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아니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누구나 그렇듯 나도 내가 우선이었다. 내 공부, 내 직업, 내가 하고 싶은 일..
그러나 아이를 낳고 공부나 일을 예전처럼 마음껏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불가능하다. 내가 전적으로 돌보고 책임져야 할 누군가가 생기는 일이므로
아이는 나에게 상상도 못할 기쁨과 행복을 선사했지만 중간에 그만 둔 박사 공부와 “음악사”라는 전공 때문에 늘 비정규직 강사로 일할 수 밖에 없는 불안한 신분은 늘 힘들었다.
그리고 아이를 봐주러 근처에 이사오신 친정 부모님은 연세가 벌써 70, 80대 후반이었다. 한 해가 다르게 부모님은 몸이 아프시고 인지 능력이 떨어졌다.
나의 형제들은 당시 모두 지방에 살았다. 부모님 돌보기를 같이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두 어린 딸과 고령의 부모님, 그리고 불안한 직장 등 점점 어깨에 짊어지는 짐이 많아졌다.
차라리 그 때 “나 힘들어 죽겠어” 혹은 형제들에게 화를 냈더라면 덜 힘들었을까? 나는 그럴 성격도 못 되고, 지방에 있는 형제들도 각자 살기 바쁜 걸 아니 뭐라 말 하기도 그랬다.
그런 것들이 쌓이면서 가끔 몸과 마음이 지칠 때가 있었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니기 전에는 손이 많이 갔다. 잘 감기에 안 걸리던 내가 종종 감기몸살을 앓았다. 아이들 감기를 돌보다가 옮아서 아픈 적도 많았다. 사실 많은 엄마들이 그렇다.
결혼하여 자녀가 있는 내 친구들은 90% 이상이 풀타임 워킹맘이다. 난 파트타임 강사인데도 왜 이렇게 힘든 걸까. 몸도 마음도 약해지는 내가 마치 패배자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진로에 대한 고민에서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아이들은 언제 클까?
나의 30대는 그렇게 지나갔다.
얼마전 “느리게 더 느리게”라는 책을 읽었다. 하버드 대학교의 인기 강의라는 “행복학” 수업을 정리한 책이다. 평범한 속에 진리가 있다고 사실 내용은 뻔하고 살짝 올드했지만, 가독성도 좋고 왠지 따뜻한 기분이 드는 책이었다.
한 챕터에
“자신의 약점을 받아들여라. 누구에게나 약점은 있다” 라고 써 있었다.
이 문구가 마음에 와 닿았다.
그래, 내가 설사 몸이 좀 약해도
가끔 감기에 걸려도
그것은 그저 나에게 있는 약점이지.
약점이 없으면 좋겠지만
나의 약점을 그저 받아들이고
잘 달래가며 같이 살아갈 수도 있다.
40대 중반이 된 지금에서야 그것을 깨닫고 마음이 좀더 편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