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치고 지겨운 삶에 아무튼 얼마나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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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었다. 할머니 손에 큰 나와 내 동생은 봄이 되면 할머니를 따라 쑥도 캐러다니고 민들레도 캐러다녔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 나물들을 할머니는 척척 찾아내며 이름을 알려주셨다. 주말이 되면 집 앞의 화단에서 키우는 내가 제일 좋아하던 깻잎과 여러 야채들을 뜯어와 요리를 해 먹었다. 싱그럽게 자라난 방울토마토와 상추들 화단 곁다리 돌틈에는 늘 풀떼기들이 자랐다. 씨를 뿌린 적도 없는데 풀떼기들은 그 틈을 비집고 푸르게 무성하게 자랐다. 하루는 할머니가 풀들을 뜯어다가 양푼에 담고 조물조물하시더니 반찬통에 옮겨 담고 남은 양념과 풀떼기에 밥을 넣고 비벼주셨다. 아무렇게나 자라서 아무렇게 뜯어 간단하게 무친 그 양푼밥이 어찌나 맛있던지 동생과 나는 할머니처럼 맨손으로 밥을 뭉쳐 입에 넣었다. 나중에 할머니는 그 풀이 돌나물이라고 알려주셨다. 정말 맛없게 생긴 초록 풀떼기에 먹이고자 하는 할머니의 손맛이 더해져서일까 아삭하지도 않은 어쩌면 서걱거리는 그 식감과 머리를 맞대고 작은 식탁에서 연신 맛있다 맛있다 웃으며 먹었던 그 양푼 비빔밥이 가끔 생각난다. 나는 차멀미가 너무 심해서 소풍을 가는 날에는 차에서 나는 김밥냄새에 토를 했다. 예민한 나를 위해서는 볶음밥을 싸주시고 동생은 김밥을 싸주셨다. 또 어릴 땐 자주 아파서 할머니는 늘 나를 먹이는 일에 열심을 냈다. 자꾸 토를 하는 나에게 쑥물을 먹이셨는데 정말 말 그대로 쑥을 물에 삶은 물이었다. 상상하는 그대로보다도 더 쓰고 너무 역겨워서 그 물을 울면서 마시고 다시 토하려고 애썼지만 무슨 민간요법인지 몰라도 그 역겨운 쑥물을 마시면 토하는 일이 멎었다. 열이 나서 아무것도 안 먹으려고 하면 짭짤한 돌김에 밥을 뭉쳐 맨손으로 하나만 먹자, 하나만 더 먹자 입에 넣고 씹고 삼키는 걸 지켜보았다. 배 위에 손을 올리고 빙글빙글 문지르며 '씨쑤쎄쑤 아픈 거 날아가라~' 노래를 불러주셨다. 나중에 알았지만 씨쑤쎄쑤는 우리 할머니의 단어였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그 단어를 나는 다 커서 내 친구들이 아프면 '씨쑤쎄쑤 아픈 거 날아가라~' 노래를 불렀고 모두가 그 노래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이거 몰라? 우리 할머니가 나 아프면 늘 이 노래 불러줬어 이거 진짜 효과 있어!' 또 노래를 불렀다. 나는 커서도 자주 넘어지고, 크게 다치고 하루에도 몇 번을 '아!' 하면서 어디인지도 모를 곳에 박아 멍이 들어있다. 할머니는 여전히 문지방 조심해~ 살살 걸어~ 앞을 보고 걸어, 여전히 나는 할머니의 우리 오물자고 우리 강아지로 불린다. 그렇게 나의 모든 걸 알고 나의 모든 아픔을 품어주는 할머니가 최근에는 화장실에서 넘어져 병원에 입원을 했다. 순간 심장이 덜컹했다. 너무 무서웠다. 나의 죽음에는 늘 생각을 많이 했기에 가까이 있었지만 할머니가 없는 세상을 살아갈 생각은 할 수가 없다. 병간호로 힘들 할아버지와 내게 전화를 걸어 아프다고 우는 할머니를 향해 기차를 타고 내려갔다.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도가니탕을 배달시켜 챙겨 집에 보내고 할머니와 둘이 작은 침대, 커튼 안 쪽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할머니는 물 조금, 두유 조금으로 약을 넘겼다. 아프다고 계속 울어서 밤새 다리를 주물렀다. 움직일 수가 없으니 화장실도 갈 수가 없어 기저귀를 차고 있었는데 손녀에게는 부끄러운지 괜찮다며 기저귀를 갈려고 하지 않아 겨우겨우 달래서 밤새 챙기고 나이 든 사람의 몸에서 이렇게 많은 각질이 나오는구나를 느끼며 닦고 털고 그 하룻밤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게 아침이 왔다. 내 손을 잡으려고 난간을 잡고 내 이름을 부르다가 새벽부터 할아버지를 찾으며 와이프가 누워있는데 남편만 편히 잔다고 전화로 승을 부렸다. 분명 방금까지 나랑 있어서 좋다고 했는데 또 어린아이처럼 전화를 붙잡고 할아버지를 불렀다.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고 강하고 마법 같은 힘으로 나를 안아주던 할머니가 너무 작고 너무 늙어서 믿어지지가 않고 무서웠던 그 밤이 그렇게 지났다. 괜히 어리광을 부리면서 잘 걷지도 못하는 할머니에게 볶음밥을 해달라고 했었다. 하루 종일 앉아서 tv만 보다가 할아버지가 차려주는 밥을 먹던 할머니는 자신의 쓸모를 나의 볶음밥에 들어갈 양파와 애호박을 다지며 찾으셨다. 그런 마음을 알아서 나는 그냥 그렇게 밥을 차려달라고 했었다. 퇴원 후 할머니에게 맹리 전화를 걸어서 오늘은 밥을 먹었는지 화장실은 잘 다녀왔는지 물어봤다. 옆에서 할아버지가 '아녀~ 먹지도 않아~' 거짓말하는 할머니를 대신해서 큰소리로 외쳤다. 그러면 나는 할머니에게 잔소리를 했다, 그러면 또 그렇게 셋이 웃는 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나는 그 소리가 좋아서 통화를 녹음했다. 언제든 꺼내서 할머니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 가족이 없다고 느껴지는 내게 유일한 할머니가 걸었으면 좋겠다. 다시 나물을 캐고 밥을 비비고 나의 입에 넣어주면 좋겠다. 먹어도 자꾸 허기진 나의 속에 그 손맛이 담긴 돌나물 비빔밥을 넣어주면 좋겠다. 다시없을 일이라는 게 아직도 믿어지지 않아서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