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솔직히 큰 감흥이 없었다.
가정폭력, 고단한 야간 노동, 갑작스런 살인.
그 설정 자체는 강렬했지만, 전개는 어딘지 모르게 진부하고 낯익었다. 통속적인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선택할 수 없었어.
그냥, 어떻게든 살아야 했던 거야.” – 마사코
여성들의 연대가 중심에 있지만, 그것이 인물 중심이기보다 사건 중심으로 흘러가다 보니 감정 몰입이 어려웠다. 일본을 대표한다는 여류 추리소설작가의 대표작이라 고른 건데…
“기리노 나쓰오라는 이름값이 이 정도일까?”
그 의심은, 2권에 들어서며 완전히 깨졌다.
2권에서 등장 인물 ‘사다케’가 이야기 중심으로 들어오면서, 《아웃》은 완전히 다른 소설이 된다. 전직 야쿠자였던 그는 마사코 일당이 저지른 살인의 용의자로 몰려, 사업도 잃고, 삶이 완전히 무너진다.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하지만 내 인생은 끝났지.” – 사다케
그는 억울한 누명을 쓴 피해자다. 그리고 그의 삶을 파괴한 진짜 범인들—마사코와 그녀의 공범들에게
차갑고도 집요한 방식으로 복수를 시작한다.
이 지점에서 소설은 도덕적 질문을 던진다.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가
사다케는 단순한 복수자가 아니다. 그는 독자를 혼란에 빠뜨린다. 폭력과 가난으로 고통받던 여성들이 점차 스스로의 욕망과 거짓에 갇힌 이기적인 모습을 드러날 때, 독자는 어느 편에도 쉽게 설 수 없게 된다.
“나는 피해자였어. 그런데 어느새, 누군가에겐 가해자가 됐어.” – 마사코
“이건 단순한 복수가 아니야.
네가 부순 건 한 사람의 삶이 아니라, 내 세계였어.” – 사다케
살인을 저지른 여성들 또한 결코 단순한 가해자가 아니다.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들이 어떻게 그 벼랑 끝에 섰는지 이해하게 된다.
“죽이는 것보다 무서운 건, 매일 죽지 못하고 살아가는 거야.” – 야요이(가정 폭력 피해자이자 살인범)
그리고 독자는 점점 흔들리기 시작한다.
“피해자란 누구인가? 가해자란 어디서부터인가?
결말은 쉽게 말로 옮기기 어렵다.
무겁고, 충격적이며, 불편하다.
하지만 단 하나의 감정만 남기진 않는다.
이 소설은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믿고 있던 도덕의 경계선이 얼마나 유동적인지를 잔인할 만큼 정직하게 보여준다. 살인의 동기는 정당화될 수 없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쉽게 손가락질할 수 없게 된다.
“이 소설은 당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않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