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_ 원형테이블

어쩌면 소설

by 이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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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어른들이 있었지만 여자에게 옳지 못함을 말할 수 있는 어른은 없었다. 아이도 아이보다 더 어린아이들도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고 그저 오늘은 여자가 기분 상할 일이 없기를 바랐다. 여자는 밖에서든 안에서든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기면 모두를 원형테이블에 앉히고 이야기를 했다. 하루는 아이가 주인공이 되고 하루는 그 옆에 다른 누군가가 주인공이 되었다. 아이는 사실 더 이상 여자가 두렵지 않았다. 아마 지겨웠다. 매일매일이 그렇게 흘러갈 거란 사실에 모두가 지쳐갔지만 아무도 말을 꺼내진 않았다. 맞는 것도 지겨웠고 때리는 그 여자도 손목이 아프다며 말하는 목소리도 지겨웠고 누군가 말을 거들어 그 시간이 길어지면 더욱 지겨웠다. 여자는 파티를 좋아했다. 파티를 준비하며 아이들을 위한 거라 했지만 파티를 꾸미고 준비하는 건 아이들의 몫이었다. 테이블 세팅이 끝나면 손님들이 들어온다. 조금은 여유 있어 보이는 사람들과 어색한 웃음소리들 그 앞에서 재롱을 부려야 하는 아이들, 향긋한 티와 어울리는 음악들, 여자의 목소리가 홀을 울린다. 그 테이블에 같이 앉아있지 않는 날을 진심으로 다행이라 여겼다. 아이들은 여자의 자랑이 되어야 했고 자부심이 되어야 했고 자존심이 되어야 했다. 여자의 엄마는 많이 아팠다고 들었지만 본인이 아파가는 날들을 알지는 못했다. 한 번씩 정말 다정하게 웃어주는 여자를 아이는 여전히 사랑했지만, 사랑하는 스스로가 싫어져갔다. 크리스마스 공연이 끝났다. 이유 없이 사랑도 없이 버릇처럼 올라가는 여자의 손에 아이는 여자와 무대를 떠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생각했다. '내가 다시 무대를 설 수 있을까?' 모두가 즐거운 크리스마스에는 커다란 트리가 거리에 만들어졌다. 다 같이 웃으며 사진을 찍었지만 아이의 마음에는 마지막 공연이라는 단어만 새겨졌다. 원형테이블에 많은 사람들이 앉았다. 아이는 이곳을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가 아기를 낳고 아기보다 여자의 전화를 더 먼저 챙겨야 했던 그날을 말하진 않았다. 의미 없이 사람들 앞에서 맞았던 그날도 꺼내지 않았다. 나가고 싶다고 말한 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말을 하면 잡힌다. 여자는 아이의 아기에게 소리를 질렀다. '너 때문에 아이가 무대에 설 수 없잖아!' 아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아기덕에 아이가 살았는데 여자는 아기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에도 말을 하지 않았다. 여자에게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아이가 여자와 연락을 뜸하게 하게 될 때쯤 아이보다 어렸던 아이들은 더 이상 어른들에게 숨기지 않기로 했다. 잠을 자지도 못하고 매일을 맞으면서 하루 종일 일했지만 무대에 설 수 있는 날은 쉬이 오지 않았다. 아이는 그날의 뉴스도 시간이 오래 흐른 뒤에야 볼 수 있었다. 마음이 무거운 건 사과를 받지 못했고 방관자들 사이에서 아이들 서로가 또한 방관자가 되어야 했고 괜찮아지지 않음을 인정하기가 무서웠기 때문이리라. 무대에 서기 위해 애썼던 것보다 무대를 떠나기 위해 더 큰 애씀이 있었다. 아이들은 꿈을 놓고 살아가는 길을 택했다. 많은 기자들이 여자를 찾아가 물었지만 그 원형테이블에 앉은 여자는 여전한 실루엣으로 사랑이라 말했고 답답해했고 억울해했고 아파했다. 여자의 표정이 모자이크 뒤에 선명해져 갔다. 이렇게까지 이어질 인연이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이어져야만 했다. 그게 아이 삶의 무게였고 아이는 지고 있다. 지친 삶이라 지쳐있고 싶은데 아이의 삶이 아이를 붙잡고 하늘을 보게 했고 내일을 보게 했고 끊임없이 흔들었다. 세상에 알려졌지만 관심은 길게 가지 않았다. 지나간 댓글에 안타까워하는 사람들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남겨졌다. 진부해진 이야기는 아이의 지금이지만 그 누구도 그 아이들이 누구인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묻는 사람은 없었다. 여전히 여자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무대에 선다. 그녀가 누군지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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