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에 대한 기억

by 스텔라언니

중학교의 추억

내가 다닌 중학교는 산 중턱에 있었다. 등교하려면 경사진 비탈을 헉헉 대고 올라가야 했다. 더구나 1학년은 맨 꼭대기 층이라 더 힘들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북한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이면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이 참 멋있었다. 누런 하늘에 바람이 부는 것이 참 좋았다.

우리 중학교는 은평구 내에서 성적이 좋기로 유명했다. 매달 시험을 봤다, 모의고사, 월말고사, 중간, 기말 고사 등등

그래도 분위기가 경쟁적이진 않았다. 친구들은 서울 변두리 동네답게 어딘지 모르게 좀 촌스럽고 수더분한 아이들이 많았다. 친구들 중에 옥희, 희자 같은 예스러운 이름을 쓰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중학교 2학년 때 친구들과 정말 재미있게 놀았다.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은 도덕 선생님이었는데 아주 예쁘고 친절하셨다. 내 단짝 친구인 c는 좀 날라리였다. 공부는 뒷전이고 남자애들과 사귀곤 했다. 추석 때 c의 주선으로 남자애 두명과 같이 롯데 월드에 놀러갔다. 그리고 나서 2학기 중간고사를 봤는데 많이 흥분한 모양인지 성적이 좀 떨어졌다

3학년 때는 같이 롯데 월드를 갔던 남자애 중 한명이 내 생일에 “푸른 하늘” 앨범을 선물로 줬다. 첫곡부터 사랑을 고백하는 나레이션이 나오는 오글거리는 앨범이었다. 도통 연애 쪽으로는 눈치가 없는 나는 전혀 그 아이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우리 둘은 아무런 사이도 되지 못했다.

우리 중학교를 졸업한 사람으로 이휘재와 채림이 있다. 채림은 나보다 한 학년 아래였는데 그 때부터 모델로 활동했다. 우리는 모두 귀밑 2센티 단발이었는데 채림만 머리를 기르고 다녔다. 부러웠다.

나는 친구들과 점심시간이면 운동장 옆에서 고무줄을 하거나 수다를 떨었다. 그러면서 운동장에서 농구를 하는 남자아이들을 훔쳐보곤 했다. 그러나 남자아이들과 이야기를 한 적은 없다. 남자반 여자반 나뉘어 있었고 그 사이에 교무실이 층마다 있어서 여학생이 남자반 복도를 걷거나 남학생과 대화를 나누는 일은 거의 없었다.

2학년부터 친구와 동네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나름 유명한 학원이어서 들어갈 때 시험도 보고 들어갔다. 과학고 외고 준비반에 들어갔다. 영어 선생님은 소년 같은 외모에 매우 유머러스했다. 우리는 모두 선생님을 좋아했다. 수업 중에 선생님과 눈이 마주치면 선생님은 날 보고 환하게 웃어주었다. 나도 부끄러워하며 같이 살짝 웃곤 했다.

어쩌면 나에겐 첫사랑인 분이었다. 나는 예쁜 스프링 노트를 사서 매일 선생님께 편지를 썼다. <키다리 아저씨>를 흉내내어 그날 있었던 일을 정리해서 적는 것이었다. 나중에 학원을 그만 둘 때 노트를 선생님께 드리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중 1부터 엄마의 주선으로 친구들과 영어회화 과외를 했다. 미국에 이민간 외갓집 식구들이 대학생이 되어 한국어를 배우러 오거나, 직장 파견으로 한국에 오는 친척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영어 회화를 배웠다. 나는 5년간 영어 회화를 배웠다. 덕분에 외국인을 만나도 어느 정도 대화할 수 있고 영어도 재미있게 공부했다. 성적을 올리려는 욕심보다 대화를 잘 하고 싶고 책을 술술 읽고 싶어서 단어 공부를 열심히 했다.

3학년 때는 친구와 여름방학 내내 동네 약수터에 매일 갔다. 체력장을 준비하기 위해 매일 아침 만나 윗몸일으키기를 연습했다. 3학년 때는 예고 입시를 준비하느라 바빴다. 피아노 연습과 공부를 동시에 해야했다.

나는 일반 중학교를 다닌 것을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 예중을 나오지 않아서 예고에서 실기 공부를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일반인들이 클래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중학교 때 확실히 배울 수 있었다. 그런 경험을 통해 다양한 음악을 나누고 대중강의를 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삶의 어느 시기나 의미 없는 시기는 없다. 그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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