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영화와 책

영화 <승부> : 바둑이 아니라 사람을 두는 거야

by 스텔라언니

바둑 영화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난 바둑을 둘 줄 모르는데 과연 재미있을까 싶었지만 기우였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두 주연 배우의 연기.


이병헌은 이번에도 또 다른 ‘인물’을 만들어냈다.

조훈현 9단, 살아 있는 바둑계의 전설. 이병헌은 영화를 본 조훈현 본인도 깜짝 놀랄 정도로 조훈현을 잘 표현한다.


말수가 적고, 감정 표현도 크지 않지만 날카로운 눈빛, 바둑알을 두는 손 모양, 보통 담배보다 길이가 길어 좋아한 장미 담배를 물고 생각에 잠긴 모습, 대국이 길어지면 한쪽 다리를 접거나 옆으로 비스듬히 앉은 앉았던 조훈현의 특징을 그대로 재현해낸다.

실제 조훈현과 이창호의 대국. 대국이 길어지자 피곤해진 조훈현 9단이 옆으로 비스듬히 앉아 있다.

“난 기계처럼 둬.”라는 대사에서조차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면서도, 안쪽에 부글거리는 압박감과 외로움을 모두 표현한다. 그가 이제는 그저 스타가 아닌 깊이 있고 내공있는 연기자로 성장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위의 사진을 재현한 이병헌. 모시옷을 입고 옆으로 비스듬히 앉아 바둑을 두는 조훈현 9단을 따라했다


이창호 역을 맡은 유아인은 마약 사건으로 활동을 중단하고 있지만, <승부>에서 그가 보여준 연기는 아쉬움을 자아낸다. 바로 “이런 배우를 우리가 얼마나 오래 볼 수 없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승부 앞에서는 스승도, 제자도 없다는 냉철한 얼굴.

타지에서 혼자 자라는 아이의 외로움과 스승에 대한 존경, 경쟁, 두려움. 유아인은 섬세하게 그 얼굴을 만들어낸다. 그의 문제는 분명 책임져야 할 일이지만, 그가 가진 연기력은 시대의 손실처럼 느껴졌다.


<승부>는 두 배우의 진검승부다. 이병헌은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깊이를 증명했고, 유아인은 부재가 더 크게 느껴질 만큼 강한 존재감을 남겼다. 그리고 바둑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 인간의 욕망과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노력을 보여주는 울림이 오래 남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천 개의 파랑> - 로봇을 소재로 한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