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두 손녀가 태어난 후 잔소리 대마왕이 되었다. 딸인 나는 안중에 없었다. 그저 두 손녀가 최우선이었다. 그러니 자주 나와 부딪힐 수 밖에 없었다.
엄마 아빠는 옛날 사람이라 베이비 시터에게 아기를 맡기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두분이 아기를 볼테니 너는 원하는 일을 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7-80대인 노부모가 아이를 돌보는 것은 무리였다. 비록 가사 도우미를 부르긴 했지만 두분은 아이만큼은 절대 남의 손에 맡기지 않으셨다.
엄마는 내가 일을 안 하고 전업 주부로 지낼까봐 전전긍긍하셨다. 엄마가 생각하기에 최고의 직장은 “서울 예고”였다. 딸이 거기에서 강사 생활 하는 것을 매우 자랑스러워 하셨다. 그러나 학교는 선생님들간의 싸움으로 늘 불안하고 정신이 없었다. 나는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것보다 일반인을 상대로 대중 강연을 하고 싶었다.
엄마는 내가 어서 둘째를 낳기를 강요했다. 엄마가 한살이라도 젊을 때 아이를 봐줘야 한다는 논리였다. 나는 당시 박사 과정 중이었다. 아직 큰 애가 돌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둘째를 낳으라고 압박을 주다니 엄마는 정말 너무 했다. 이후로 엄마와 사이가 점점 멀어졌다.
엄마와 화해를 한 것은 재작년에 엄마가 우리집에서 두달 정도 계셨을 때였다. 아빠가 입원하시고 엄마는 우리집에서 지내셨는데 나와 집앞 카페를 순례하고 백화점에서 점심도 사먹고 호수도 산책했다. 딸네 집에 얹혀계셔서 그런지 엄마는 잔소리도 안 하고 순하게 지내셨다. 나는 엄마와 데이트를 하며 엄마와 화해했다. 늦게나마 엄마와 화해를 해서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