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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도 인간은 인간일 수 있을까: 사카모토 류이치

by 스텔라언니

한 곡의 선율이 이토록 오래도록 마음을 흔들 줄은 몰랐습니다. 전쟁 속에서도 사람은 결국 사람이라는 것을 이토록 아프게 전하는 곡이 또 있을까요? 이 곡은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1983)의 ost로 시카모토 류이치의 대표곡입니다.

https://youtu.be/DHy1iKBtTq4?si=lUmimmJ4oFft8Hfd


<전장의 크리스마스>는 2차 세계대전 중 자바섬의 일본군 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한 영화입니다. 일본군 장교 요노이(사카모토 류이치 분)와 영국군 포로 셀리어즈(데이비드 보위 분) 간의 감정과 갈등, 그리고 인간성과 문화 충돌이 중심을 이룹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전쟁 드라마가 아니라, 전쟁 속에서도 지워지지 않는 인간의 내면과 존엄을 이야기합니다.

https://youtu.be/mkhedQDQAnQ?si=agWq6XKNremjWre3


사카모토 류이치는 이 영화에서 음악 감독뿐 아니라 배우로도 참여하며, 일본인으로서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이 이야기에 자신의 감정을 투영했습니다. 그가 만든 주제곡 **〈Merry Christmas, Mr. Lawrence〉**는 잔잔하면서도 깊은 슬픔,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담고 있습니다.


이 곡은 단순한 멜로디의 반복 속에서도 변주와 긴장을 품고 있습니다. 서양식 피아노 선율에 일본 특유의 차분하면서 쿨한 정서, 그리고 전쟁이라는 배경이 얹히면서 ”전쟁과 용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듭니다.


사카모토는 생전 인터뷰에서 여러 번 “나는 반전주의자이며, 일본의 전쟁 책임에 대해 외면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일본 내의 역사 교육이 2차 세계대전을 피해 가는 방식에 문제의식을 느꼈고, 자신의 음악과 예술로 이를 질문하려 했습니다.

사카모토 류이치

일본 사회는 전후 긴 시간 동안 전쟁 피해자이자 가해자라는 이중적 정체성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어떤 세대는 일본의 희생만을 강조하고, 또 다른 세대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한 책임을 묻고자 합니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그 둘 사이에서, 침묵하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냈던 예술가였습니다.


그가 연기한 요노이는 명예와 질서를 중시하는 전통적인 일본 군인으로, 전통적인 ‘대일본제국’의 그림자와도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셀리어즈를 통해 마음속의 경직된 질서를 흔들고, 무엇이 인간다운 것인지 끝내 묻습니다. 이 영화는 일본인이 전쟁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그 고민을 담고 있습니다.


〈Merry Christmas, Mr. Lawrence〉는 단순히 슬픈 음악이 아닙니다. 전쟁이라는 극단 속에서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싹트는 공감, 그 작은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음악입니다. 피아노 한 대로도 그 깊은 정서를 이렇게 섬세하게 풀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곡은 전쟁 영화 음악의 대표작일 뿐 아니라 ‘인간의 가능성’을 말하는 음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은 종종 ‘소리로 쓰는 일기’라고 불립니다. 《전장의 크리스마스》는 그가 남긴 가장 슬프고도 아름다운 일기장 중 하나일 것입니다. 이 음악을 들으며 우리는 다시 한번 묻게 됩니다.


용서할 수는 없지만, 이해할 수 있을까?”

전쟁 속에서도 인간은, 인간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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