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에 관한 토론회를 보고

by 지음

나뭇가지는 반쯤 물든, 그라데이션으로 퍼지는 붉고 푸른 무늬의 이파리를 달고 있었다. 늦었어도 아직은 가을. 단풍이 모두 물들기 전에, 소복하게 얹히는 한겨울 같은 폭설을 맞아 부러졌다. 이젠 함께, 갈색으로 말라갈 것이다. 늦게까지 더웠던 가을에 어울리지 않게, 첫 눈은 기록적으로 쏟아져 내렸다. 기후의 이상을 곳곳의 부러져버린 나무로 마주하게 된다.


46억년 지구의 역사 앞에 순간에 가까운 100년의 관찰만으로 호들갑 떠는 자의식 과잉보다 막연하게 낙관적이거나 어쩔꺼냐는 식의 무관심이 더 나쁘다고는 생각하지만, 입장상 두 부류 모두와 싸워야 하는 일은 고되고 외롭다. 두 생각이 한 개체 안에서 서로 싸우는 형태라면 차라리 나을텐데, 한 편은 과한 자기 확신을, 한 편은 효율과 이득을 내세우며 대립한다. 둘 사이의 논쟁이 끊이지 않아 각자는 자기의 입장을 되돌아 보며 귀납 가능한 추론들의 총체 안에서 자신의 주장이 가지는 가치와 의미를 조망할 시간이 없다. 지구적인 규모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국소적이거나 협소한 몇 가지 사실들 만을 가지고 서로를 설득하려 한다. 반박할 거리는 이쪽에도, 저쪽에도 넘쳐나게 마련이다.


한 쪽은 작은 행동 하나 하나에 대해서 너무 과한 의미 부여를 시도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자신이 먹고 입고, 살아가는 것의 전반에 대해서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다. 총체에 대한 논리적 분석이 부족하다. 다른 쪽은 지금의 행위 하나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설명하나, 작은 행동 하나 하나가 모여서, 반복되어 쌓이는 것의 무게에 대해서 경각심이 부족하다. 한 쪽의 문제거리를 찾아내는 섬세함과, 다른 쪽의 논리적으로 접근하는 방법론을 결합하여 "행동이 장기적인 반복에 의해서 쌓여 일으킬 수 있는 거대한 현상"을 파악하는데 힘을 합치면 좋을 텐데... 이 문제는 귀납적인 방법으로 탐구하기에 크고, 변수가 많고, 재귀적 특성이 포함되어 있어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문제이니 말이다.


그들의 입장과 주장은 집단의 이득을 대변하거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자아 정체성을 대변하는 것이어서 타협할 줄을 모른다. 실제를 이해하는 것 보다 중요한 자아의 효용성을 느끼는 방법이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익으로 구현하는가, 가치로 구현 하는가의 차이는 있지만, 논점이 아니라 존재가 충돌한다. 그러나 자연의 흐름을 관찰하는 일에 '나'의 효용감은 중요한 요소가 아니고, 그런 방식으로 인과가 결정지어지지도 않는다. 상응하는 법칙과, 그에 상호작용하는 요소들을 반영하여 흘러갈 뿐. 그래서 둘의 논쟁은 잘 짜여진 블랙코미디 처럼 보인다.


행위의 정확한 결과가 알려지지 않은 구호와 활동은 미신처럼 허무하고, 눈으로 나타나는 변화 앞에서 내가 하는 일의 책임을 무시하는 행위는 매일 먹이를 주던 손이 언젠가 목을 비틀어 버릴줄도 모르는 암탉의 인식처럼 어이없다.


문제는 한 인간이 너무 좁은 경험과 지식, 입장만으로 과한 주장을 하는 것으로 귀결되어 있는데,서로 눈앞의 주장들을 파훼하는데 급급하다. 무언가가 더 있는 듯이 잘난 양복을 입고 폼을 잡지만, 그 뒤를 받치는 지식의 실체는 거의 없다. 귀납으로 결말 나지도 않은 일에 누가 그렇게 큰 확신을 가질 수 있단 말일까?


산책길에 만난, 꺾인 소나무 두 그루, 가지가 꺾인 단풍과 이름 모를 조경수. 그들이 티비를 볼 수 있었다면, 인간의 지성에 대한 믿음이 꺾인 나와 함께 껄껄껄 웃을 수 있었을텐데...

혼자서라도 웃을 수밖에 없다. 거의 모두와 어긋난 채로 살아 내려면,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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