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비포 유>는 한순간 불의의 사고로 불구가 된 남성과 그의 간병인이 된 한 여성의 로맨스와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는 존엄사에 대하여 의미 있는 메시지가 담긴 영미문학소설입니다.
존엄사 란, 회생 가능성이 없는 사망 임박단계의 환자가 연명 목적의 치료를 받지 않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지키여 생을 마감하는 행위를 듯하며 소극적 안락사라 불리고 있어요.
현재 스위스에서는 조력자살을 도와주는 호스피스가 까다로운 절차 아래 합법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조력자살은 자신의 힘으로 직접 약물을 복용 혹은 주사하는 것으로 의료진이 행위를 대신해주는 것과 구분됩니다. 안락사, 존엄사, 조력자살은 각각의 의미 차이는 있지만 인위적인 힘으로 생을 마감한다는 의의에서는 같은 범주에 있는 단어라고 생각됩니다.
간간이 들려오는 안락사와 존엄사의 토론에 '필요한 것인가 나는 어떨까'라고 막연한 생각만 했었어요. 쉽게 상상이 안 되는 부분이니까요. 하지만 <미 비포 유>의 남자주인공을 보면서 조금이나마 그 심정이느껴지더라고요.
너무나 건강하고 의욕적이고 최선을 다해 삶을 살다가 한순간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이 되었을 때의 그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겠지요. 남자주인공인 '윌'도 사고를 당한 직후 1년간은 정말 열심히 재활에도 임하고 의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숱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도 호전이 되지 않았고, 최소한의 인간성을 지키는 행동조차 남의 손을 빌려야 하는 그 좌절감과 수치심은 너무나 힘든 심적 정신적 고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 희망이 없는 삶이었습니다.
한 순간의 사고로 하루아침에 불구의 몸이 된 주인공은 현실을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았을 겁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생각에 세상 모든 것이 불합리해 보이고 미워지겠지요. 매일매일 수많은 약에 의존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며 그조차도 하루 걸러 잠을 이루지 못하는 신체적 통증 속에서 매일을 보내야 한다면 무엇을 보고 희망하며 살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여자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본인의 고통이 더 큰 고통으로 상대에게 전해지는데 그저 바라만 봐야 하는 그의 마음은 얼마나 참담했을까요.
인간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죽음보다 지속적인 고통과 박탈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동기는 '자율성'이라고 합니다. 통제를 벗어나 스스로 선택할 수 있고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것. 하지만 주인공인 '윌'은 최소한의 자율성도 잃어버린 채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희망이 없는 내일을 매일 살아야는 두려움. 그래서 모든 고통을 끊어내고자 '죽음'으로 편안해지고 싶다고 하는 것이겠지요. 살아있는 것 자체가 고통이니까요.
삶의 격과 질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지요. 그런 것처럼 죽음의 격과 질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삶과 죽음이 모두 포함된 것이 '인간'의 인생이니까요. 그저 목숨만 연장하고자 고통만 가중시키는 일은 모두에게 또 다른 고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환자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도 심각하게 고려해 보고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생명은 그로써 가치가 있고 숭고하기 때문에 여러 까다로운 절차와 반복되고 확고한 환자의 의사가 수반이 되어야겠지요.
어떠한 죽음을 맞을 것인가는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 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여 나의 목숨에 대한 선택은 다른 누구도 아닌 본인 스스로에게 있어야 합니다.
너무 아름다운 로맨스 소설이지만 그 안에는 묵직한 메시지가 있어 독자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소설이었습니다. 사실 소설을 읽는 내내 마음이 너무 괴로웠지만 우리가 살면서 한 번쯤은 꼭 고민해봐야 할 문제인 거 같아서 소설 속 주인공의 삶을 통해 간접적이지만 직접적으로 느껴보는 일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