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키우니 엄마 마음을 알겠네

by 스텔라언니

가끔 엄마의 나이를 생각해볼 때가 있다. 현재의 나이가 아니라 엄마의 마흔살, 쉰살, 예순살, 일흔살을 떠올려본다.


나를 낳았을 때 엄마 나이 마흔 하나. 사춘기 아이들 셋을 키우고 마흔 하나에 낳은 막내를 키운 엄마. 외갓집 식구들은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아빠는 포항에서 일을 하셨으니 혼자 서울에서 아이들 넷을 키우신 셈인데 엄마는 외롭지 않았을까? 그래도 내 기억 속 엄마는 생전 화도 잘 안 내고 현실을 씩씩하게 헤쳐나가던 유쾌한 아줌마였다.


내가 신혼 초 남편과 프랑스에서 1년 지내다 돌아왔을 때 진로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오르간 유학을 결심하고 직장을 다 그만 두고 프랑스에 가서 음악원에 입학했다. 그러나 내 나이 이미 30살. 족히 4-5년은 유학 생활을 해야 하는데, 남편은 1년 후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나 혼자 남아 오르간 공부를 하기로 했지만 사실 박사 학위에 준하는 최고 연주자 과정을 마쳐도 한국에 일자리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고민 끝에 나는 입학을 취소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참으로 좋아했던 오르간 연주를 포기하고, 직장도 다시 알아봐야 하는 상황


나는 그 해 겨울이 참 힘들었다. 우울해하는 나에게 엄마는 별다른 따뜻한 위로는 안 하셨다. 다만 어느날 집에 와보니 엄마가 창고로 쓰던 골방을 깨끗하게 치워놓으셨다.


“엄마가 오늘 이 방 다 치웠다. 깨끗하고 예쁘지? 이것 봐. 이 방도 깨끗이 치우니 새 방이 되었자나. 너도 다시 새롭게 언제든 시작할 수 있어”


나는 별로 공감이 가지 않아 금새 다시 시무룩해졌다.


사춘기가 되어 시무룩해 있는 큰 딸을 어떻게든 응원해주고 싶어 매일 한 마디씩 칭찬을 하며 나는 갑자기 골방을 치운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밝은 얼굴로 방을 다 치운 것을 보여주던 엄마. 아마도 나를 그렇게라도 위로하고 응원해주고 싶었던 것 아닐까.


자식을 키우면 엄마 마음을 조금씩 알게 된다고 하더니 정말 그런 것 같다. 엄마는 어떤 시간들을 견디고 살아낸 걸까. 여전히 재활병원에서도 엄마 스타일대로 주변사람들에게 늘 고맙다고 하면서 유쾌하고 지내고 계셔서 참 감사하다. 고마워 엄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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