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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경아 Sep 05. 2016

[노래 소설] 언니네 이발관의 "가장 보통의 존재"

남편은 지금도 평범한 보통의 남편이 되기를 바라지만, 나는 아니다.


“내가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당신도 더 좋았겠지?”


잠들어 있는 아기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혼잣말하듯 그렇게 남편은 내게 물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의 얼굴이 버림받은 강아지처럼 애처롭고 불쌍해 보였기 때문이다. 워낙 심성이 낙천적인 사람이었다. 그래서 남편이 상처받고 가슴 아파할 줄 안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왜, 무슨 일 있었어?”

“그냥, 요즘 평범한 게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분명, 내 남편을 이렇게 만든 범인은 엄마였다. 왜냐면, 오늘 엄마가 우리 집에 다녀갔기 때문이다. 엄마는 또 아무 생각 없이 남편에게 또 쓸데없는 잔소리를 하며 남편의 속을 이리저리 긁어놨을 것이다. 나도 가끔 당해내기 힘든 엄마인데, 남편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남편에게 괜히 미안해서 마음이 짠해졌다. 사실 남편은 내겐 누 구보 다 좋은 사람이었지만, 다른 이들에겐 조금 이상하고 특별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쉽게 말해, 남편은 남 들과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남들이 없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고 하면 대개 사람들은 무조건 영화 속에 나오는 히어로나 초능력자들을 떠올릴 테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할리우드에서 만들어낸 또 하나의 편견일 뿐이다. 남들과 다른 특별한 능력이라는 게 꼭 그렇게 강력하고 멋진 능력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남편은(나도 여전히 믿기 어렵지만) 사람의 몸을 투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쉽게 말해 남편은 마음먹으면 사람들의 뱃속 혹은 혈관 속까지 훤히 다 보인다는 소리다. 사실 남편과 내가 만나게 된 것도 그의 이런 초능력 때문이었다. 5년 전 아버지가 간단한 맹장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택시정류장에서 택시를 기다리는데 젊은 남자가 불쑥 나타나 아버지에게 다시 병원에 돌아가시라는 말했다. 처음에 나는 미친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말을 따라야 할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수술한 곳 사진을 다시 찍어 보라는 낯선 남자의 말을 나는 아무 이유 없이 믿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그때 나는 아버지가 수술 후에도 계속해서 미열이 가라앉지 않아 걱정을  하고 있었다. 결국 저런 미친놈의 말을 믿냐는 아버지를 억지로 달래서 나는 다시 병원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반신반의하는 나를 보며, 청년은 검사 후 아무 일 없다면 검사 비용을 대신드리겠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그의 말을 한 번 믿어 보기로 했다. 사진을 다시 찍고 난 후, 나는 당황해하는 의사와 간호사들의 움직임을 감지했다. 그래서 그 이유를 물었다. 아버지의 몸속에 수술용 거즈가 그대로 들어 있었다고 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한 것이다. 병원에서는 사과를 하며, 검사 비와재 수술 비용은 병원에서 모두 지불할 거라고 말했다. 재 수술 실에 들어가는 아버지를 기다릴 때도 그 이상한 남자는 집에 가지 않고 내 곁에 있었다. 나는 정말 고맙다는 말을 하며 어떻게 그걸 알았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 남자는 대답 대신 수줍게 웃으며 진심으로 고마우면 자신과 데이트를 해달라고 말했다.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우리는 결혼을 약속했다. 결혼을 일주일 앞둔 어느 날, 그는 내게 고백을 했다. 자신이 가진 이상한 능력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의 첫 만남의 미스터리에 대해서도.


그의 고백을 듣고 난 후, 좀처럼 믿기 힘들었다. 하지만, 믿고 난 후에는 부끄러워 힘들었다. 항상 그의 눈에 내 장기들이 다 보인다는 것은 내 알몸을 보여주는 것만큼 수치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편은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다고 했다. 자신은 태어날 때부터 봐왔던 거라 오히려 그것이 더 자연스럽게 여겨진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남편은 내 장기가 특별히 다른 사람보다 정갈하고 예쁘게 생겼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그의 말을 믿기로 했다.


결혼을 하고 남편이 이상한 능력에 대해 내가 어느 정도 적응을 했을 무렵, 사건 하나가 발생했다. 남편은 착하고 어진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의 목숨이 위험한 것을 그냥 보고 넘어가질 못했다. 평소 부장님의 간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남편은 조심스럽게 본부장님에게 간이 심하게 부었다는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남편은 안타까운 마음에 말을 했지만, 본부장님은 그런 남편의 의도를 순순하게 받아 드리지 않았다. 결국, 남편은 그 말 한마디로 직장을 잃었다. 그리고 정확히 3개월이 지난 후, 남편은 그 본부장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남편은 직장을 잃었을 때 보다 더 슬퍼했다. 그리고 얼마 후, 남편은 다시 취직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어진 성격은 이번에도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못했다. 같은 회사 여직원의 자궁에 문제가 있는 것을 보고 그냥 넘어가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남편은 직장 내 성희롱 가해자로 다시 한번 직장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그 후, 나는 남편에게 취직을 포기하고, 나 대신 살림과 육아를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남편은 무척 기뻐했다. 예전부터 남편은 집안 살림과 아이 키우는 일을 무척 좋아했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이제야 남편 적성에 맞는 일을 찾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남편이 온전히 집안 살림을 맡게 되면서 우리 집은 남편만큼 편안하고 행복해졌다.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남편과 달리 나는 집안일에 소질이 없었고,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 훨씬 더 적성에 맞았기 때문이다. 더욱 다행인 것은 그 후로 남편이 자신의 이상한 능력 때문에 마음 다치는 일을 겪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편이 지금 저렇게 심각한 얼굴로 우울해하는 것을 보니 남편에게 상처를 준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다시는 우리 착한 남편 건드리지 못하게 단단히 못을 박아 놓으리라 다짐도 했다. 나는 그런 남편에게 무슨 위로를 해주어야 할지 몰라 아무 말 없이 남편을 꼭 안아 주었다. 하지만, 남편의 얼굴은 좀처럼 밝아지지 않았다.

그렇게 남편의 우울증이 계속되던 어느 날, 사고가 일어났다. 남편이 마트에 간 사이, 나는 남편 대신 아이를 돌봐야 했다. 하지만, 나는 아이가 혼자서도 잘 노는 것을 보고 밀린 회사 업무를 시작해 버렸다. 그런데 갑자기 잘 놀던 아이가 비명에 가까운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너무나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 기저귀를 확인하고, 열이 있는지 확인하고, 우유를 물려주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패닉 상태에 빠져 있는데, 마침 마트에 갔던 남편이 뛰어 들어왔다. 남편은 침착하게 아이를 한번 보더니 아무 소리 없이 아이를 안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응급실에서 남편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아기가 클립을 삼켰는데 그 클립이 위에 박힌 것 같다고 말했다. 다행히 의료진은 남편이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물어보지 않고 빠른 조치를 해 주었다. 잠시 후, 아기는 울음을 멈추고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나는 그제야 남편에게 고해성사하듯 말했다.


“내가 보던 회사 서류에서 떨어진 클립을 주워 먹은 것 같아. 미안해. 나야말로 정말 엄마 자격 없는 엄마인 가봐……”

“애들이 크다 보면 이런 일도 있는 거지. 당신 절대 못난 엄마 아니야. 좀 놀랐지만, 별 일도 아니잖아.”

“그나저나 당신 아니었으면 원인도 모르고 정말 큰일 날 뻔했어.”

“쓸데없는 능력이지만 우리 은진이한테 도움이 되었다니……나 괜찮은 아빠인 거지?”

“그럼, 정말 멋진고 든든한 아빠지. 우리 은진이 뱃속은 아빠가 확실히 지켜 줄 테니까!”


오랜만에 남편은 정말 환하게 웃었다. 그 일로 남편은 다시 자존 감을 회복했고 예전 같은 미소를 되찾았다. 어쨌든 내 남편은 초능력자다. 그 어떤 초능력자도 가지지 못한 특별한 능력을 가진 가슴 따뜻한 초능력자다. 남편은 지금도 평범한 보통의 남편이 되기를 바라지만, 나는 아니다. 나는 이렇게 남들과 다른 남자가 내 남편이라 너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그뿐이다.


끝.


>>언니네 이발관의 "가장 보통의 존재" 노래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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