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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경아 Apr 12. 2016

[노래 소설] BMK의 "물들어"

가족만큼 반강제적이고 폭력적인 집단이 있을까?


“여기 딸기 스무디 4잔이요!”

“뭐야, 물어보지도 않고 왜 다 똑같은 걸 시켜?”

“그래야 빨리 나오지.”

“여기가 군대야? 우린 인격도 없는 거냐고? 웃겨 정말! 난 아이스커피 마실 거야!”

“엄마 나도 커피!”

“얘가 미쳤어! 엄마가 말했지. 청소년은 커피 마시면 안 된다고!”

“그럼, 아이스커피라떼!”

“그냥 딸기 스무디 마셔!”

“엄마도 아빠랑 똑같아! 인격은 무슨…….”

“성인이 되기 전에 인격은 없는 거나 다름없어!”

“쳇!”

“엄마! 난 핫쵸코!”

“그래? 그럼 아들은 핫쵸코 마셔!”

“너무해, 정말! 왜 얘 의견은 들어주는 건데?”

“얜 아직 애기잖아!”

“12살이 무슨 애기야!”

“그러니까, 다들 딸기 스무디로 통일하라니깐!”

“싫어! 아무것도 안 마셔!”

“손정미! 너 아빠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영선은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무엇을 먼저 준비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우선 확실해 보이는 딸기 스무디와 아이스커피를 준비했다. 그러다가 딸기 스무디를 두 잔 준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빨리 결정해 주면 좋으련만 손님들은 언제나 주인의 입장 같은 건 절대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다 영선은 잠시 4명의 가족을 바라본다. 가족이라는 강력한 틀에 묶인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각자 다른 소리를 하고, 서로 같은 말로 상처를 주고받는 사람들이었다. 영선은 문득, 가족만큼 반강제적이고 폭력적인 집단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서로에게 감당하기 힘든 상처를 받아도 그냥 참고 넘어가야 한다고 강요받는다. 또한, 어떤 잘못이나 상처를 견디지 못해 가족에서 벗어나려고 해도 절대 벗어 날 수 없다. 왜냐하면 죽기 전까지 그들의 관계는 절대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설혹 부부가 이혼을 하게 된다고 해도 자식들이 있다면, 그 부부의 완전한 분리는 사실상 어렵다. 그래서 가족은 그 어떤 집단보다 무시무시한 결속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더욱더 끔찍한 것은 그렇게 서로에게 결속되어 살다가 결국 서로 원하지 않는 모습을 닮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영선은 문득 자기 자신의 가족이 떠올라 몸서리를 쳤다. 영선이 그렇게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는 사이에도 가족 그들의 열띤 토론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럼, 그냥 각자 마시고 싶은 걸로 마셔!”

“왜 그래? 언제는 하나로 통일 하라며?”                                                      

“당신이 통일하지 말라며? 인격 지켜 드리겠다고! 내가!”

“그래도 준희는 커피 안돼! 다른 거 마셔!”

“그럼, 아이스모카플라푸치노!”


결국, 그들은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려서 합의를 봤다. 그리고 각기 다른 음료 4잔을 주문했다. 영선은 밀크셰이크를 두 잔 준비하지 않은 걸 다행이라 생각하며 열심히 4잔의 음료를 준비했다. 마지막 아이스모카플라푸치노 준비가 다 끝나갈 무렵,4명의 가족은 또다시 열띤 토론에 목소리 톤이 한층 높아져 있었다.


“왜 당신은 기억을 못해? 아니지, 기억을 못하는 게 아니라 내 말을 안 듣는 거지?”

“목소리 좀 낮춰. 창피하지도 않냐?”

“말해봐! 잊어버린 거야, 아님 안 들은 거야?”

“그게 중요해? 미안하다고내가. 그러니까 제발 그만 좀 해”

“손준수 너 가만히 좀 있어. 왜 자꾸 누나 신발을 차는 건데?”

“그게 누나 발이었어? 난 테이블 인 줄 알고.”

“거짓말 마. 너 알면서 그런 거잖아”

“조용히 좀 해. 엄마 화난 거 안 보여?”

“아, 정말 다들 너무 시끄럽단 말이지!”

“야, 넌 그게 꼬맹이가 할 소리야? 발이나 가만히 있으라고!”

“너도 좀 가만히 있어봐! 준수 말대로 너무 시끄럽다 정말!”

“당신은 지금 얘 편을 들면 어떻게 해? 아빠가 되어 가지고. 좀 따끔하게 혼을 내야지! 아님, 모범을 보이던가!”

“사돈 남 말하시네! 당신이 가장 앞에서 이렇게 구니까 애들이 보고 배우는 거잖아!”

“애들이 지금 날 보고 배웠다고? 얘들 말하는 거나 행동하는 건 당신 쏙 빼닮았는데?”

“얘들이 나를 닮을 시간이 있었나? 당신이랑 가장 시간 많이 보내잖아!”

“준수 보라고! 항상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지. 지금도 봐! 당신이랑 말투 똑같은 거.”

“그런 아들 오냐오냐 키운 건 누군데?”


과열된 그들의 상황을 보고 영선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카페에서 다양한 일들이 일어나지만, 연인도 아니고 남남도 아닌 가족끼리 싸움이 나면 대책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영선의 경험상, 가족이라는 관계는 참으로 이상해서 서로 싸우다가도 누군가 제삼자가 끼어들면 그 제삼자를 공공의 적으로 몰아 결국은 자신들의 싸움을 제삼자의 탓으로 모는 경우가 많았다. 영선은 안 되겠다 싶어 음료 준비가 다 되었다는 말로 분위기를 전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영선은 눈치를 보다가 적절한 타이밍에 망을 하기 위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하지만, 영선은 차마 음료 준비가 다 되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난데없이 꼬마 아이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으앙!”

“어머, 손준수 너 갑자기 왜 그래?”

“엄마 아빠 때문이잖아! 자꾸 싸우니까!”

“준수야! 알았어. 그만해. 엄마 안 싸울게. 뚝 그쳐!”

“당신 닮아서 그래. 시도 때도 없이 큰 소리로 얘기하거나 우는 거!”

“으……앙!”

“당신은 좀 가만히 있어. 얘가 더 크게 울잖아!”

“얘가 정말 창피하게 왜 이래! 너 도대체 왜 우는 거야?”


갑자기 꼬마가 울음을 그쳤다. 무언가 말을 하고 싶은데, 울음 때문에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듯 입을 연신 씰룩씰룩 움직인다. 아주 잠깐 고요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울음으로 함빡 젖은 아이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나느 아이라고……음마 아빤 안달마따고. 나느 나라고……”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다시 말해봐 준수야!”

“담으거 느무느무 시따고. 시러”

“얜 도대체 뭐라는 거야?”

“난 무슨 말인지 알겠네. 통역해줄까?”

“뭐라는 건데?”

“나는 아니라고. 엄마 아빠 안 닮았다고. 나는 나라고. 닮은 거. 너무너무 싫다고. 싫어”


영선은 말없이 4명의 가족에게 음료를 가져다주었다. 한동안 영선의 카페 안에서는 빨대로 음료를 빨아먹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끝.


>>BMK의 물들어 노래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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