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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언니 Jan 07. 2024

잘 생긴 아빠의 손재주

 아빠는 못 고치는 게 없었다. 집안의 갖가지 공사는 늘 아빠 몫이었다. 해마다 목재 마루에 니스칠을 하는 것도, 몇년에 한번씩 울타리에 페인트칠을 하는 것도 아빠가 하는 일이었다. 단독주택이라 마당이 있었는데 잔디를 깎고 물을 주는 일도 아빠 몫이었다. 일요일이면 작은 의자에 앉아 커다란 가위로 잔디를 깎으셨다. 자잘한 전기 공사도 직접 하셨다.  니스칠이나 페인트칠은 사람을 사서 할 수도 있으련만 검소하고 부지런한 아빠는 늘 자기가 스스로 고치고 칠했다. 어린 시절 아빠의 모습 중 기억나는 모습은 늘 집안 구석 구석을 돌보며 무언가를 고치는 모습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아빠처럼 공대를 나온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집을 고칠 수 있으니까. 예전에 문과생 남학생과 잠깐 데이트를 한 적이 있는데 나는 속으로 ‘만약 이 친구와 결혼하면 우리 집 전기는 누가 고치나’ 하고 걱정했다.      


아빠는 집안 일을 잘 도와주는 편이었다. 새벽이 되면 엄마대신 전기밥솥의 버튼을 눌러 밥을 지었다. 마당을 쓸고 쓰레기를 버리는 일, 약수를 떠오는 일도 늘 하셨다. 가족끼리 산에 가면 라면을 끓여주거나 닭을 삶아 주셨다. 내가 어릴 때는 산에서 취사를 할 수 있었다. 나는 아빠가 가끔 해주는 요리가 참 맛있었다. 아빠는 자취를 오래 해서 요리 하는 것을 그리 낯설어 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할 때에는 싸고 신선한 내장을 사다가 요리를 해먹었다고 했다. 양배추로 김치를 담가먹었다고도 하셨다.      


아빠는 인물이 좋았다. 여고에서 수학 선생님을 했었는데 별명이 로버트 테일러라는 미국 영화배우의 이름을 따서 “로버트 리”였다. 로버트 테일러의 외모에 맥가이버의 손재주라니. 음, 멋진 조합이다. 아빠는 옷도 센스있게 잘 입고 예술적인 감성도 있었다. 나는 아빠의 감수성을 물려받았다. 성격은 좀 차분하고 내성적인 편이다. 낯을 가리고 마음도 여리다. 마음에 안 맞으면 가족들 앞에서는 팩하고 잘 토라지거나 성질을 부리시곤 했다. 엄마는 아빠의 그런 성격을 잘 받아주었다. 아빠는 나와 잘 놀아주는 친구같은 분은 아니었다. 그러나 해외 출장을 다녀올 때면 신기한 문구류나 예쁜 스웨터를 사다주곤 하셨다. 그리고 고등학교 3년 내내 교복 블라우스를 아침마다 깨끗이 다려주셨다. 늦게까지 공부하고 있으면 내 앞에서 막춤을 추면서 응원을 해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막내딸을 예뻐해주셨구나 싶지만 당시에는 그런 줄도 몰랐다.      


 두 아이를 키우며 힘들고 지칠 때 아빠의 따뜻한 한 마디가 큰 힘이 되었다. 아이 둘이 떼를 부려 내 정신을 쏙 빼놓으면 아빠는 “자식 키우는 게 어려운 일이다”하며 내 등을 두드려주셨다. 그 때 나는 깊은 위로를 받았다. 내 평생 아빠는 한 번도 정답게 말을 걸어주거나, 애정어린 눈빛을 보낸 적이 없다. 나한테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 모두에게 차갑고 무뚝뚝한 사람이었다. 우리 집에 자주 오던 사촌들도 아빠를 어려워했다. 그러나 아빠는 사실 속이 여리고 내성적이며, 칭찬과 사랑에 목마른 사람이었다. 그래서 칭찬을 해드리면 아이처럼 좋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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