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식사란, 기억의 창.
몇해 전 아이가 한달인가, 베이비시터를 잠시 하던 집의 일하던 엄마 베씨는 과일 중 서양배를 좋아했다. 어쩌다 만나면 그집 응접실에 놓여있던 잘 익은 서양 배를 어떤 긍지가 품어있는 미소로 내게 권하곤 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못생긴 서양배보다 백배는 멋있는 한국 배를 이미 알고 있는 내게 그런 자긍심이 숨은 미소는 전혀 효과가 없었다. 그래도 그녀의 친절은 잊을 수 없다. 사실 미국에서도 배는 흔한 과일은 아니다. 특히 표주박 모양의 배는 모양은 그래도 고급과일이다.
오래 전, 8월 말, 이맘때 산책나가면 늘 그 생각이 나는데, 기억해보니 생각보다 퍽 오래전 일이다.
차를 몰고 멀리가서 산책을 하다보면 어느 가정 집의 뜰 안에 과실수로 자라고 있는 동그란 모양의 배가 제법 열린 배나무를 우연히 만날 수 있다. 모양은 한국 배인데 과수원에서 자라는 배처럼 큰 배가 아니고 야생에서 그냥 자라는 크기가 좀 작은ㅡ 옛날 어른들이 돌배라고 부르던 그 배이다. 그런데 과실수로 자라는 모습은 여간 이쁜게 아니다. 반갑기도하고 그립기도 하고 그곳에 잠시 발이 머물러 쳐다보고 있으면 같이 산책을 나선 옆지기가 그러지 말라고, 남의 집앞에서 왜 그러냐고 재촉을 한다.
상당히 오랫동안 이곳에 지내면서 입맛을 들이니 이젠 잘 익은 서양배도 퍽 맛있다. 서걱거리며 시원하고 달고 즙이 많은 우리나라 배도 맛있지만 농밀한 밀도의 서양 배도 정말 먹을 만하다. 그 자긍심이 깔린 미소가 이해가 되는 서양 배의 맛을 이제 나는 잘 안다. 그 때 그걸 알았더라면 나는 그 미소에 맞는 미소로 답을 해주었을 텐데, 나의 문화적 응답은 늘 이렇게 한발자국 느리게 다가간다. 겪어보니 그 나라에서 소비되는 음식은 그 나라의 문화이다. 누군가가 그랬다. 나라를 옮겨살게 될 경우, 그 옮겨살게 된 문화에 동화가 될려면 적어도 30년의 세월이 필요하다고...그리고 나는 이제 그 삼십년이라는 숫자가 어렴풋이 가슴에 다가오는 이해력을 지닌 이방인이 되었다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가장 마음을 쓰는 일 중의 하나가 식사준비이다.
여기에선 한국에 살듯이 반찬그릇을 여러 개 두고 식사를 준비하진 않지만 그 마음은 늘 12첩밥상준비 못지 않다. 가끔 왜 이렇게 먹는 일에 신경을 쓸까 생각하게된다. 그건 아이의 마음에 새겨질 머릿속 기억 때문이다. 유명한 문학작품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에서도 주인공이 마들렌의 냄새를 따라 자신의 옛일을 기억해내듯, 사람들의 기억은 때때로 음식과 연관되어 애틋해지기도 한다.
시간이 오래오래 지난 뒤에 아이가 엄마인 나를 기억 할때 내가 만들어주던 음식을 함께 기억할지도 모른다.
매일 매일 먹는 음식이란 따분하기도 하지만 매일매일 먹어야 하니 그만큼 중요한 기억이 된다.
음식은 음식하나만 정해지면 끝나는 게 아니라서 음식을 두고 그 나라의 문화라는 말을 사용할게다.
음식과 같이 사용되는 것들을 보라, 우리나라 음식인 한식을 차리려면 숟가락 젓가락, 그리고 밥공기와 국대접, 반찬그릇 물그릇의 모양들이 서양의 식탁에 쓰이는 그릇들과 모양새부터 다르다.
어느 시절인지 옆집살던 사람에게 저녁 초대를 받아 간 적이 있었다. 전형적인 미국 가정이었다.
그 식탁엔 가운데 큰 빵접시가 놓였고 샐러드 그릇이 오목한 큰접시로 놓여 있었다.
물컵과 큰 접시 그리고 나이프와 메인 음식이었던 스파게티 소스에 버무려진 마카로니들.
그리고 캔으로 놓인 탄산음료와 레모네이드, 맥주.
그게 전부였지만 식사는 부족한게 없어보였다.
빵은 갓 구워내서 맛있었고 샐러드는 신선했으며 크림소스에 버무려진 마카로니들은 고소했다.
더불어 마시는 음료는 무척 시원했다.
여기 미국에서 손님을 초대한 한식을 차리려면 보통 뷔페식으로 많이들 한다.
뷔페식이 아니면 초대음식을 나눠먹기가 정말 곤란하다.
잡채, 돼지갈비, 불고기, 다양한 전, 나물 무침, 밥, 김치, 돼지 불고기, 김밥, 도토리묵 무침, 닭조림, 떡, 과일,식혜, 보리차,볶음밥, 김치볶음, 해물전, 의외로 대접할 한식은 생각보다 종류가 많지 않지만 보통은 서너개면 사실 충분하다.
여기 살면서 나는 일품요리 애호가가 되었다. 한접시 음식이 편리하고 영양가도 있고 번거롭지 않아 좋다.
한식은 왜 그렇게 반찬 수가 많을까? 밥 한그릇에 사실 그 많은 찬은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가족개념의 밥상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식구수를 생각하면 반찬 수가 많은 게 합리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음식의 재료는 지천에 널려있고, 우리의 조상은 슬기로와서 그 재료들은 다 이용할 줄 알았으니까... 그래서 아마도 반찬문화가 발달하지 않았을까?
미국사람들의 식사는 살펴보면 생각보다 격식은 있지만, 다양하진 않다.
살다보니, 그냥 품질좋은 단 한그릇의 일품요리 하나면 아주 만족스러운 식사가 된다.
마트에 가면 여러가지 재료가 있고 그 재료를 하나의 접시에 올리면 그게 만족스러운 식사가 된다.
울나라 어른들은 이해를 못할지도 모르지만,
식빵에 땅콩잼만 발라먹는 점심을 먹는다해도 결국 살아갈 수는 있는 것이다.
가끔 봄이 오면 한국의 식탁이 생각난다.
만약 나 혼자 그렇다면, 그럼 맘이 그러라고 할때까지 기다렸다가 옷을 차려입고 가장 가까운 한국식당을 찾아나선다. 생각보다 말이다, 내가 만들어 먹는 것보다 훨씬 맘에 흡족할 때가 많다.
남이 만들어주는 음식은 물 한잔이라도 무척 고맙고 또 많이 맛있다는 주부의 마음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