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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경아 Jul 01. 2016

[노래 소설] 이적의 "Rain"

내가 그 투명인간을 보고 싶어 할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며칠째 꾸역꾸역 구름이 차더니 오늘은 아침부터 꾸덕꾸덕 비가 내리고 있다. 뉴스에선 마른장마라고 호들갑을 떨었는데 막상 비가 오니, 이번엔 장마대비를 잘하라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다행히 나는 이런 호들갑 속에서도 촉박한 일정을 차분하게 맞춰 나갈 수 있었다. 이대로라면 내일모레쯤 끝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얼마를 달렸을까? 오늘 분량을 겨우 끝내고, 오랜만에 침대에 누웠다. 잠시라도 잠을 청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상하게 잠이 오질 않았다. 사방이 너무도 조용해서 그런가?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문득, 작년 여름 생각이 났다. 작년 이맘때도 오늘처럼 하늘이 뚫어진 것처럼 비가 내렸다. 우리 집은 지은 지 30년 가까이 된 오래된 아파트였기 때문에 비만 오면 베란다 새시가 들썩거리곤 했다. 마치 아래위로 틀니를 한 노인의 잇몸처럼. 더군다나 강수량이 조금만 많아져도 어김없이 베란다 안쪽에 물이 들어찼다. 너무 낡고 오래돼서 비틀어진 베란다 새시 틈새로 빗물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년 여름에도 나는 삐걱거리는 베란다 새시 소리 때문에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오늘 밤은 비무장지대처럼 모든 것이 너무 아늑하고 조용했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


지난해 초여름, 기억도 없는 아버지라는 사람이 집으로 돌아왔다. 말이 아버지지 30년 동안 나는 아버지라는 존재를 거의 모르고 산 사람이다. 그래서 낯선 모습으로 돌아온 아버지라는 늙고 병든 남자를, 나는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낡은 사진으로만 보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그 낯선 남자를 집에 들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흉한 몰골로 문 앞에 서 있는 남자를 내쫓을 용기도 없었다. 그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모습으로 어머니 이름을 부르며 문 앞에 서있었다. 어머니는 그 늙은 남자를 보자마자 자리에 주저앉았다. 결국, 부처님처럼 자애로운 마음을 가진 내 어머니는 탕자가 되어 돌아온 그 좀비 같은 남자를 집으로 들이고 말았다. 


늙고 병든 남자는 다용도실 옆에 있는 작은 쪽 방을 차지했다. 처음엔 그가 시체처럼 며칠을 앓아누워있어서, 이 집에 누가 왔는지 좀처럼 실감하지 못했다. 그렇게 한 달을 보냈다. 몸이 많이 좋아졌는지 좀비 같던 그 남자는 겨우 사람 모습을 하고 집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그 남자를 아는 척하고 싶지 않아 투명인간 취급을 했다. 30년 동안 철저히 버리고 살았던 가족에게 너무도 당당하게 가족행세를 하는 그 남자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 남자도 더 이상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 집에는 어머니와 나, 그리고 투명인간이 함께 살았다. 하지만, 그 이상한 동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얼마 전 그 투명인간이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처음 우리 집에 찾아왔던 것과 비슷한 몰골로 투명인간은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어머니와 나는 투명인간에 걸맞은 장례식을 조용히 준비했다. 물론 그 투명인간을 위해 한 방울의 눈물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투명인간은 아침 이슬처럼 흔적도 없이 우리 집에서 사라졌다.


##


궁금함 때문에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결국,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작년과 달라진 점이 무엇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바로 베란다로 나갔다. 여전히 베란다밖엔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집 베란다 새시는 임플란트를 해 넣은 것처럼 튼튼해 보였다. 또한, 베란다 새시 틈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빗물도 찾아볼 수 없었다. 베란다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보고 어머니가 뭐하냐고 물었다. 작년과 달라진 베란다 이야기를 꺼내자 어머니는 낮은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그 사람이 고쳐 놓은 거야!"

어머니가 말한 그 사람은 투명인간이었다. 한때, 우리 집에 머물렀던 그 투명인간이 베란다를 고쳐 놓은 것이다. 그제야 나는 투명인간이 살아생전에 이런 일을 해서 밥을 벌어먹고 살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비는 그치지 않고 계속 내렸다. 이제는 비바람까지 불었지만, 튼튼해진 우리 집 베란다 새시는 이 정도쯤은 문제없다며 의연하게 버티고 있었다. 그렇게 비가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투명인간이 보고 싶어 졌다. 물론, 내가 그 투명인간을 보고 싶어 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치지 않는 빗줄기처럼 내 눈물은 계속 흘러내렸다. 이제 빗물이 아니라 내 눈물 때문에 베란다에 물이 차오를 것 같았다. 그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장대비는 쉴 새 없이 베란다 창문을 두드리고 또 두드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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