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시아버님

by 스텔라언니


나에게 아빠는 어떤 존재일까?

이제 호호백발 할아버지가 되신 나의 아빠는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하신, 다소 무뚝뚝하며 욱하기도 잘하고 삐지기도 잘 하는 대한민국의 아버지이다.


아빠는 9형제 중 둘째였다. 형제 중 가장 먼저 서울에 있는 중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시절 짝이 일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려는 것을 보고 겁도 없이 일본으로 밀항을 했다. 이후 9년간 일본에 살면서 대학을 졸업했다. 아빠는 타고난 효자였다. 매일 잘 있다고 편지를 보내도 한국에 있는 부모님이 믿지 않을 것 같았다. 20살의 아빠는 일본 동네 사진관에 가서 팬티만 입고 사진을 찍었다. 이유를 묻는 사진사에게 “내가 몸 건강히 있다는 것을 한국에 있는 부모님에게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사는 돈을 받지 않았다.


아빠는 한국에 돌아와서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늘 “서울대 출신”들한테 따돌림을 당해서 서러웠다고 하셨다. 아빠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편이었다. 그래도 친한 직장 동료들과 주말이면 늘 등산을 다니셨다. 그리고 노인이 된 후부터는 1주일에 한번 시내에서 만나 점심모임을 하셨다.


시골에서 농사 짓는 큰형 대신 늘 형제들의 뒷바라지까지 하느라 아빠는 부담이 많았다. 아빠는 형이 한 분 계셨다. 아빠의 형은 장남으로서 고향집을 지키고 부모님을 모셨다. 그러나 형제들이 어려울 때에도 자신의 재산을 나누어 주지 않았다. 형제분들은 야박한 큰 형보다 둘째형인 아빠에게 도움을 많이 청했다. 아빠의 형제들은 아빠의 수고를 잊지 않고 요즘도 명절이면 우리 집에 꼭 모인다.


아빠는 요즘 아빠들처럼 아이들과 잘 놀아주고 다정한 스타일의 “프레디”는 아니었다. 더구나 어린 시절 아빠는 지방에서 회사를 다니셨다. 그래서 더 낯설게 느껴졌던 것 같다. 나는 지금도 솔직히 엄마보다 아빠가 훨씬 어렵고 멀게 느껴진다. 아빠에 대한 따뜻한 기억은 중 고등학교 시절 밤늦게까지 식탁에 앉아 공부하고 있는 딸에게 막춤을 추며 응원해 주시던 모습, 매일 새벽마다 새하얀 교복 상의를 깨끗하게 다려서 주시던 모습이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후 친정 부모님이 육아를 힘껏 도와주셨다. 아이 둘을 키우느라 힘들어하는 나에게 아빠는 가끔 툭툭 나에게 위로의 말씀을 던져주시곤 했다. 두 꼬마가 하도 떼를 쓰고 울어서 달래느라 넋이 나간 딸에게 “자식 키우는 게 다 그런 거여”라며 한마디 툭 해주시는데 그 따뜻한 말씀이 참 좋았다.


결혼을 하고 나서 “아버지”가 한 분 더 생겼다.


나의 남편의 아버지, 시아버님.



중국에 놀러오신 시부모님

아버님은 결혼 전부터 나를 아껴주셨다. 아버님과 같이 내가 교직의 길을 걷는 것을 흐뭇하게 여기셨다. 종종 나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으셨다. 심지어 내가 일하는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내 직속 상사 선생님이 누구인지 꼼꼼히 챙겨보셨다.


시집가고 첫 해 추석에는 거창에 있는 시할머님댁에 갔다. 시댁은 거창 동례리에서 알아주는 양반가문이지만 경제적으로 풍족하진 않았다. 집도 초라한 슬레이트 지붕의 시골집이었다. 아버님은 저녁이 되자 마당 평상에 앉아 나에게 두런두런 시골 본가의 추억에 대해 들려주셨다. 고등학교 다닐 때 처음 전기가 들어왔다고, 매일 형제들과 한방에서 같이 잤다고.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청량했던 밤 공기와 따뜻한 음성이 기억에 남는다.


아버님은 5형제의 맏이였다. 늘 공부 잘 하고 믿음직한 맏아들이었다. 아버님 역시 처음으로 집안 사람들 중 대학교육을 받았다. 아버님이 부산에 직장을 잡자 동생들이 줄줄이 부산으로 왔다. 남편은 어린 시절 늘 삼촌이나 고모, 사촌 형제들과 함께 살았다. 그들은 도시에 사는 큰 형님댁에 머물며 공부하고 결혼했다.


아버님 역시 우리 아빠처럼 무뚝뚝하시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욱 하고 화를 내는 것도 비슷하다. 그러나 가족을 사랑하고 아끼며 아내에게 늘 고마워하고 평생을 성실하게 산 좋은 남편이자 아빠이다. 두 분 덕분에 집안을 이만큼 일으킬 수 있었다. 우리 세대는 걱정없이 원하는 공부를 하며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었다. 두 분의 노고에 진심어린 감사와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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