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세상을 떠난 아빠를 떠올리면 몇가지 떠오르는 물건이 있다.
롤케이크와 투게더 아이스크림.
아빠가 어릴 때 종종 사다주시던 간식거리이다. 특히 투게더 아이스크림은 매주 일요일마다 사다 주셨다.
아빠는 친구분들과 매주 일요일 등산을 가셨는데 내려오는 길에 집에서 공부하는 막내딸을 위해 아이스크림을 사오셨다. 메뉴가 늘 같아서 좀 지겨웠지만 그래도 즐겨 먹었다. 아이스크림을 넉넉히 퍼서 우유를 넣고 쉐이크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이렇게 먹으면 정말 살찐다 ㅜ)
롤케이크를 사오시다가 이후에는 파운드 케이크를 사오셨다. 파운드 케이크는 일종의 신문물로 더 고급스러웠다. 혹은 스폰지 케이크도 사오셨는데 안에 든 흰 크림이나 모카 크림이 너무 달콤했던 기억이 난다.
지방으로 출장을 다녀오실 때는 천안 호두과자를 꼭 사오셨다. 천안역을 들렸다 오는지 모르겠지만 천안 오리지널 호두과자였다. 심지어 과자 안에 진짜 호두가 박혀 있었다. 이것도 나의 큰 즐거움이었다.
해외출장을 다녀오실 때는 선물이 보다 다양해졌다. 호주는 양모가 유명하다며, 예쁜 스웨터와 조끼를 여러 벌 사오셨다. 일본에서는 신기한 문구류를 사다 주셨다. 유럽에서는 내가 요구한 <호두까기 인형>을 사다 주셨다. 바쁜 일정 중에 아빠는 어떻게 호두까기 병정 인형을 찾았을까.
아빠의 개인 물건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손목 시계와 수저이다. 손목 시계는 은색체인으로 되어 있었는데 거의 20년 가까이 차셨다. 나중에 청와대에 초대를 받아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싸인이 있는 시계를 선물 받았는데 그 때부터는 그 시계를 차셨다. 아무리 대통령 싸인이 있어도 예전 시계에 비하면 전혀 고급스럽지 않았다. 그래도 아빠는 예전 시계가 톱니를 돌려 밥을 줘도 자꾸 느려진다며 미련없이 새 시계를 차셨다. (톱니를 돌려 시계밥을 줬다니..무슨 조선 시대 사람 같네 ㅋㅋㅋ)
엄마는 가족 별로 다 다른 수저를 장만하셨다. 모양이 조금씩 달랐다. 지금 생각하면 위생상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아빠의 은수저는 아무도 사용하지 못했다. 그건 일종의 아빠의 권위의 상징이었다. 단정하면서도 위엄있게 느껴지던 아빠의 수저. 신분 사회에서는 신분에 따라 의복과 머리 모양을 다르게 하도록 정해져 있었다고 하던데, 사용하는 물건의 등급을 정해 놓으면 위계 질서가 잡히는 거 같긴 하다.
그 외에도 아빠를 떠올리면 아주 커다란 전지 가위가 생각난다. 우리집엔 잔디밭이 있었고, 자주 잔디를 깎지 않으면 금방 수북히 자랐다. 원래 잔디 깎는 기계가 있었지만 잔디의 잔해들이 톱니에 껴서 금방 고장이 났다. 그래서 아빠는 목욕탕 의자에 앉아 큰 전지 가위로 손수 잔디를 깎았다. 아빠는 주말마다 잔디를 깎았다. 티비를 보고 누워 있거나 낮잠을 자는 일은 드물었다. 물론 티비도 즐겨 보지만 주말에도 낮에는 뭔가 집안일을 하셨다. 단독주택인데다 식구도 많아 늘 일거리가 있었다. 전지 가위는 아빠의 성실성을 대표하는 물건이었다.
아빠가 만든 싸리빗자루, 눈 치우는 밀대(?)도 창고에 늘 있었고 실제로 사용했다. 밀대는 넓은 판자에 긴 막대기를 붙여 만들었는데, 요즘처럼 폭설이 내릴 때 매우 유용했다. 골목과 현관 앞 계단을 쓸기 좋았다. 오빠와 내가 눈이 펑펑 내리던 날 땀을 흘리며 눈을 쓸던 기억이 난다.
그냥 며칠전 롤케이크를 친구에게 선물하며 아빠 생각이 났다. 이제는 좀 촌스러운 롤케이크를 나는 왜 아직도 가끔 먹고 싶을까 궁금했다. 아마도 무뚝뚝한 아빠가 간식을 사오며 나에게 주던 말없는 애정이 느껴져서 이지 않을까? 아빠가 오늘도 하늘에서 우리 가족들을 위해 기도해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