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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매니저 Oct 09. 2021

한 인간관계를 정리하며

내가 이 인간관계를 정리하는 15가지 이유


1. 나는 너와 여러 부분이 안 맞는다는 것을 알고 멀어지려고 한다.


2. 온라인으로 대면하는 것과 달리,

너와 1:1로 대면할 때마다 이 안 맞는 부분을 인내하는 나의 에너지 소모가 상당함을 느꼈다.


3. 내가 말하는 너와 내가 안 맞는 부분은 물론 너의 잘못이 아니다.

말투, 습관, 행동 등, 너의 개성일 뿐.

굳이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내가 속이 좁은 탓일 거다. 내 잘못이다.


4. 누구에게나 말투나 행동에 특유의 '쪼'가 있고 습관이 있다.

물론 내 개성 또한 누군가에게는 되게 신경 거슬리는 속성일 수 있다.

솔직히 내 말투나 행동이나 옷 입는 습관 누군가에게는 참 불호일 수 있는데,

내가 예뻐서 다들 흔쾌히 곁에 있어주는게 아니라,

내 속성이 마음에 안 들어도 그냥 다 참아주고 있는 것일 거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세상이니까.

나 또한 누군가의 인내, 용서, 자비로 상처받을 일 없이 이렇게 이 사회 속에서 편하게 숨쉬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안 맞는 부분을 "이 사람의 개성이니까..." 라고 생각하고 유하게 넘길 수도 있었다.

친구니까.


6. 다만 너와 나는 너무 급격히 친해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서로 '우린 친해졌다'라고 착각했던 거다.

우리가 30개월 동안 서로 나눈 대화량이 많긴 했다. 근데 그 대화는 거의 다 업계 얘기 아니면 취미 얘기, 맛집 정보에만 한정되어 있었다.

사실 그 많은 대화 중에서 너와 나의 가치관(인생관, 연애관, 종교관 등등)이 어떤지에 대해 서로 공유한 적은 거의 없었다.

특히나 나는 그 부분에 대해 제대로 진지하게 언급한 기억이 없다.


7.  너는 나를 본인과 아주 비슷한 사람이라고 느꼈으니까, 너의 가치관과 나의 가치관을 동일시해서 쉽게 말했던 거라고 판단한다.

너는 나를 돕고 싶은 선의였음을 모르지도 않는다.

하지만 나의 가치관이 어떤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너무 빨리 던져진 너의 오지랖 가득한 위로는 내게 더 상처를 주었다.


8. 천천히 단계를 밟아가며 친해져가는 사이였다면,

서로의 다양한 부분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사이였다면

이러한 가치관의 차이는 때가 되면 서서히 이해 가능한 것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너와 나는 30개월 동안 다른 얘기는 거의 안하고 맛집이랑 취미 얘기만 열정적으로 했을 뿐이고,

솔직히 그 외의 영역에 대해서는 서로 알아갈 틈이 없었다.

맛집이랑 취미 빼고 다른 부분은...서로 어제 만난 것과 비슷한 밀도로 데면데면한 사이나 다름없었다.


9. 물론 이런 관계도 내 기준 친하다면 친하다.

하지만 서로 잘 알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 섣불리 상대방이 요구하지도 않은 조언이나 위로를 주려하면...

그건 그 사람에게 상처가 되기 마련이다.


10. 사람과 사람이 친해져가는데도 순서가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대화를 많이 나눴다한들, 만난 횟수 누적치가 높다한들, 친밀도가 바로 높아지지는 않는다.


11. 우리가 생각만큼 친한 사이가 아니라는 걸 자각했고,

 전에는 편하게 받아들여보려고 노력했던 너의 말투나 습관 같은 개성을...

편하게 느끼기 위해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게 힘겹게 느껴졌다.  

서서히 단계를 올려가며 친해지는 과정에 있다면, 그 개성도 '정'으로 극복 가능한 거였는데.


12.  사실 지인 정도라면 말투나 습관이 불호여도, 견딜 수가 있다.

서로 이해관계가 오가는 것에 대해서만 충실하면 쾌적하고 좋은 인연이니.

다만 절친급의 친구가 되려면, 말투나 습관 같은 것도 서로 결이 맞아서,

굳이 꾸며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의 행동거지가 마치 솜이불을 덮듯이 편안하게 느껴져야 한다고 난 믿는다.  


 

13. 이런 이유로 나는 너와 멀어지려고 한다. 하지만 누군가를 상처줄 권리가 나에게는 없다.

아예 손절처럼 사람에게 모멸감을 주는 방식으로 끊을 생각은 없다.

나와 맞지 않는 게 너의 잘못은 아니다. 여전히 지인으로서, 업계인으로서 너는 나에게 좋은 인연이다.

그 점에 대해서는 언제나 감사한다.

다만 베프로 지낼만큼 맞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을 뿐이다. 맞지 않는 자리에 있으면 너나 나나 서로 불편하다.

그래서 이제 너와 나의 거리 조정을 다시 하려 할 뿐이다.  


14. 너와 나는 절친이 아니었다. 업계 지인이다.

업계 지인에게는 선을 넘어 인생관이나 사생활 문제에 참견하면 무례해진다.


15.물론 지인과 친구 그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선이 존재하는게 아니라, 지인이어도 서로에 대한 이해도와 신뢰감이 쌓이면 친구가 될 수 있는데.


일단 너와 내가 다시 친구 관계로 복귀하려면, 다시 처음부터 단계를 다져가며 서로 어떤 건 용인되고, 어떤 건 건드리면 안되는 부분인지 하나하나 알아야 할 것이고,  그 과정은 참으로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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