 아픔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교회 새벽기도에서였다. 동네 적응을 얼추 마치고 처음으로 새벽기도를 나갔을 때였다. 예배당한 귀퉁이 작은 어깨를 들썩이며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쉴 새 없이 기도하며 눈물 흘리는 할머니를 보았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할머니가 얼마나 굴곡진 인생을 살았는지, 그리고 지금도 살고 있는지를……. 그랬다. 할머니는 참으로 안타까운 인생을 살았다. 할머니 세대 사람들은 누구나 겪는 일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내가 보기에 할머니는 누구보다 힘겨운 인생을 산 사람이었다. 18살에 시집을 와서 아들 셋을 낳았지만, 남편은 천하에 한량이었고, 바랑둥이 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두 집, 아니 여러 집 살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자신의 삶을 그저 묵묵히 지켜냈다. 아들 셋을 혼자 힘으로 키우면서 중풍에 걸려 누워만 있던 시아버지를 10년 동안 모셨고, 그 시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노망이 나버린 시어머니를 또 10년 이상 모셨다. 시부모님께서 모두 돌아가시고 아들 셋을 모두 결혼시켰을 무렵, 할머니는 이제야 세상이 내 편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 할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왔다. 물론,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할아버지가 풍에 맞아 사지를 다 못쓰게 되자, 할아버지를 본가로 보내 버린 것이다. 할머니는 기가 막혔다. 하지만, 호적만 아내였던 할머니는 그런 할아버지의 병간호를 외면할 수 없었다. 자식들에게 죄를 짓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자식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중풍으로 쓰러진 할아버지를 말없이 받아들였다. 그렇게 지랄 같은 10년을 견뎌내고, 할머니는 오늘에서야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린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할머니는 죄인일 뿐이에요!"


한씨 할머니 장례식장 입구에 들어서다가 나는 이런 목소리를 들었다. 소리가 난 구석을 쳐다보니 교회 목사님과 신도들, 그리고 한씨 할머니의 자식들이 장례식장 주변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할머니가 자살했다는 사실을 가족들은 끝까지 감추려고 했다.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가시는 길, 생전에 할머니가 사랑한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며 보내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문이라는 것은 먼지처럼 소리 소문 없이 날렸다. 결국, 교회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할머니의 자살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은 목사님에게 추도예배를 요청했다. 하지만, 목사님은 인간적인 마음과 율법 사이에서 갈등했다. 그러자 몇몇 열혈 신도들이 자살을 눈감아 주는 것 또한 죄악을 권장하는 일이라며 극구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순간, 나도 모르게 무언가 울컥했다. 종교라는 것이, 신앙이라는 것이 사람을 이 정도도 보듬어 줄 수없단 말인가? 나 또한 누구보다 신실한 크리스천이었지만, 목사님과 신도들이 너무나 야속하단 생각이  들었다.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한씨 할머니의 심정이 너무도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누구보다 착하고 선하게 한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런 할머니의 삶을 신은 정말 모르셨을까? 세상에 태어나 정말 못된 짓만 하고 살아도 믿음만 있으면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그분이 한씨 할머니의 죄는 끝내 용서할 수 없는 걸까? 만약 용서할 수 없다면, 나는 그분에 대한 믿음을 살짝 거두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그때, 할머니의 큰아들로 보이는 사람의 휴대폰이 울렸다. 


“네? 뭐라고요? 네, 네……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큰 아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귓속말을 하자, 모두들 큰 아들과 똑같이 얼이 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잠시 후,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이 장례식장을 급히 떠났다. 무슨 일일까 궁금했지만, 나는 한씨 할머니의 마지막을 지켜 드리기 위해, 묵묵히 장례식장 허드렛일을 돕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기가 막힌 소식을 듣고야 말았다.


“할아버지가 좀 전에 돌아가셨다네……”


그랬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가족들은 할아버지를 돌봐 드릴 사람이 없어 요양병원에 잠시 입원을 시켰었다. 그런데, 입원하고 하루가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께서 갑자기 돌아가신 것이다. 어쩌면, 할아버지의 10년은 할머니가 있었기에 가능한 삶이었을 것이다. 할머니가 떠난 지금,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은 어쩌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닌 것이다. 착잡한 마음에 나는 잠시 복도로 나왔다. 그러자 어디선가 휑한 바람 한줄기가 불었다. 복도 끝 열어 놓은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이었다. 문득, 할머니가 하루만 더 버티셨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할머니의 선택이 안타까운 선택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자 할머니 같은 바람이 다시 한 번 불었다. 그리고 그 바람은 나를 스쳐지나 할머니 영정사진 곁을 맴돌다 사라졌다. 영정 사진 속 할머니의 얼굴이 말갛게 웃는 것처럼 보였다. 


끝.


>>루시드폴의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 노래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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