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다 말하는 일이 꼭 행복하다와 같진 않더라고

지치고 지겨운 삶에 아무튼 얼마나 고마워

by 이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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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태연하게 모든 일을 보낼 때 주의한다. 명명하지 못하는 것들이 심장으로 내려오는 과정이 나에게는 그렇게 더딘 일이다. 머리랑 심장이 따로 놀아서 그 방향을 맞추는 일이 오래 걸려 두서없는 상태를 보낼 때면 영화 속의 장면이라고 상상한다. 아니 나는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런 일 저런 일 동요하지 않을 수 없는 일, 손까시 살짝만 뜯겨도 아프다고 하루 종일 칭얼거리면서 아무렇지 않게 정말로 태연한 줄 아는 심장에 하루는 묻는다.


"너 정말 괜찮아? 안 힘들어?"


미자가 물었다. '언니 행복해?' 머리에서는 행복하다고 말하는데 입술에서 그 말이 발화되지 않는다.

답할 수 없는 행복도 행복일까_


생각해 보면 힘든 건 힘든 거니까 삶이든 상황이든 안 좋은 일들은 선명하고 자극적이라서 그걸 '행복하다'라고 말하는 게 맞나 싶었다. 그런 일들은 언제나 싫다. 익숙해지는 고통이란 것도 없이 시간이 지나서 무뎌지고 그 기억이 조금이라도 흐려지면 그때서야 그땐 그랬지 말하며 그날의 오늘과 저울질하며 '행복하다'는 말이 나오려나


막막함, 불안, 보이지 않는 어둠

폭풍 속에서도 제 이름을 불러주세요 기도했더니 폭풍 속을 인지하게 되었고 '믿음이 작은 자'가 된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믿음이 얼마나 가벼운지 바람 한 번 불면 흔적도 없이 흩어진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_엡 2:8'


받은 선물도 까먹어 버리는 사람이 그 순간의 나다. 글을 적는 지금의 날로부터 6일 뒤에 또 이사를 한다. 대략 40번 정도 이사를 하면서 여전히 쫓기는 삶을 살고 있다. 아무것도 없는데 이렇게 살아가게 되는 일이 감사하다가도 울부짖으며 기도한다.


'못 한다고 했잖아요. 내가 할 수 없다고 데려가라고 했잖아요.'


내 아이가 이렇게 말하면 내 심장이 찢어질 듯 아플 텐데 나의 입으로는 저런 말을 한다니. 누구나 가지고 있는 아픔이 있다고 내 아픔이 더 큰 아픔이 아니라고 지나가는 릴스 속 성공한 사람들이 하는 말들이 와닿지가 않는데 내 아픔을 다른 사람의 아픔이랑 크기를 비교하며 말하고 싶지가 않은데 지가 뭘 알아. 울부짖다가 그래도 감사하다고 기도하는 하루가 다행이라서 겨우 그 하루 살아내는 매일을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매일을 다시 눈 떠야 하는 그날의 아침을 오늘도 보내고 있는데_ 반복되는 지겨운 삶에서 흥분하는 심장을 부여잡고 혼잣말을 한다. 일단 오늘만 지나면. 오늘만 지나면 또 살아져. 서편제의 가사처럼 살다 보면 살아진다. 그렇게까지 살아야 하는 삶인가 싶은 마음을 가진 나에게도 살아지는 삶이 오늘 일단 자고 나면 이어진다. 이 생이 허락된 날까지 살아진다.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고 원망도 투정도 미안하다는 말도 상황은 변하지 않는데 하루 더 나이 먹은 생각이 조금은 스스로에게 다정해진다. 그렇게 하루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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