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즈 Mar 19. 2023

종의 생존권과 인간의 행복이란

천 개의 파랑


《천 개의 파랑》은 휴머노이드로봇에 관한 SF소설이다.


이미 인간만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이 행성에서는...


  래에는 로봇이 많은 부분에서 인간의 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배경을 설정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 중심적인 행성이라는 관점으로 동물의 생존권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다. 여기서 나는 '과연 인간의 존엄성과 동물의 존엄성이 동등할 수 있을까? 또한 생명을 지속시키기 위해 우리는 기술을 발전시키고 한계를 끌어올리고 또 끊임없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확대해 가고 있다. 그렇다면 미래와 환경을 위해, 앞으로 인류가 더욱 번영하기 위해 우리는 아니 나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생명의 존엄성의 큰 테두리 안에서 생명을 가치로 우열을 따질 순 없다 할지라도 생태계의 피라미드에서 종을 구별한다면 그래도 '인간'이 최상위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만약 모든 종들이 동등한 권리와 자유를 가지고, 약육강식의 자연의 섭리만을 따른다고 가정하면 오히려 인간의 생존권은 어떻게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살아갈 힘 생존권을 지킬 힘은 그렇다면 무엇일까?

 

 인간이 타 생명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집단학습으로 세대를 넘어 정보를 지속적으로 축적하며 문명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도구를 사용하고 환경과 자원을 활용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지성이 있고 생각을 하고 욕망과 욕구가 있다는 점, 그래서 끊임없이 살아남기 위해 진화하고 인간을 보호할 수 있는 기술을 발전시켜 나가는 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로봇의 우수성과 비약적인 발전으로 얼마든지 인류의 위치까지도 대체될 수 있다는 생각은 현시대를 살고 미래를 보고 있는 인간의 가장 큰 두려움이다. 그래서 인간에겐 인간이라는 종이 생태계에 최상위에 존재한다는 암묵적인 약속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물론 인간이 종의 서열 최상위라고 해서 다른 종들을 함부로 파괴하고 지배하고 약탈할 권리를 가진다는 것은 아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분이고 자연의 생태계는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순환되기 때문이다. 현재는 혁신의 속도가 가속화되면서 생활수준과 기대수명이 늘어나고 풍요로운 삶을 영위해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주의 온도와 지구의 대기가 조금만 변해도 치명적인 위협이 되고 인간은 환경의 변화에 매우 민감하여 생물권이 파괴되기 매우 쉽다. 그럼에도 현재 원자폭탄과 무기살상 전쟁 등 인류가 생물권 전체를 장악할 수 있다는 자만으로 기술의 발전과 진보를 부정적으로 이용해 에너지원을 만들고 관리하고 권리를 주장하여 심지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고 오만하는 듯하다. 우리 인간은 다시금 태초의 우주의 탄생과 기원과 더불어 인간의 진화에 대하여 그리고 인류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서 대우주와 자연 앞에서 겸손하게 인간의 종을 잘 보존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주는 자신이 품을 수 있는 것만 탄생시켰다. 이 땅에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가 각자 살아갈 힘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을, '정상의' 사람들은 모르는 듯했다.


<천 개의 파랑> 소설은 장애인에 대한 사회부조리를 문제로 엄중히  제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만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행성'에선 왜 장애인의우주는 자신이 품을 수 있는 것만 탄생시켰다. 이 땅에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가 각자 살아갈 힘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을, '정상의' 사람들은 모르는 듯했다. 인권은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는가. '정상'이라고 '인간'이라고 하는 범주는 어디까지라고 누가 지정할 수 있을까.

  인간 동물 로봇의 각 개체의 생존권과 자유를 고려하고 문제를 제기하기에 앞서 나는 소설 속에서 제시되는 문제의 일부는 기득권을 가진 '인간'이 그 권리를 올바르지 못한 가치관과 목적의식으로 윤리와 도덕없이 행하고 인간의 욕구를 돈벌이 수단으로 자극했던 몇몇 특정 개체의 결함이라고 논하고 싶다.

 수많은 종들 사이에서 인간으로서 그 위치와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윤리의식 도덕성을 지녀야 한다. 인문학의 가르침에서도 "인간이 가진 모든 능력은 도덕에서 시작하고 도덕으로 완성된다"라고 했다. 공생과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그 방법이 보존과 보호의 차원이라면 우리 인간들이 누리고 있는 상대적 권리도 보호받으며 다른 모든 종들도 함께 살기 좋은 행성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짚고 있는 결코 가벼이 여기면 안 되는 모순된 인간의 행동들과 사라져 가고 학대받고 있는 동물들을 위해 인간이 각성해야 하는 점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반성해 본다.



"연재는 실수가 기회와 같은 말이래요"


 되돌아보면 나 또한 참 많은 실수들을 했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쉽게 잊히지 않고 나를 괴롭혔다.  수치스러웠고 고통스러웠고 낭비였고 지우고 싶었다. 하나 생각해 보면 그러한 실수도 어쩌면 과정이었고 운명이지 않았을까. 단지 '팡'하고 터진 하나의 독립적인 사건이 아닌 나의 선택과 결정, 방법, 행동, 생각, 가치관 등 무수한 부분들이 집합하여 만들어낸 결과. 리고 그 부분들을 형성할 수 있었던 나의 성장배경과 다양한 선택과 경험들이 스팩트럼 안에 나열되어 있는 파동들처럼 모두 하나의 인생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 실수만 없었더라면'으로 인생에서 한 단면만 깨끗이 도려낼 순 없다. 그렇게 도려낸 인생이 과연 내 인생이라고 볼 수 있을까. 도려낸 단면도 남아있는 표면도 어느 하나 온전한 인생이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일의 '결과'가 실수라는 이름으로 왜, 어떻게 일어났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실수를 성장의 변곡점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 속 주인공 연재의 말처럼 나에게도 실수는 기회와 같은 말이다.
나를 점검할 수 있는 기회
보다 나은 나로 수정하고 변화할 수 있는 기회
이러한 기회들의 합이 또 다른 과정을 이루고 그에 걸맞은 결과를 낳지 않을까.


"행복만이 유일하게 과거를 이길 수 있어요."


 내가 행복하다면 과거에 일어났던 모든 일들은 성장의 과정 성숙의 계기 인생의 경험이 된다.
어떤 아픔이 있었을지라도 과거 모든 순간이 나였고,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다. 아직 미래는 잘 모르겠고 지금 현재가 행복하자 그동안의 나의 고통과 노력이 그 가치와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그리운 시절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거야."


 과거의 행복한 그리운 시절로 돌아가는 방법도 재를 행복하게 사는 거다.
그리고 지금은 곧 미래에 그리워하게 될 현재가 될 것이다. 행복하자 지금 이 순간조차도.


바퀴를 열심히 굴리는 아이들이 멈추지 않고 달렸으면 좋겠다고 소방관이 말했다. 삶이 이따금씩 의사도 묻지 않고 제멋대로 방향을 틀어버린다 할지라도, 그래서 벽에 부딪혀 심한 상처가 난다고 하더라도 다시 일어나 방향을 잡으면 그만인 일이라고. 우리에게 희망이 1%라도 있는 한 그것은 충분히 판을 뒤집을 수 있는 에너지가 될 것이라고.



 작품을 읽는 내내 여러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어 작가와 지속적으로 소통을 하는 듯한 느낌으로 책을 읽었다. 그래서 나에겐 《천 개의 파랑》은 추천하고 기록하고 싶은 좋은 작품이다. 모든 캐릭터들의 서사가 탄탄하고 제목의 의미전달이 명확했으며 결론 또한 힘을 잃거나 주제의식이 흐려지지 않았다. 냉정하게 사회를 바라보고 비판적으로 문제를 직시하게 하면서도 나를 대중교통 안에서 훌쩍대며 집까지 오게 했다. 공감 비판 사회부조리 감동 연민 연대 미래까지 생각하고 경험할 수 있었던 훌륭한 작품을 만나게 되어 감사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