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안 맞는 사람 배척하라는 의미는 아니고요
1. 결이 맞는 사람에게 곁을 내 주어야 합니다.
나를 억지로 꾸미지 않고,
불편한 걸 굳이 참아낼 필요가 없이
함께 있는 시간이 푹신한 소파에 폭 잠겨 있듯 편안한 관계요.
2. 이 말은 자신과 조금이라도 차이가 나는 사람을 배척하고, 자기만의 틀에 박혀 지내라는 의미는 전혀 아녜요.
자기 입맛에 맞는 것만 옳고 그 외에는 전부 내쳐버리는 협소한 삶은 사람을 성장시키지 못합니다.
때로는 다른 것과 부딪쳐보며, 내 범위만이 세상의 전부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3. 에고 네트워크의 밀도라는 말이 있어요.
'나'를 중심으로 내 주변의 사람들이
서로 잘 알고 친밀한 관계라면
'나'의 에고 네트워크 밀도는 높죠.
반면 '나'를 중심으로 내 인맥간에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면, '나'의 에고 네트워크 밀도는 낮아요.
쉽게 말해 끼리끼리 어울리는 작은 시골 마을 같은 곳의 에고 네트워크 밀도는 높은 반면,
마당발이어서 다양한 스타일의 사람과 어울리는 사람의 에고 네트워크 밀도는 낮아요.
연구 결과, 에고 네트워크 밀도가 낮은 사람일수록 통찰력이 높다고 합니다.
4. 인간 관계에 편견을 두지 말고 가급적 다양한 사람에게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야 하는 건 맞죠.
다만, 결이 맞지 않은 사람과 너무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면...
적절한 거리를 유지했을 때와 달리 서로의 맞지 않는 결이 서로를 상처입히게 되어요.
너무 가까이 붙어서 서로를 찌르는 고슴도치처럼요.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이 어딘가 불편하고 상처받으면서도, 이걸 원활환 관계를 위해 꾸역꾸역 참아내야 하죠.
한편 나도 상대방에게 불편한 존재로 여겨지지 않나 노심초사하며 내 말과 행동을 상대방 보기 좋은 방식으로 꾸며내게 되어요.
이런 관계는 서로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시킵니다.
5. 거리를 두라는 말은 손절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결이 맞지 않는 사람을 눈 앞에서 없는 사람처럼 무시하는 등 무례하게 행동하라는 뜻이 전혀 아녜요.
웃으면서 그 사람을 존중하되, 필요 이상의 사적인 이야기가 오갈 필요 없이
깔끔하게 미소 띤 얼굴로 공적인 관계만 유지하며, 예의를 지키자는 의미입니다.
6. 그래서 '결'이라는게 과연 무엇인가?
사람마다 '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다 다르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외향적인 사람들은 외향적인 사람들끼리,
내향적인 사람들은 내향적인 사람들끼리 결이 맞다고 생각하겠고
또 다른 사람은 감성파는 감성파끼리, 이성파는 이성파끼리 서로 결이 맞겠다고 생각하겠고
뭐 어떤 사람은 학력이나 재산 보유 현황, 결혼 유무 등을 결의 기준으로 생각하겠죠.
제가 말하는 결의 기준은.
첫째. '다른 사람의 영역을 함부로 쳐들어올까봐 조심스러운 사람 /
그의 역린일수도 있다는 생각 없이 무심결에 훅 찔러버리는 사람'입니다.
둘째.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는 법이니 순리를 따르자,
될 일은 억지로 하지 않아도 다 이뤄지게 되어 있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데 언제 올지도 모를 때를 기다리냐,
될 때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밀어붙여야 한다
7. MBTI로 사람 판단하는 거 이젠 싫어하지만,
MBTI 얘기를 하자면요.
제가 결이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다고 생각해서
이제 거리를 두기로 결정한 분은 저랑 정확히 같은 유형이었습니다.
반면 저랑 모든 지표가 반대였던 친구와는 차라리 저와 결이 맞는다고 느껴졌고요.
(즉 MBTI로 사람 판단, 인간관계 가늠은 참 위험합니다.)
8. 결이라는 건 타고난 성향이 아니라,
나와 그 사람의 맥락과 다양한 경험과 그 순간의 우연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치고이치에'라는 말을 좋아해요.
모든 만남이 생애 단 한번의 만남이라고.
매 순간만의 상대방과 그 순간만의 내가 만나는 거라고.
처음 만났던 사람이
나와 결이 안 맞는 것 같다고 생각되어도
언젠가 인연의 이루어지는 때가 다가오면, 그 사람과 신기하게 결이 맞게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사람에게 편견을 가지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려고 합니다.
9. 다만 인연을 이루는데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직 결이 맞을지 맞지 않을지도 모르는 사람과 무작정 결을 맞추려고 가까이 있다보면...
서로 결이 맞지 않아 생기는 거스러미 때문에 따가움을 느끼고 화들짝 놀라게 되죠.
이 사람과 내 결이 맞는지 안 맞는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거리를 두고 지켜보면서 서서히 가까워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10. 그래서 결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그저 예의를 갖추고 대했던 누군가가...
서로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서로의 다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인연이 오래 무르익게 되면 또 어느 순간 결이 맞아드는 때가 찾아오더라고요.
11. 올해 여기 내려오면서 여러 인연을 경험한 덕택에 구축한 삶의 원칙입니다.
이제 여기에서 뿌리내리고 살면서, 이 원칙대로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제 세계를 세워나가고 싶습니다.
bonus 1.
'결이 맞다'라는 건 중립적인 표현으로 느껴져서 좋아요.
내 결만이 옳은 결, 다른 방향은 나쁜 결이라는 의미가 아니죠.
그래서 전 안 맞는 사람과의 관계를... '결이 맞지 않다' 라고 표현하는 게 좋아요.
요즘 많이 쓰이는 '기 빨린다' 이런 말 보다는요.
기 빨린다는 말은 '남 때문에 내 기가 빨린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고 느껴져서,
내게 피해줄 의도가 없이 내 곁에 닿은 누군가를 암묵적인 착취자로 간주하는 뉘앙스가 있어서
별로 이 말을 좋아하지 않아요.
(뭐 개인적 가치관 때문에 이 말을 나 혼자서 가급적 안 쓰겠다는 의미이고
남에게 '기 빨린다'는 말 쓰지마라고 강요하는 건 아닙니다.
전에 이에 대해 쓴 제 글이 여기저기서 많이 비난받는 거 인지하고 있는데요.
그냥 저 개인적으로 이 단어를 불호로 여길 뿐입니다.
쓰고 싶은 사람들 자유롭게 마음 가는 대로 하고 싶은 말 하는 거 보기 좋습니다.
제가 뭐라고 남의 자유를 침해합니까.)
bonus 2.
그러므로 제가 말하는 저와 결이 안 맞는 사람도,
제 인연이 아닐 뿐 다른 누군가에게는 최고로 좋은 사람인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