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하고 멸렬한

늦어진 정의가 쌓아 올린 풍경

by 지음

도시의 일상에서 정치가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다.

무너진 구멍 아래, 사람도, 시간도, 판단도 함께 빠져들었다.




평소에도 지루한 출근길. 지리하게 미뤄지는 헌재의 판결로 인해 길이 더욱 끈적하다. 안국을 지나 혜화로 향하는 길가엔 경화된 동맥처럼 전경 버스가 길 양쪽을 막고 늘어섰다. 차 사이로 새치기 해야만 진행 할 수 있는 마당에, 정류소에 닿으려 도로 바깥을 찍고 다니는 버스는 뒤쳐지기에 유리하다. 시간이 찌글찌글 늘어난다. 늘어난 시간을 보상이라도 하듯 버텨내야 할 질량이 증가한다. 몸조차 무거워 조금씩 자세가 내려 앉는다. 가라앉는 마음 만큼 이미 얼굴도 찌그러 졌을텐데, 양 쪽에서 서로를 향한 욕설과 비난이 확성기를 타고 넘나든다. 괴롭다.


판결이 3주나 미뤄지니 이젠 매 출근길이 난리다. 어제 광화문에선 금 간 맨홀 뚜껑 옆에 흰 칠을 하고 차를 통제하는 바람에 기어 다닌 버스를 초입에선 7시 공연을 미리 준비하는 탄핵 찬성 집회가, 중간엔 탄핵을 반대하는 집회가 번갈아 도로를 틀어 막았다. 지나고 보니 도로는 소장 처럼 이리 저리로 꼬인 형태로만 차가 다닐 수 있었는데, 가장 좁아진 길은 왕복 6 차선인 도로를 시골길 마냥 2 차선으로 만들어 놨다. 서울의 유동량을 견뎌 낼리가 없는 와중에, 최근 보이는 빈도가 늘어난 구급차가 급하게 지나보려 역주행으로 들이닥쳐 안국역 앞은 총체적 난국이다. 평소 25분이면 지날 길 위에 1시간 반을 갇혀 있었다.


참을성을 잃어 경적이 난무하고, 버스 안의 승객들이 중간에 내려 달라고 아우성 칠 정도인 도로. 그나마 도로의 형태를 유지하는 이유는 교통 경찰들이 바삐 무선을 주고 받으며 통제하기 때문이었는데 어떻게 구급차가 틈을 치고 나왔는지 모르겠다. 급하다는 일념으로 신호를 무시하고 빈 차선으로 달려든 것인지, 경찰들 간의 신호 주고받음이 어긋났던 것인지. 통제로 안국에서 광화문을 향하는 방향의 세 차선은 모두 막히고, 남은 세 개 차선 중 한 차선은 전경 버스가 한 차선은 반대쪽으로 향하는 차들이 사용 중이었다.


구급차는 반대쪽 방향 차들이 신호에 걸려 살짝 빈 틈을 노려 달려 나왔다. 그러나 신호가 그런 사정을 알고 줄곧 빨갛게 멈출리 없다. 이내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 염소들 마냥 일정 거리를 두고 차들이 맞딱뜨린다. 둘 모두 물러설 공간이 없기에 분위기는 마치 오래전 전투에서 벌어졌다던 일기토의 장면 같다. 우리 버스는 그 둘이 마주보고 있는 중간의 옆 길을 지나고 있었기에 나는 실시간으로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불편한 감정이 훅! 치고 들어온다. 안 그래도 언제 앞으로 가나 엉덩이가 들썩 거리던 참이었는데 이젠 별 상황이 다 불편함을 자아낸다.


찌글 찌글, 저릿 저릿 불편한 대치 위로 탄핵을 찬성하는 이들의 구호와 그들을 욕하려고 집회 위치를 잡은 이들의 욕설이 난무한다. 계엄 이후로 오래 참아 힘든 마음 위로 늦어지는 만큼의 짜증이 올라서서 구급차의 위용 위용 하는 소리에 맞춰 댄스를 춘다. 흥겨운 목을 가누기 힘들어 차창벽에 머리를 절로 두들기게 된다. 지극한 슬픔의 감정은 기쁨과 비슷하게 표출된다고 누가 말했던가. 스트레스에 겨운 마음도 흥이 되어 자진모리 박자로 벽을 치게 하나니, 옆에 앉은 아주머니의 불편한 기색만 아니었다면 징채라도 된 모냥으로 자락을 탈 뻔했다. 울려라 버스야, 달리지 못할 바에야 징~ 징~ 소리라도 내봐라. 한 톨 남은 시민 의식에, 머리 큰 늙은 청년이 스트레스 반응을 보이는 것을 누가 편히 바라 볼 수 있겠는가 싶어 멈춘다. 다른 이들도 같은 괴로움을 겪고 있는 와중이 아니던가.


한 편의 촌극 같다. 이전부터 쌓여온 불화들이 한 자리에 뭉쳐 극한의 지연을 빚어 내고 있다. 계엄을 제외하고도 탄핵 될만한 사유가 많은 대통령은 국민들을 두 편으로 갈라 놓았을 뿐만 아니라 의료대란도 일으켰다. 일방적인 고집과 강행으로 분란을 일으키고도 분이 덜 풀려 계엄 포고문에서도 의사들을 겁박했다. 하여 구급차는 이런 시위들이 일어나기 전에도 이 길 위를 자주 달렸다. 엊그제에는 멀쩡한 도로가 내려앉아 사람이 죽었다. 어찌나 크게 무너졌는지 싱크홀 아래로 빠져 들어간 희생자를 찾는데 하루가 꼬박 들었다고 한다. 잔금이 가 있는 맨홀을 홀로 지키고 서있는 경찰은 그것을 감안한 긴급 대응인 거겠지. 어이 없다. 진짜 금이 간 거라면 그 위에 서서 차들을 막고 있는 경찰의 안전은 누가 보장할 것인가. 제대로 된 조사와 검증 없이 모든 금이간 맨홀들을 막고 서있을 경찰들. 시 당국은 싱크홀에 관한 최소한의 대응매뉴얼도, 대응 팀도, 관련 지식도 없음을 선전하고 있는 거다. 이 모든 혼란함이 도로를 끈적하게, 너무 느려 현기증 나게 압박하고 있었다.


일상의 이런 파괴가 얼마나 많은 곳에서 이루어져 왔길래, 성난 사람들이 이쪽 저쪽 할 거 없이 평일 오후에 뛰쳐나와 양쪽으로 갈라서서 싸우고 있는 걸까. 이런 혼란을 야기한 것은 물론 헌법재판소의 재판관들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감당해야 하는 헌법 질서의 수호라는 것은 누적되고 누적되다 터져 나온 문제를 다루는 일이다. 헌법적 가치와 정의를 구현 하는 일에는 헌법적인 완벽성을 추구하는 것에만 있지 않다. 실시간으로 터져나가는 둑을 지켜내는 일은 완벽한 계산이 이루어진 뒤에 시행되는 보강 공사가 아니라, 적시에 막아넣은 돌멩이 한 개 일수 있다. 나라의 큰 일들은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정체 구간이 보이지도, 비교적으로 관찰할 대상을 설정하는 것도 어려운 탓에 체감하는 것이 쉽지 않아 모르고 지나는게 많겠지만 얼마나 많은 곳에서 문제가 생기고 있겠는가. 꽉 막힌 도로에서 서로 갈 길을 막은 구급차 같은 상황이 온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을 텐데, 헌재는 홀로 한가롭다.


제 때에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악의 편이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헌법재판소가 지리하고 멸렬한 행보를 보이는 사이 무너져 가는 것들을 그들만 보지 못한다. 지체 시키는 것이 거대한 악을 행하는 일임을 용서 받지 못할 자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시민들은 충분히 참았다.


대치 상황을 풀기 위해 급히 경찰이 뛰어온다. 막힌 길은 어쩔 수 없으니 기다리는 것은 또 우리의 몫이다. 애꿎은 버스를 가로막고 앞 차들을 보낸다. 어쩔 수 없다. 움직일 수 있는 차선이 기다려야 무한의 대치가 끝난다. 스스로를 납득시키고, 기댈 곳 없는 화를 한 번 더 삭힌다. 부디 빠르게 가야 했던 이의 건강을 빌어 본다. 기다림도 이번이 마지막 이길 또 빌어본다. 이 이상은 참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악한 그들도 알아야 한다. 한 번 더 참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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