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너 포터의 '폴리아나'와 루쉰의 '아Q정전'으로 비교해보기
타인을 공격하고 차별하고 부정적 정서를 옮기는 데나 도구로 쓰이던 신조어, 유행어의 세계에 모처럼 '원영적 사고'라는 말이 주목받아서 기쁘다.
이게 다 장원영이 우리 사회를 향해 선사해준 소중한 문화 유산이다.
다만 늘 걱정되는 건, '원영적 사고'라는 좋은 말 또한 '유행어의 유통기한'이 지나갈 경우 언중들의 뇌절을 통해 의미가 왜곡되어 악용될 가능성이다.
이를테면 조금 전 시즌의 유행어였던, '너 뭐 돼?'
분명 시초는 자아 비대하고 오만한 사람들을 꼬집고 겸손하게 다시 생각할 걸 권하는 계도의 의미를 담은 말이었는데,
이 말은 언젠가부터 소신 발언하는 사람들 입막음하는데에 더 많이 쓰이게 되었다.
이 밖에도 여러 유행어들이 여기저기에서 유통기한을 넘기면서 결국 부패해버린 사례들이 많다.
원영적 사고도 혹시라도 비겁한 자기합리화나 정신승리에 악용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시각들도 있다. 그래서 당사자인 장원영에게도 정신승리와 원영적 사고의 차이는 뭐냐고 묻는 팬도 있고.
나 또한 모처럼 우리 문화계에 생겨난 긍정적인 밈을 지켜내고 싶다.
그래서, 원영적 사고와 정신승리의 구분을 위해 참고하면 도움이 될 고전문학을 소개하고 싶다.
"그래요, '행복찾기 놀이'예요. 아빠가 가르쳐 주셨어요.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이 놀이를 해왔어요.
"무슨 놀이인데요?"
"아주 간단해요. 기쁜 일을 찾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이 놀이를 시작하게 된 것은 다리가 부자유스러운 사람이 사용하는 목발이 나에게 배달되었을 때부터예요."
폴리아나는 그 때의 일을 회상하듯이 천천히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그 때 인형이 몹시 가지고 싶었어요. 그래서 인형을 보내 달라는 편지를 써서 교회 본부에 보냈어요. 그랬더니 '지금 목발밖에 없으므로 목발을 보낸다'는 답장과 함께 목발이 배달되었어요. 그래서 나는 울음을 터트렸지요. 그랬더니 아빠가 '폴리아나, 목발을 받은 것을 기뻐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낸시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폴리아나를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나도 처음에는 아빠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왜일까 생각하고 있는데,
아빠가 '목발을 짚지 않아도 되니까 기쁘잖니, 폴리아나'라고 말씀하시잖아요.
"어머, 이상한 사고 방식이로군요."
"아니, 조금도 이상하지 않아요."
폴리아나는 고개를 크게 가로저었습니다.
"근사한 일이예요. 무슨 일에서든지 기쁨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거든요.
기쁜 일을 찾아낼 수 있을 때에는 참 행복한 기분이 들어요. 그래서 아빠와 나는 '행복찾기 놀이'라고 이름을 붙여 놓고 언제나 이 놀이를 하며 살았어요."
(지경사, '소녀 폴리아나' 中)
원영적 사고는 엘리너 포터의 소설 '폴리아나'에서 원조를 찾을 수 있다.
폴리아나는 Glad Game이라는 사고 전환 체계로 부정적인 상황을 긍정적으로 발상을 전환한다.
반면,정신승리는 루쉰의 소설,' 아Q정전'에서 사례를 잘 보여준다. 아Q는 자길 때리는 건달들에게 제대로 항거하지도 못하면서 저 놈들은 아들뻘 놈들이라 그들에게 맞은 건 아들에게 맞은 것 뿐이라고 현실을 왜곡시킨다.
그리고 남들이 아무리 아Q를 경멸해도 아Q가 스스로를 경멸하는 크기를 따라오지 못하니 결국 자기경멸의 1인자는 본인이라는 괴상한 논리에서 위안을 받는다.
그리고 아Q는 남에게 경멸당한 스트레스를 자기보다 약한 여승들을 괴롭히며 해소한다.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1️⃣Glad game과 원영적 사고에는 긍정적 실천 의지가 포함되어 있다. 둘다 지금 이 순간 해야 하는 걸 찾기 위해 현실을 다른 각도로 보는 거다. 반면 아Q의 정신승리에는 긍정적 실천 의지가 결여되다 못해 마이너스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고 핑계를 찾아서 현실을 왜곡한거다.
2️⃣ Glad game과 원영적 사고에는 승자 vs 패자 구도가 없다. 모두가 승리자다. 근데 아Q의 정신승리에는 나만 이겨야하고 너희는 져야한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3️⃣ 2번과 관련하여, Glad Game과 원영적 사고는 나만 이겨야한다는 아집이 없기에 남 탓이 없다, 근데 아Q는 나만 이겨야하고 모두 패배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자기가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을 남 탓으로 돌린다.
고전을 통해 보니 막연히 혼동되던 원영적 사고와 정신승리가 확연하게 구분된다.
그래서 고전에는 동서고금의 지혜가 응축되어 있다고 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