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매니저 Oct 08. 2021

온전히 비워진 시간의 중요성

'쉼'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너무 근면한 한국인들... 그러지 말아요!


"너는 말이다. 한번쯤 그 긴 혀를 뽑힐 날이 있을 것이다. 언제나 번지르르하게 늘어놓고 그 실천은 엉망이다. 


오늘도 너는 열 여섯 시간분의 계획을 세워놓고 겨우 열 시간분을 채우는 데 그쳤다. 


쓰잘 것 없는 호승심에 충동된 여섯 시간을 낭비하였다.


이제 너를 위해 주문을 건다. 남은 날 중에서 단 하루라도 그 계획량을 채우지 않거든 너는 이 시험에서 떨어져라. 


하늘이 있다면 그 하늘이 도와 반드시 떨어져라. 


그리하여 주정뱅이 떠돌이로 낯선 길바닥에서 죽든 일찌감치 독약을 마시든 하라."






이문열이 쓴 <젊은 날의 초상> 중에 나오는 구절. 


짤방에는 궁서체+ 빨간 글씨의 콜라보로 그 섬뜩함이 강화되었다 (...)


이 분이 이 글을 쓰신 의도는 알겠다. 


내가 <젊은 날의 초상> 풀버전을 안 읽어봐서 저 문단이 어떤 맥락으로 쓰였는지 정확히 모르겠으나...


나무위키 읽으면서 대략 줄거리를 추측해보니까 아무래도 허송세월 보내는 자들 팩트폭력용으로 한 말 같긴 하다. 


망상으로 시간을 낭비하며 허송세월을 보내는 자들에게 따끔한 팩트폭력을 주면서 그들의 습관과 마음가짐을 개선시키자는 의도인 건 잘 알겠다.


실제로 저 글이 짤방으로 쓰이면서, 읽는 자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용도를 지니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이 글에 여러모로 반대한다. 


첫째. 일단 나는 사람의 행동을 개선시킬 때는...비난보다 칭찬이 더 유용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지금 상태를 비난하면 할 마음이 드는 사람조차 반감 생겨서 안 한다. 


아 물론, 이 글을 읽어야 할 타겟들, 팩트폭력을 맞고 따끔하게 정신차려야 할 잉여인간들은 정작 이 글에 동요가 없다.


이 글에 제일 상처받고 자기 행동을 돌아보며 죄책감 작렬하는 분들은 평소에도 너무 열심히 살아오신 분들...


늘 그렇듯이, 특정 타입을 저격하면 꼭 거기 해당하지 않으시는 분들이 제일 상처받고 괴로워한다 


ex) 무례한 사람들 저격하면 제일 예의 바른 사람들이 늘 자책한다 


ex) 꼰대 저격하면 제일 꼰대가 아닌 어른들이 가장 자책한다 




둘째. 이 글의 화자는 '멍때리는 시간'의 중요함을 망각하고 있다.


멍때리는 시간은 무의미하게 흘려보낸 시간이 아니다!


기력을 채우고 일의 효율성을 키우는데 필요한 시간이다. 


솔직히 말해서 16시간 계획 세워놓고 10시간만 지키고 6시간 멍때린거면 진짜 선빵한거 아니냐???


무려 62.5%나 계획을 지켰네 ㅋ



SM 심리건강연구소 천보경 부소장님 말씀에 따르자면 "복잡한 머릿속 스케줄 60%만 지켜도 자기주도학습 '성공'"이라고 하신다. 


( 참고: 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141203000024 ) 


결론. 저 글의 화자가 비판하는 대상은 애초에 62.5%만 지켰다고 욕 먹을 필요가 전혀 없다는 말이다.


(아무래도 <젊은 날의 초상> 풀버전을 읽어봐야겠다...)


짤방 하나에 과몰입하며 이런 분석글을 쏟아내다니...


역시 K매니저는 #진지충

작가의 이전글 아 그땐 좀 험난했었지 하면서 웃어버릴 수 있다는 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