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게 피어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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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할머니 손에 큰 나와 내 동생은 봄이 되면 할머니를 따라
쑥도 캐러다니고 민들레도 캐러다녔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 나물들을 할머니는
'이건 쑥이야~' 하며 여러 나물들을 찾아내는 레이더를 가지고 계셨다.
주말이 되면 집 앞의 화단에서 키우는 그 당시 내가 제일 좋아했던
깻잎과 여러 야채를 뜯어와 요리를 해 먹곤 했는데
이쁘게 자라난 방울토마토와 상추들 화단 곁다리
돌 틈에는 늘 풀떼기들이 자랐다.
씨를 뿌린 적도 키운 적도 없는데
풀때기들은 그 틈을 비집고 푸르게 무성하게 자라더라.
하루는 할머니가 풀떼기처럼 보이는 그것들을 뜯어다가
양푼에 담고 조물조물하시더니 반찬통에 옮겨 담고
남은 양념과 풀떼기에 밥을 넣고 비벼주셨다.
아무렇게나 자라서 아무렇게 뜯어
간단하게 무친 그 비빔밥이 어찌나 맛있던지
할머니는 그 풀떼기가 '돌나물'이라고 알려주셨다.
정말 맛없게 생긴 초록 풀떼기에
먹이고자 하는 할머니의 손맛이 더해져서일까?
아삭하지도 않은 어쩌면 서걱거리는 그 식감과
무슨 맛인지도 모를 풀떼기에 참기름의 고소함과
뜨거운 밥알 사이사이 양념이 지나간 길을
입안에서 씹고 있자면 양푼 바닥을 싹싹 안 긁을 수 없었다.
지금 그 투박하고 정 많은 한 끼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우리 할머니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나의 할머니는
그때처럼 나물을 뜯으러 다닐 수도 없고
힘들었다며 고봉밥을 드시지도 못하고
내가 놀러 가도 여러 반찬으로 밥상을 채워주지 못함에
미안해하신다.
20년 전에도 나에겐 할머니였는데
지금은 누구에게나 할머니다.
길가에 아무렇게 자라난 '돌나물'을 본 지도 오래되었다.
죽어가는 꽃도 살리는 우리 할머니는
그 사랑 넘치는 우리 할머니는
나를 늘 보고 싶어 하신다.
가끔 세상에 아무렇게 있는듯한 나에게
여전히 밥 챙겨 먹으라며 전화를 거신다.
아주 자주 끼니를 때우는 나는
가끔 정말 사무치게
어린 날 주말에 다 같이 먹었던
그 양푼 비빔밥이
생각난다.
정말 맛있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