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치고 지겨운 삶에 아무튼 얼마나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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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시골에서 자라면서 치과에 다닌 적이 별로 없다. 할머니는 치과가 비싸서 무서웠고 나는 그냥 무서웠다. 이를 치과에서 뺀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옷장에 실을 매달고 문고리에 실을 매달고 나의 유치 끝에는 늘 다른 문들이 있었다. 하나 뽑고 나면 엉엉 울어 할머니의 하나도 안 아프지~ 하는 말이 들리지 않았다. 어쩌면 진짜 아프지 않았어도 실끝에 언제 문이 닫힐지 모른다는 그 불안감에 그 공포심에 울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왼쪽 어금니가 빠지고 이가 없는 왼쪽대신 오른쪽으로 열심히 음식을 씹어 삼켰더니 나는 토끼이빨 덧니에 삐뚤한 앞니들과 오른쪽 턱이 더 발달했고 짝눈으로 살았다. 성인이 되고 신용 카드가 없어도 다달이 결제를 해도 된다는 치과에서 교정을 하고 28살에는 나이가 들어가니 처지는 눈꺼풀에 눈을 찝으러 갔더니 오른쪽 눈두덩이에 근육이 없어서 눈이 안 떠지는 거라며 교정으로 한 땀을 더 땄지만 지금은 다시 힘이 없어졌다. 자존감 지킴이 어른들의 영상들을 보면 거울을 보면서 내가 제일 아름다워 내가 제일 예뻐 나는 멋져를 외치던데 나는 내 얼굴이 삐뚤 해서 여전히 예뻐 보이지 않는다. 내가 제일 예뻐 보이고 내가 제일 좋은 그 사람들은 어떻게 그 마음을 갖게 됐는지 궁금하지만 이제 와서 그 방법을 알아도 쉽게 내가 예뻐 보이진 않을 거다. 카메라에 비치는 내 얼굴이 예쁘지 않다고 생각하니 늘 누군가의 카메라에는 소극적이 되었고 예민하게 찍지 말라고 한 적도 있었다. 나이가 들면 예쁜 할머니가 되고 싶었다. 그때는 내 짝눈도 나의 빵빵한 볼도 대칭이 맞지 않는 얼굴도 나의 이겨낸 하루하루의 삶에 예뻐 보일까 생각했다. 민증사진도 눈을 찝기 전 사진이라 바꿔야지 생각하다가 적나라게 찍히는 조명아래 카메라가 괜히 싫어서 아직도 바꾸지 못했다. 이런 나라도 매일매일 예쁘다고 나 대신 말해 줄 누군가 있다면 좋겠다고 지겹게 말해줄 누군가가 내 삶에 오기를 바라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