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부터 테오의 곁에 살아 숨 쉬는 것은 자신밖에 없었다는 것을...
“이럴 땐 축하한다고 해야 되는 건가? 나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서……어쨌든, 축하해!”
“그래, 고맙다. 오늘 오후 2시야! 시간 맞춰서 일괄 전송할 테니 꼭 접속해서 결혼식 참석해라!”
“그래~이따 보자!”
픽~하는 소리와 함께 동영상이 끊겼다. 한동안 소식이 없던 라파엘이 결혼을 한다니! 그것도 오늘 2시.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뭐 요즘 같은 때에 결혼을 한다는 것 자체도 놀랍지만, 굳이 아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결혼식을 생중계한다는 것이 더 놀라웠다. 사실, 나는 태어나서 결혼식이란 걸 본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이다. 물론, 아주 오래된 고전 영화나 다큐멘터리에서 본 적은 있었다. 그래서 결혼식은 내게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여자와 검정 양복을 입은 남자가 긴 복도를 걸어가는 이미지가 전부였다. 결혼식은 우리 할아버지 세대 이전에 일어난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때는 통신이 많이 발달하지 않아서 무슨 일이 있으면 사람들이 대개 직접 만나야 했다고 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얼마나 시끄러웠을까 생각을 하니 자꾸만 두통이 밀려왔다. 그제야 침대에서 일어나 물을 마셨다. 그리고 스마트 TV를 통해 진통제 한 박스를 주문했다.
<Sunday, March 23, 2053>
스마트 냉장고 앞에 서서 오늘의 날짜를 무심코 확인한다. 어젯밤 술을 마셔서 그런지 순간 오늘이 몇일인지 헷갈렸다. 오늘은 일요일. 재택근무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콧노래를 부르며 냉장고 문을 열자, 안쪽 모니터에 오늘까지 먹어야 할 음식 목록이 뜬다. 바나나우유 2팩, 토마토 3개, 냉동 피자 2조각 기타 등등……잠시 망설이다가 바나나우유 하나와 냉동 피자 1조각을 꺼낸다. 전자레인지에 피자 조각을 녹이면서 햇반과 밑반찬 몇 개를 주문해 놔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자 갑자기 스마트 TV가 핑~소리를 내며 저절로 켜진다. 어느새 홈쇼핑 채널에선 12가지 종류의 햇반 세트를 열심히 판매하고 있다. 피자를 우걱우걱 씹어 먹으면서 나는 잠시 머리를 감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재택근무를 할지라도 모니터링이 되기 때문에 나는 매일 아침 머리를 감고 옷을 단정하게 입는 편이다. 하지만, 대개 주말이면 아무도 모니터링을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나는 자연인에 가깝게 생활한다. 아무도 나를 지켜보는 사람이 없다는 건 사람을 참 자유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형석이 결혼식 생중계에 참여를 해야 한다. 한 번도 그런 결혼식에 참석한 적은 없지만, 왠지 몸을 단정히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몇 번 망설이다가 약간 맛이 상한 것 같은 바나나우유를 다 마시고 나서야 나는 목욕 박스로 들어간다. 목욕 박스에 들어가면 가끔 내가 세탁기에 들어간 빨랫감이 되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래도 참 편리한 제품이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직접 몸을 씻었기 때문에 그게 얼마나 귀찮았었는지 분명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목욕을 하고 나오니 메시지 함에 친구들의 메시지가 가득했다. 아마도 라파엘 결혼식 때문일 것이다. 가득 쌓인 메시지를 하나하나 읽다 보니 대충 몇 가지 이야기로 압축되었다. 결혼이 뭐냐고 묻는 원초적인 질문부터 결혼을 하게 되면 정말 한 공간에 두 명의 사람이 함께 살아야 하는 거냐, 그렇다면 정말 다큐멘터리에서 보듯 그렇게 원시적인 섹스를 해야 하느냐 까지……. 어떤 녀석은 라파엘 그 아이가 미친 게 아니냐는 격한 메시지도 있었다. 어쨌든 형석이의 결혼식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과 놀라움을 일으킨 것이 분명했다. 그러다 나는 문득 한 녀석의 메시지에 스크롤을 멈췄다.
“근데, 도대체 라파엘은 신부를 어떻게 만난 거라니?”
그러고 보니 나도 정말 궁금했다. 통신과 과학의 발달로 우리들은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을 직접 만나지 않고도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친구는 물론 이성을 만나는 일도 모두 통신을 통해서만 이루어지게 되었다. 결혼을 고사하고 섹스조차도 우리는 모두 혼자 해결하는 세대가 된 것이다. 그러한 덕분에 출산율이 거의 바닥으로 떨어지자 정부는 결혼을 하지 않아도 자신의 정자나 난자를 제공하면 기관에서 알아서 착상부터 양육까지 모든 걸 해결해 주는 출산정책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출산정책을 통해 태어난 첫 세대가 바로 우리 세대인 것이다. 우리 세대들은 엄마 아빠는 있지만, 얼굴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나를 키워준 사람은 기관의 양육 교사 몇 명과 각종 모니터 카메라와 스마트한 기계들이었다. 그렇게 태어나고 자란 우리 세대들에게 결혼이라던가, 남녀가 한 집에서 산다는 일이 얼마나 신기한 일이겠는가? 사실, 나는 8살 때 마지막 양육 교사와 떨어지고 난 후 직접적으로 사람을 만나 본 기억이 거의 없었다. 간혹, 네트워크를 통해 이성과 사랑에 빠지는 친구들을 종종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사랑도 모두 네트워크를 통해서만 한다. 또한, 굳이 그런 사람을 없다고 해도 우리는 얼마든지 즐거운 성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그런데, 라파엘은 왜 굳이 그런 사람을 만나 결혼까지 하려고 했을까? 아니, 도대체 어떻게 그 여자를 만났을까? 정말 오랜만에 궁금한 것이 생긴 듯하다.
“부~~~~”
메시지가 왔다는 진동이 울렸다. 2시였다. 분명 라파엘 결혼식 생중계 초대 메시지 일 것이다. 나는 궁금한 마음에 얼른 메시지를 확인했다. 결혼식 자체도 궁금했지만, 그 보다 라파엘이 신부를 어떻게 만났는지가 무척 궁금했기 때문이다. 역시나 라파엘의 메시지였다. 해당 링크만 누르기만 하면 나는 곧장 형석이의 결혼식에 참석하게 될 것이다. 괜히 떨리는 마음에 한 숨을 크게 쉬고 나는 링크를 눌렀다.
순간, 세상 모든 것이 멈췄다. 거짓말이 아니다. 살아 움직인다고 믿었던 주변 모든 것들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물론, 처음엔 그저 네트워크에 잠시 문제가 생긴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네트워크뿐만이 아니라 집안에 있던 모든 기기들이 멈춰 버린 것이다. 전원이 잠시 나갔던 거라면, 충전 방식으로 움직이던 기기들은 계속 작동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들도 모두 꿈쩍하지 않았다.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생전 느껴보지 못한 섬뜩한 침묵이 나를 음습했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잠시 눈을 감고 다섯을 세어 보았다. 그 사이 무엇이든 다시 재부팅되기를 바란 것이다. 하지만, 열을 세고 스물을 세어도 변한 것은 없었다. 이 무시무시한 침묵 이내 자신까지 잡아먹을까 겁이나 다시 눈을 떴다. 평소 소음이라고 생각했던 각종 가전제품들의 낮은 기계음,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바뀌던 TV 소리가 완전히 사라진 집안은 무덤처럼 고요했다. 그제야 테오는 새삼 깨달았다. 애초부터 테오의 곁에 살아 숨 쉬는 것은 자신밖에 없었다는 것을.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해가 지고 어둠까지 방안에 스며들면 정말 이대로 모든 것이 끝나버릴 것 같았다. 이제 모든 것이 멈춰 버린 집안 모든 기기들의 소음마저 눈물 나게 그리웠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심장박동처럼 아주 규칙적인 소리가 들렸다. 아주 작아서 처음에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분명, 그 규칙적인 소리는 미세하게 내 달팽이관을 자극했다. 설마 이제 헛소리가 들리는 걸까? 아니다. 분명 그 이상한 소리는 쉬지 않고 부지런히 들렸다. 나는 그 소리를 더 분명히 듣기 위해 마음을 가라앉히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손을 더듬어 그 소리가 나는 곳으로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 소리도 점점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가장 크게 들릴 때쯤 나는 감았던 눈을 떴다. 나는 주문 한택 배 박스를 쌓아 두는 작은 창고 앞에 서 있었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그 박스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그 소리의 근원을 찾아냈다. 며칠 전 발신자 없이 보내진 작은 상자였다. 상자에 귀를 가져다 대자, 내 심장소리보다 큰 기계음이 들렸다. 혹시, 폭탄일까? 하지만, 폭탄이라도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용감하게 상자를 뜯었다. 그리고 그 안에 든 물건을 확인했다.
어이없게도 그 안에는 아주 오래된 태엽 손목시계가 들어있었다. 물론, 지금은 고전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수 있는 골동품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째깍째깍 소리를 내며 어김없이 움직이는 골동품 시계 초침 소리를 멍하니 듣고 있다 보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모든 것이 멈춘 세상 속에 나처럼 살아 움직이는 것을 만난 반가움 때문일까? 끔찍한 침묵의 두려움은 어느새 사라지고, 애잔한 외로움이 내 텅 빈 공간을 하나씩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외로움은 시계 초침 소리처럼 점점 더 커져갈 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