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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로 연주자> 푸르니에, 피아티고르스키, 슈타커

by 스텔라언니

오늘은 첼로 연주자들에 대해 알아보려 합니다. 첼로는 저음을 연주합니다. 악보도 낮은 음자리표나 가온음 자리표를 사용하지요. 인간의 목소리와 가장 비슷하다는 첼로는 예전에는 반주 악기로만 인식되었으나 하이든, 모차르트 시대부터 점차 독주 악기로 사랑받기 시작했습니다.


첫번째 소개할 연주자는 피에르 푸르니에(1906~1986)입니다. 그는 프랑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군인이었고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였던 상류층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부모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그러나 9세에 소아마비를 앓는 바람에 오른발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어요. 오른발로 피아노 페달을 잘 누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피아노를 그만 두고 의자에 앉아서 연주할 수 있는 첼로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12세에는 파리 음악원에 입학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20대에 이미 프랑스를 대표하는 첼리스트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는 카잘스의 후계자로 불리웠습니다. 카잘스의 별명이 ‘첼로의 황제’였는데, 계승자인 푸르니에는 ’첼로의 황태자‘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카잘스가 스페인 독재정권에 반대하여 프랑스 시골마을에 숨어 지낼 때, 푸르니에는 카잘스를 대신하여 코르토, 티보와 함께 <카잘스 트리오>에서 첼로를 연주했습니다.

또한 슈나벨과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을 레코딩했습니다. 카잘스의 음반은 모노로 남아 있어 음질이 좋지 않지만, 푸르니에는 데카,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보다 발달된 기술로 녹음하여 음질도 좋습니다.

슈나벨이 반주한 <베토벤 첼로 소나타 4번> 2악장을 들어볼게요. 편안하고 포근한 곡입니다.

https://youtu.be/V7iBOO98TX8?si=siuU9m_ZnoR1fjJr

그레고르 피아티고르스키(1903~1976)는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에는 러시아 제국이었지요. 그는 겨우 15살에 모스크바 오페라 극장 수석 첼리스트가 됩니다.

1921년 러시아 혁명을 피해 고향을 떠난 그는 푸르트벵글러의 제안으로 베를린 필에 입단합니다. 그는 이후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고 커티스 음악원에서 후학을 양성했습니다.

야샤 하이페츠, 아르투르 루빈스타인과 함께 <백만불 트리오>를 결성해서 실내악 연주도 많이 했습니다. 그 중 <멘델스존 피아노 트리오>를 들어볼게요

https://youtu.be/vL2ftX-xC4w?si=zZmZqnAo_59Du83Z

프로코피에프, 스트라빈스키, 힌데미트 등 20세기 전반 대표적인 작곡가들이 피아티고르스키에게 작품을 헌정했습니다. 수많은 작곡가들이 그의 연주를 사랑했습니다.

그럼 생상 <백조>를 들어볼게요. 여러분들도 많이 아시는 곡입니다.

https://youtu.be/TES6zKU-YBE?si=wB4J99hdM2A0JuXw


야노스 슈타커(1924~2013)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부다페스트 심포니 수석 첼리스트로 활약했습니다. 이후 프랑스에 가서 공부를 계속했지요.

1948년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 슈타커는 평생 미국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시카고 심포니 첼로 수석으로 활동하다가 인디애나 대학교 교수로 일하게 됩니다.

그는 엄격한 태도로 레슨을 하기로 유명했습니다. 연습을 안 하는 학생에겐 매섭게 질책했습니다. 학생들 사이에서 “죽어서 하늘나라에 갔다. 하느님이 누구 제자냐고 물으셔서 슈타커 제자였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하느님이 너는 이미 지옥에서 지내다 왔으니 천당에 가라고 하셨다“는 농담이 유행할 정도로 슈타커는 무서운 호랑이 선생님이었습니다.

슈타커가 연주한 포레의 <꿈을 꾼 후에>를 들어보겠습니다. 아주 달콤하고 낭만적인 곡입니다.

https://youtu.be/9cvGd00fvBw?si=W2Mcra3aX_ydP3lw

오늘은 기온이 좀 올라간다고 해요. 그래도 바람이 차니 따뜻하게 입고 다니세요! 오늘 하루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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