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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언니 Dec 01. 2023

오페라 <나부코> 후기

 남편은 내가 오페라 <나부코>를 보러 간다고 하니 일본 사람이 주인공이냐고 물었다. 일본의 흔한 여자 이름 미치코, 하쓰코처럼 ‘나부코’도 일본 이름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나부코는 일본인이 아니다. 그는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바빌론의 왕 ‘네부카드네자르‘이다. 이름부르기도 어려운 네부카드네자르 왕의 이탈리아 식 이름이 바로 ‘나부코’이다.


 바빌론의 왕 나부코는 막강한 군사력과 힘으로 히브리인들을 침략하여 바빌론으로 끌고 간다. 이것이 유명한 ‘바빌론 유수’이다. 히브리인들이 바빌론에 끌려가 고국을 그리며 부르는 노래가 ‘히브리 노예의 합창‘이다. 방송과 광고, 영화에서 많이 사용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곡이다.


​https://youtu.be/OqWWpXfO7ts?si=lvn7ceha0X4Pbxj​N


  당시 이탈리아는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는 여러 지역으로 쪼개진 도시 국가였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외세의 억압에서 벗어나 통일 이탈리아 를 건설하는 것을 꿈꿨다.


 신예 작곡가 베르디의 작품 <나부코>의 주제는 당시 상황과 잘 맞아 떨어졌다. 외세의 침략에 속수무책 당하고 있는 이탈리아인들은 바빌론에 끌려간 히브리인들을 자신의 처지에 비추어보았다. 그리하여 ‘히브리 노예의 합창’은 이탈리아의 제 2의 국가로 애창되었으며, 베르디는 이 작품의 대성공으로 유명 작곡가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11/30~ 12/3까지 국립극장에서 공연하는 국립 오페라단의 <나부코>는 그래서 더욱 기대가 되는 작품이었다. 나 역시 ‘히브리 노예의 합창’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으나 나부코 전편을 감상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황제라 불리는 베르디(1831~1901) 최초의 히트작 <나부코>를 보러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국립극장을 향했다.


<나부코>의 줄거리는 매우 이분법적이며 그래서 간단하다. 바알을 믿는 이교도 바빌론의 왕 나부코는 히브리인들을 억압하지만 고난을 겪고 유대인의 신 야훼를 찬양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그 안에 나부코의 딸 페네나와 예루살렘 왕의 조카 이스마엘레의 사랑 이야기, 이스마엘레를 흠모한 페네나의 언니 아비가일레의 질투와 음모가 섞여 있긴 하지만 이교도의 유대교 (혹은 기독교)로의 개종,회개가 큰 줄거리이다.


이번 국립 오페라단의 공연은 성악가들의 기량도 좋았지만 특히 무대가 매우 멋있었다. 하얀색(유대교를 믿는 히브리인)과 빨간 색 (이교도를 믿는 바빌론 사람들) 의상의 대비가 인상적이었다.

또한 성악가 뿐만 아니라 무용단 <아트 컴퍼니 하눌>을 등장시켜 무대를 역동적으로 만든 것도 효과적이었다. 20여명의 어린이를 등장시켜 억압받는 히브리인들의 모습을 표현한 것도 멋있었다.


이 오페라의 가장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히브리 노예의 합창’에서 내 눈엔 일본 위안부 소녀상으로 보이는 오브제를 설치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사실 외세의 침략으로 고통스러워했던 것은 히브리인, 이탈리아인, 조선인 무엇이 다르랴

일본 위안부 소녀상으로 보이는 오브제가 설치된 무대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었다. 홍석원 지휘자는 ‘히브리 노예의 합창’의 기본적인 정서가 한(恨)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래서 무대 중앙에 한글로 ‘한’이라는 글씨가 크게 등장했는데 너무 직접적인 표현이 좀 유치하게 여겨졌다. 위안부 소녀상만으로도 관객들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는데 말이다.

‘한’이 무대 중앙에 등장하는 설정

관악기의 틀린 음들도 귀에 거슬렸다. 과거에는 금관이 틀린 음을 내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현재 한국 오케스트라는 크게 발전하여 금관의 수준이 매우 높아졌다. 그런데 연습 부족이었을까. 금관이 가끔 음을 틀리고, 목관도 틀린 음을 낼 때가 있어 아쉬웠다. 좀더 치밀한 연습이 필요해 보인다.


성악가들의 기량은 고루 우수했는데 특히 나부코의 큰 딸 아비가일레를 맡은 임세경 소프라노의 연기력, 성량, 음악적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아비가일레는 좋아하는 남자가 여동생을 사랑하여 질투에 눈이 멀고, 자신이 아닌 여동생에게 왕위를 물려주려는 아버지에게 복수하고, 어머니가 노예였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 가장 복합적인 성격의 인물이다.


 마지막에 그녀는 독약을 마시고 스스로 삶을 마감하며 아버지와 여동생에게 용서를 빈다. 그리고 유대교의 신에게 자비를 청하며 죽는다. 아비가일레가 죽어가며 용서를 청하는 노래가 참 아름다웠다

https://youtu.be/L5_K31Sp8Qs?si=ZTudxKPgPvZPPkyP

현대 복장을 한 아비가일레

2024년도에도 국립 오페라단은 다양한 오페라를 많이 올린다. 뮤지컬이 재미있었다면 오페라도 충분히 즐겁게 볼 수 있다. 다만 줄거리는 미리 파악하고 갈 것! 그래야 훨씬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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